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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줄 수 있는 게 이것밖에 없어

이른둥이 엄마와 아빠

by 코지그린

고위험임산부에서 이른둥이 엄마가 되었다.

그것은 또 다른 세상이었다.


나의 아기는 30주 3일에 1590g으로 태어났다. 주수가 이르고 아주 작았지만 강한 아이였다. 자가호흡이 가능했으며 다행히 패혈증 균이 발견되지 않았다. 너무 어렸기에 분유는 기도 삽관 튜브를 통해서 먹을 수 있었다. 조산으로 인한 합병증들이 발생할 수 있지만 지금으로서는 인큐베이터에서 열심히 몸무게를 늘리는 것이 관건이었다.


아기가 입원한 신생아 중환자실(이하 니큐)은 평일 오전 10시 30분부터 30분간 면회가 가능했다. 면회는 부모만 가능한데 한 번에 한 명씩만 입장할 수 있었다. 동영상 촬영은 불가능하며 사진 촬영만 가능했다. 면회 시간 동안 담당 교수님에게 아기 상태를 설명 듣고 기저귀 가는 법, 수유 연습, 캥거루 케어 등을 해야 했다. 하루 중 딱 30분만 아기를 볼 수 있기에 1초라도 시간을 아껴 아이를 봐야 했다. 그래서 니큐 입장 전 부모들이 그렇게 서두르는 것이었다.


첫 면회 후 울지 않기로 했다. 동시에 나 때문에 일찍 태어나게 해서 미안하다는 말도 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아기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기로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아기는 너무 작아 만지는 것조차 쉽게 허락되지 않았다. 엄마가 해줘야 하는 모든 것을 간호사 선생님이 24시간 챙겨주고 있었다. 내가 아기를 만날 수 있는 시간은 고작 30분. 그저 인큐베이터 밖에서 이름을 부르는 것 밖에 할 수 없었다.


면회가 끝나고 나가려는데 간호사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이른둥이 아기에게 가장 좋은 건 모유입니다.

모유를 가져다주실 수 있으면 가져오세요.”

간호사의 말은 한줄기 빛이 되어 내 가슴에 박혔다. 해줄 수 있는 게 생겼다는 기쁨과 당장 모유를 가져다주고 싶은 마음에 온몸에 힘이 샘솟는 걸 느꼈다.


출산가방도 없이 아기가 나왔기에 입원실에 있는 거라곤 핸드폰 충전기와 칫솔, 급하게 사온 출산 패드가 전부였다. 당장 모유를 가져다줘야 해! 패혈증 때문에 퇴원이 기약 없이 미루어졌기에 입원실에서 유축을 해야 했다. 당시 병원에는 유축기가 없어 간호사 선생님에게 손유축을 배웠다. 검색을 해보니 3시간마다 일정하게 유축을 해야 한다고 했다. 그때부터 핸드폰 알림을 해두고 24시간 유축을 했다. 당시는 모유가 아이를 살릴 수 있다는 생각에 힘든지도 몰랐다. 오히려 세 시간마다 눈이 번쩍하고 떠졌다. 새벽에도 졸린지 모르고 유축을 했다. 양이 아주 작았지만 노란 초유를 보면 어찌나 마음이 뿌듯한지. 이걸 내 아기가 먹는다 생각하니 힘이 절로 났다. 중기 유산 때 아이를 보내고 젖이 나와 마음이 많이 아팠었다. 젖을 먹을 아이가 없는데 젖이 나오니 어찌나 서럽던지… 그때의 기억은 내 인생 소원까지 바꿔놓았다. 아기 몸무게가 늘어나면 퇴원을 하겠지. 그럼 집에서 아이를 안고 젖을 물릴 수 있을 거야. 아기에게 젖을 물리는 내 소원도 이루어지겠구나!


조리원이 아니었기에 알려주는 사람 없이 혼자 손유축을 했더니 며칠 뒤 가슴은 온통 멍자국이 되었다. 생각해 보면 유축기를 대여하거나 했으면 될 텐데 나는 무식하게 매일 손 유축을 했다. 남편이 내 가슴을 보고 너무 놀랐지만 나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냥 모유만 나오면 그만이었다.


첫 유축 할 때가 기억난다. 남편과 나 둘 다 초보 아빠 엄마라 준비한 것은 모유저장팩뿐이었다. 이것 역시 니큐 간호사에게 물어 구입했다. 가슴을 깨끗하게 소독하고 유축을 했는데 정말 아주 조금의 모유가 나왔다. 내 기억으로 샛노란 초유였다. 나와 남편은 그것이 아이를 살 릴 수 있는 생명수라도 되는 듯 한 방울 한 방울 소중하게 모았다. 당시 입원 중이었기에 유축을 하면 바로 옆 니큐로 얼리지 않은 모유를 전해주는 것이 가능했다. 우리는 10ml도 안 되는 모유를 유축하자마자 조심히 들고 니큐로 향했다. 나는 아직 빠르게 걷는 것이 힘들어 남편의 속도를 따라갈 수 없었다. 니큐가 보이는 복도에서 남편이 소중하게 모유를 들고 걸어가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봤다.


빨리 전해주고 싶어

모유를 꼭 쥐고 뛰어가는 남편의 뒷모습.


아들아 이 모습을 네가 봤어야 하는데. 아빠가 널 얼마나 사랑하는지 지금 이 모습을 네가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엄마가 잘 기억해서 나중에 이야기해 줄게. 기적처럼 와준 우리 아들. 지금은 아빠 엄마가 줄 수 있는 것이 이것밖에 없지만 우리의 마음을 가득 담았어.

우리에게 와 줘서 정말 고마워.


그리고 동시에 나를 만나 아픔의 시간을 보내야 했던 남편. 임신 내 도록 마음 졸이며 티 한번 내지 않고 든든하게 나를 지켜준 사람. 유산에 대해 단 한 번도 내 탓을 하지 않았던 사람. 결국 이른둥이 아빠가 된 나의 남편. 항상 옆에 있어 잊고 있었다. 내 옆엔 언제나 남편이 있었다는 것을. 남편이 있었기에 오늘의 내가 있고 우리의 아기가 있는 거야.

내 인생 잊지 못할 남편의 뒷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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