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엄마가 되었습니다
30주 1일에 양수가 터졌다. 아직 예정일이 두 달이나 남은 상태라 소변줄을 차고 항생제를 맞으며 주수를 채워보기로 했다. 몇 주까지 버티겠노라 정해둔 목표는 없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30주는 너무나 이른 주수였다. 나는 매일 씩씩하게 밥을 먹었고 임당이라 식전, 식후 혈당도 열심히 체크했다. 그리고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침대에 누워있었다.
그렇게 고작 입원 3일째가 되던 날 아침이었다. 아침밥을 먹는데 밥이 잘 넘어가지 않았다.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반 이상을 남기고 자리에 누웠다. 남편은 아침밥을 치우고 백일해 주사를 맞기 위해 외출을 했다.
남편이 가고 30분 정도 누워있는데 몸이 이상했다. 목과 귀 뒤로 미세하게 열감이 느껴졌다. 나는 간호사를 호출해 몸에 열이 있는지 체크해 달라고 했다. 체온은 36.5도였다. 아기 맥박과 심장박동도 다 정상이었다. 간호사는 찡긋 웃으며 체온계의 숫자를 보여주셨고 나는 민망함에 죄송하다고 했다. 하지만 여전히 느낌이 이상했다. 분명 몸에서 열이 나는 것 같았다. 10분도 채 안돼 다시 간호사를 불렀다. "아까 열 없으셨잖아요"하며 약간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마지못해 체온을 체크해 주셨다. 역시나 정상이었다. 나는 다시 한번 더 사과를 했다. 간호사가 돌아가고 5분이 지났을까? 갑자기 추워지며 오한이 들었다. 방금 전까지 정상 체온이었던 몸이 급속도로 나빠지고 있었다. 오한은 점점 심해져 손이 떨리더니 발도 떨리고 온몸이 벌벌 떨리기 시작했다. 늑대가 나타났다고 소리치는 거짓말쟁이 목동처럼 나는 세 번째 간호사를 호출했다. 분명 간호사는 짜증이 났을 것이다. 웃음기 없는 얼굴로 체온을 쟀고 온도는 37.7도였다. 간호사는 당황하며 다른 의료진을 불러오겠다고 했다. 간호사가 돌아가고 몸은 초단위로 놀랄 만큼 빠르게 나빠지기 시작했다. 서둘러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분명 살짝 떨리던 손이었는데 통화 버튼조차 제대로 누를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남편에게 몸이 이상하다고 지금 빨리 병원으로 오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목구멍이 막히고 입이 떨려 제대로 말할 수가 없었다. 겨우 통화를 끝내니 입안이 뜨거워지는 느낌이 났다. 떨림은 이제 침대가 들썩일 정도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요동치기 시작했다.
의사와 간호사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벌벌 떨고 있는 나를 본 의료진은 모두 뜨악했다. 상태가 너무 나쁘다고 했다. 몸이 떨려 열을 체크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간호사들이 내 몸을 잡았다. 체온은 그 사이 38도를 뛰어넘었다. 나는 의료진에게 너무 춥다고 힘겹게 말했다.
이 모든 건 2년 전 아기를 보냈을 때와 모든 것이 똑같았다. 그때도 양수가 터진 후 열이 40도까지 났었다. 그리고 감염이 의심된다며 20주의 아기를 보내주어야 한다고 했다. 그렇게 멀쩡하게 심장이 뛰던 아이를 내 몸 하나 살리자고 떠나보내야 했다. 그때의 기억이 나를 공포로 몰아넣었다.
의료진은 분주했다. 한쪽에서는 응급구조 영상에서나 나올법한 은박지 이불 같은 걸 덮어주고 있었고 한쪽에서는 떨리는 몸을 붙잡고 아기 태동을 검사하고 있었다. 몸이 너무 떨리더니 이제는 숨도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점점 눈이 감기기 시작했다. 아이를 잃을까 봐 두려워 눈물이 났다. 의료진은 큰소리로 눈을 뜨라고 했다. 절대 눈을 감지 말라고 했다.
