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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지그린 Nov 15. 2024

고위험 임산부의 출산 준비

이제는 괜찮겠지?

임신 주수가 26주를 넘어 27주가 돼 갈 때쯤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때쯤 내 자궁에 대해,

뱃속 아기에 대해,

조산에 대한 두려움에 대해

자신감이 생겼다.


자신감은 마음을 걸어 잠겄던 빗장을 풀고 철옹성처럼 지켜오던 금기사항을 빠른 속도로 무너트렸다.


시작은 만삭 사진이었다. 절대 찍지 않겠다 다짐했는데 점점 나오는 배를 보며 기록하고 싶어졌다. 나중에 아기가 태어나 엄마 뱃속에 있을 때 모습을 보여 달라고 하면 어쩌지. 네가 내 뱃속에 있는 지금 이 모습을 기록하자며 거실에서 혼자 사진을 찍었다. 나중에 아기가 태어나면 이렇게 동그란 뱃속에 네가 있었다고 이야기해야지.


이어 미루고 미뤘던 할 수 있으면 더 많이 미루고 싶었던 조리원을 예약했다. 대학병원 진료를 마치고 근처 조리원을 찾아 내부를 구경하고 예약을 했다. 조리원 로비에는 신생아실이 있었고 아기들로 가득했다. 지난 몇 년간 아기를 가까이서 보지 못했던 우리 부부는 작고 조그만 신생아가 너무 신비로워 눈을 떼지 못했다. 우리 아이도 나중에 저렇게 작고 귀엽겠지? 몇 달 뒤 유리창 너머로 꼬물거리는 우리 아이를 찾겠지? 매일 아기를 보러 와야지. 신생아가 저렇게 작구나. 우리 아기는 어떻게 생겼을까? 설레는 마음은 점점 차올라 흘러넘치기 시작했다.


임신에 대한 자신감과 설레는 마음이

내 안에서 합쳐지며

강력한 시너지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뇌 회로가 긍정으로 가득 차면서 절대 준비하지 않겠다던 아기 물건을 구매하기로 했다. 우선 물건들이 도착하면 제자리를 찾아야 하기에 아기방을 정리해야 했다. 그래도 조심해야 한다며 남편에게 가구 배치와 청소를 부탁했다. 그리고 드디어 아기 물건을 구매했다. 핫딜 알림 키워드를 일제히 오픈하고 제일 처음 구매한 물건은 체온계였다. 그나마 아기를 덜 연상시키는 물건이었다. 하나를 구매하니 용기가 생겼다. 남편에게 아기 원목 침대를 사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남편은 아기를 연상시키는 직접적인 물건은 구매하길 꺼려했다. 나중에 구매하자며 여러 번 나를 말렸으나 이미 설렘으로 가득 찬 내 마음을 막을 수 없었다. 결국 남편을 조르고 졸라 아기 원목 침대를 구매했다. 우리에게 아기침대라니! 배송된 원목침대를 남편은 밤새도록 낑낑거리며 조립했다. 실은 내가 뚝딱하고 조립할 수 있었지만 남편에게 아빠의 시간을 빼앗고 싶지 않았다. 뱃속 아기를 위해 서툴지만 최선을 다해서 조립하는 남편을 소파에 누워 바라봤다. 참 애틋한 뒷모습이었다. 우리에게도 이런 시간이 오는구나. 나중에 아기가 태어나면 아빠가 낑낑거리며 이 침대를 만들었노라 꼭 이야기해 줘야지. 침대를 조립하는 아빠 사진을 아기에게 보여줘야지.

아기 침대를 구매하고 나니 봇물 터지듯 구매가 이어졌다. 대신 중고 물품은 절대로 구매하지 않았다. 그것만은 남편이 절대 허용하지 않았다. 아무리 비싸도 새것으로 구매하라고 했다. 용기 내 애착인형도 사고 기저귀 갈이대도 사고 손수건도 샀다. 상상 속 아기방이 점점 현실이 되고 있었다. 나는 그 방을 하루에 네다섯 번씩 들락날락했다. 이유 없이 방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잠들기 전 애착인형을 품에 안아보고 비닐로 덮어둔 아기 침대를 만져보고 쓸데없이 조립해 둔 기저귀 갈이대를 밀어봤다. 그럴 때면 마음이 행복으로 가득 찼다.


마침내는 금기 사항 중에 이것만은 절대 하지 말자, 아니 절대 하지 않을 거라 믿었던 일마저 자연스럽게 하기 시작했다. 바로 내 손으로 아기를 위해 무엇인가를 만드는 일. 2년 전 내가 만든 배넷저고리와 신발, 애착인형을 아기와 함께 화장했던 기억 때문에 절대 만들지 못할 거라 생각했는데 이마저도 이겨 낼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것은 자신감이 아니라 욕심이었다. 소파에 거의 눕다 시피해 솜으로 인형을 만들기 시작했다. 용띠 아가를 위해 파란색 용인형을 만들고 이어 공룡 모빌을 만들었다. 한 마리, 두 마리, 세 마리 만들면 만들수록 즐겁고 뿌듯했다. 분명 무리하고 있다는 걸 나도 알았지만 애써 외면하며 인형을 만들었다. 내가 봐도 너무나 예쁜 공룡 모빌이었다. 이어 흑백 초점 모빌까지 만들었다. 태동이 느껴지는 동그랗게 나온 배에 내가 만든 모빌을 보여주었다. 엄마가 널 위해 만든 모빌이야. 너도 좋지?


이제는 괜찮겠지?

이제는 괜찮겠지!

이제는 괜찮을 거야.

이제는 괜찮아!


임신 앞자리가 드디어 2에서 3으로 바뀌며 나에게도 꿈의 30주가 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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