이상하게 활기찬 일상
임신과 출산이 어려워 그렇지 나는 솔직히 건강한 체질이었다. 감기도 잘 안 걸리고 병치레도 없다. 십 년 넘게 밤을 새우며 일했지만 특별히 아픈 곳 없이 건강했다. 거기에는 가공식품 대신 건강한 요리를 좋아하는 성향도 영향을 미쳤다. 이러한 이유로 임신성 당뇨 검사를 앞둔 나는 자신만만했다.
임신 후 몸무게는 약 7킬로가 늘었다. 아침은 야채 가득 샐러드를 먹었고 점심, 저녁도 배달을 최소화하고 건강한 집밥으로 먹었다. 비록 눕눕 산모라 운동을 할 수 없었지만 하루에 5분씩 가벼운 산책도 했다. 당뇨에 대한 가족력도 없었고 건강을 자부하고 있던 나는 룰루 랄라 임신성 당뇨(줄여 임당) 검사를 하러 갔다.
임신성 당뇨를 검사한다는 것은 임신 24주가 넘었다는 걸 뜻한다. 그렇다. 나는 20주를 넘어 당당히 24주의 산모가 되었고 그렇게 해보고 싶었던 임신 당뇨 검사를 하게 되었다. 임당 검사약인 오렌지 주스 맛의 포도당이 역하다는 글을 보며 어서 나도 임당을 검사하는 주수가 되길 소원했었다. 드디어 내게도 그날이 왔고 설레는 마음으로 검사를 하러 갔다.
병원에 도착해 오렌지가 그려진 포도당을 받았다. 블로그에서 사진으로만 보던 약을 손에 쥐니 뭔가 마음이 굉장히 뿌듯하고 감격스러웠다. 기념으로 사진도 찍고 절대 임당이 나올 리가 없을 거라며 망설임 없이 약을 원샷했다. 다들 마시기 역하다고 했지만 이것쯤이야 나에게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10병도 더 마실 수 있을 것 같은 맛이었다.
검사 후 다음 진료를 예약하고 나오려는 나에게 간호사는 방금 임신 당뇨 검사 결과가 나왔다며 '아이고 재검을 하셔야겠네요'라고 하셨다. 남은 임신 기간은 좀 평탄했으면 했는데 내가 임신성 당뇨라니! 이렇게 건강한 체질에 건강식만 먹는 내가 도대체 왜 재검이냐며 남편에게 투정을 부렸다. 씩씩 거리며 집으로 돌아오는데 묘하게 웃음이 났다.
아...! 드디어 임신에 마음의 여유가 생겼구나.
임신성 당뇨 재검이라고 이렇게 투정도 부리네.
조산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만 가득할 것 같았는데
이제는 보통의 임산부가 느끼는 감정을 느끼고 표현하는구나. 그래 나도 가끔은 속상한 마음 자연스럽게 투정도 부려보자.
재검을 위해 네 번의 피를 뽑고 두배로 많은 오렌지맛 포도당을 마셨다. 결과는 임신성 당뇨 확진이었다. 그렇게 나는 중기 유산 조산력을 가진 자궁경부가 2.5cm 이하로 짧아 맥수술을 한 임신성 당뇨 임산부가 되었다. 눕눕만으로도 벅찬데 맛있는 음식도 못 먹게 임신성 당뇨를 하사하시다니 하늘도 무심하십니다.
하지만 속상함도 잠시, 임당 임산부가 되고 보니 정신이 번뜩 들었다. 혈당 수치를 제대로 관리하지 않으면 뱃속의 아기가 거대아가 될 수도 있고 당뇨병을 가지고 태어날 수도 있단다. 결혼 전 다이어트 할 때도 식단은 시도 조차 하지 않았는데... 원래의 나라면 절대 할 수 없는 식단이었다. 그러나 뱃속의 아기를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힘이 나 철저하게 식단을 지키게 되었다. 콩이 들어간 현미밥은 60g만 먹었고 식사 시작은 무조건 오이 또는 야채를 가득 먹고 시작했다. 매 끼니 지방이 적은 단백질을 섭취했다. 과일을 밥처럼 먹던 나였는데 식후 2시간 뒤 콩알만 한 크기로 잘라 아주 조금만 섭취했다. 식전, 식후 2시간마다 혈당을 체크하고 기록했고 혈당 조절을 위해 산책 시간을 조금 더 늘렸다. 그렇게 속상하기만 했던 임당이었는데 시작해 보니 오히려 몸이 건강해지고 가벼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7킬로 까지 쪘던 몸무게가 2킬로가 줄었고 뱃속 아기가 점점 커져도 내 몸무게는 더 이상 늘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느리게 가던 시간이 식단을 챙기고 매 끼니마다 혈당을 검사하다 보니 바쁘게 흘러갔다. 먹고 싶은 음식을 못 먹어 아쉽기도 했지만 건강한 음식만 먹을 수 있어 뱃속 아기에게는 더 좋겠구나 싶어 뿌듯했다. 이상하게 일상에 활기가 돌았다.
중기 유산 조산력에
자궁경부가 2.5cm 이하로 짧아 맥수술을 한
임신성 당뇨 임산부였지만 나쁘지만은 않았다.
분명 기쁨과 행복과 즐거움이 있었다.
내 마음이 그걸 찾으려 한다면 볼 수 있다는 것을
조금씩 알아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