어머니 괜찮아요!
저번 같은 일은 없어요!
아기 30주 넘었어요. 어머니!
눈뜨세요! 눈 감지 마세요!
숨 쉬세요! 눈 뜨세요!
내 몸은 떨렸고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다. 눈물이 났고 점점 눈이 감겼다. 이번에는 그러지 않을 거라는 말, 저번 같은 일은 없을 거라는 말이 나를 더 슬프게 했다. 흔들리는 몸을 멈추고 눈을 뜨고 싶었는데 내 의지대로 컨트롤되지 않았다. 의료진은 나에게 과호흡이 왔다며 산소마스크를 씌웠다가 다시 산소줄을 채워주었다.
내 주위로 5-6명의 의료진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그중에 한 의사 선생님이 큰 소리로 말했다. "오늘 출산을 해야 될 것 같습니다" 아기 심박을 체크했는데 방금 아기가 굉장히 힘들어했단다. 이어 바로 내진을 했다. 당연히 자궁문은 단 하나도 열려있지 않은 상태였다. 때문에 응급 제왕을 해야 한다고 했다.
몸에서 이렇게 열이 났다는 것은 감염을 의미하기에
한시라도 빨리 아기를 밖으로 꺼내야 했다.
출산이라니. 오늘은 고작 30주 3일밖에 안되었는데 출산이라니. 채 다 자리지도 못한 이 어린것을 밖으로 꺼내다니. 내가 검색해 본 조산 케이스 중에 30주는 너무나 이른 주수였다. 30주에 아이를 밖으로 꺼냈다 혹시라도 아이가 잘못되면 어쩌지. 아이가 아프면 어쩌지. 왜 나는 아이를 오래 품지 못하는 걸까. 나 때문에 이렇게 일찍 아이를 밖으로 꺼내야 된다니. 두려움과 미안함에 다시 또 점점 눈이 감겼다. 해열제를 놓는 분주한 의료진 사이로 급하게 달려온 남편 얼굴이 하얗게 질려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인데 남편은 당시 내 모습이 마치 숨이 넘어가는 사람처럼 죽을 것 같아 너무 충격적이었다고 했다.
그렇게 급하게 출산을 하게 되었다. 식사를 한지 채 2시간도 지나지 않았지만 응급 제왕수술을 해야 했다. 이 상황에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건 30주 3일의 아기를 밖으로 꺼내는 것 밖에 없었다. 다행히 해열제 투약 후 체온과 호흡, 오한이 나아졌다. 산소줄을 차고 있는 내 옆으로 남편이 왔다. 지금 아이를 낳으면 우리 아기 어쩌냐고 울먹이니 남편이 괜찮단다. 27주, 28주에 낳은 아이도 다 건강하게 잘 살아가고 있다며 통통한 아기 사진을 보여줬다. 다 괜찮을 거라고 했다. 그리고 이후 기억이 흐릿하다.
이어서 기억이 나는 건 수술실이다. 수술실에서 의사 선생님과 인사를 했던 것, 체온이 여전히 비정상적으로 높았던 것, 하반신 마취를 위해 했던 새우 자세, 생각보다 넓었던 수술실과 정말 많은 의료진이 기억에 난다. 보통 제왕이라면 하반신만 마취한 뒤 아이를 꺼내 얼굴을 확인하고 수면 마취를 하는데 나에게는 그럴 여유가 없었다. 그야말로 응급 제왕이었다. 식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기도가 막힐 수도 있어 기도삽관을 하고 바로 수면 마취를 한다고 했다. 마취에 들기 전 의사 선생님에게 아기를 잘 부탁드린다고 말씀드렸다. 어떤 선생님께서 내 목 어딘가를 손으로 꽉 잡으며 기도 삽관을 위해 이렇게 잡고 있어야 하니 참으라고 했다. 그렇게 마취에 들었고 내 기억은 거기까지다.
경고음이 시끄러워 잠에서 깼다. 실은 경고음보다 목구멍이 너무 아팠다. 목구멍이 아파 제대로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숨을 못 쉬겠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경고음은 계속 울렸다. 옆에 있던 간호사 선생님이 이곳은 수술 후 대기실이고 어느 정도 회복 되면 병실로 이동한다고 했다. 맥박이 너무 낮아 바로 이동할 수 없다고 했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 맥박은 정상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그리고 체온이 여전히 높았다.
결국 회복 대기실에서의 회복이 불가능해 일반 병실이 아닌 집중치료실로 이송됐다. 나는 만나는 의료진마다 아기가 무사한지 물었다. 하지만 아무도 대답을 해주지 않았다. 다들 나중에 알려주겠다며 지금은 산모의 회복이 우선이라고 했다. 멀쩡한 줄 알았던 내 상태는 참으로 심각했다. 의료진들 사이에서 패혈증이라는 단어가 오고 가기 시작했다.
집중치료실은 면회가 불가했는데 치료 시작 전 딱 한번 남편을 만날 수 있었다. 남편은 상기된 얼굴로 아기가 건강하다고 했다. 몸무게는 1590kg으로 태어났고 자가호흡을 했단다. 바로 신생아 중환자실로 이송되었는데 아기를 직접 봤다며 나에게 사진을 보여주었다. 사진 속 아이는 이런저런 많은 선들에 감겨 눈을 감고 있었다. 입체초음파로 봤던 아이 모습과 닮아 신기했다. 이 아이가 내 아이라니 뭔가 낯설고 느낌이 이상했다.
안녕? 아가.
네가 내 아이구나.
내가 너의 엄마란다.
남편과 짧은 면회가 끝나고 내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 평온했다. 마약성 진통제 덕분에 수술 부위의 아픔도 느끼지 못했다. 이렇게 평온한 나와 달리 의료진은 긴박했다. 혈압이 낮아도 너무 낮았다. 이어 체온이 점점 높아지고 있었다. 37도에서 38도로 다시 39도, 40도까지 치솟았다. 41도는 심각한 상황이라고 했다. 열이 떨어지지 않으면 중환자실로 옮긴다고 했다. 열과 함께 숨을 잘 쉬지 못했다. 일부러 폐를 크게 부풀려 열심히 숨을 쉬라고 하셨다. 도무지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덕분에 시도 때도 없이 경고음이 울렸다. 수액이 수도 없이 추가되었고 양 쪽 팔에 주사 바늘을 세 개나 꼽고 있어야 했다. 이렇게 수액을 많이 맞는데 소변줄로 소변이 단 한 방울도 나오지 않았다. 아주 나쁜 징조라고 했다. 소변을 나오게 하는 수액을 추가하고 나서야 소변이 나왔다. 해열제로 열을 떨어트렸으나 다시 열이 났다. 이 상태가 계속되면 패혈증으로 넘어간단다. 패혈증은 아주 무서운 병이라고 했다. 이 소식을 전해 들은 남편은 밤새도록 천국과 지옥을 왔다 갔다고 했다.
다음 날 아침까지 내 몸에서는 세 번이나 열이 났고 여전히 혈압이 낮았으며 숨을 잘 못 쉬었다. 긴긴밤 의료진들은 긴박하게 내 옆을 왔다 갔다 하며 나를 치료하고 간호해 주었다. 아무래도 패혈증이 의심된다며 커다란 병에 피를 왕창 뽑아 갔다.
검사 결과 패혈증이었다. 아마도 양수가 터지면서 감염이 된 것 같다고 하셨다. 패혈증은 균이 피 속에 떠다니다가 아무 장기에 붙어 순식간에 몸을 망가트린다고 했다. 빠른 속도로 죽음에 이르기 때문에 아주 무서운 병이라고 하셨다. 내가 패혈증이었기에 뱃속에 있었던 아기도 감염이 의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