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의 첫 만남
출산 이틀 뒤 패혈증 상태가 호전되어 일반 병실로 옮기게 되었다. 출산을 했다는 기쁨에 제왕의 고통도, 패혈증의 괴로움도 다 잊었다. 비록 아기가 신생아집중치료실(이하 니큐)에 있었지만 건강하다는 남편의 말에 마음이 놓였다. 산모집중치료실도 아니고 고위험산모입원실도 아닌 일반 산모 4인 병실로 들어서는 내 발걸음은 너무나 가볍고 의기양양했다. 출산 후 일반 산모 병실이라니! 예전의 나는 세 번이나 아이를 보내고 매번 죄인처럼 울음을 삼키며 숨죽인 채 병실을 들어가야 했다. 병실에서는 나만 아기가 없었다. 그 사실이 너무나 서럽고 슬퍼서 1인 실로 옮겨 달라며 남편에게 대성통곡을 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번엔 아니다. 나에게도 아기가 있다.
저도 살아 있는 아이를 출산한 산모입니다.
이제 엄마로 불릴 수 있어요!
출산 후 슬픔과 절망이 아닌 보통의 산모들이 느끼는 기쁨의 감정을 똑같이 느낄 수 있다니! 측은해하는 간호사의 치료 대신 일반 산모랑 똑같은 치료를 받을 수 있다니! 누군가에게는 평범하고 사소한 일이겠지만 나에게는 너무나 특별하고 뜻깊은 일이었다.
남편이 찍어 온 아기 사진을 계속 들여다봤다. 아이는 생각보다 컸고 하얀 피부를 가지고 있었다. 뭔가 사진의 아기가 내 아이라는 것이 아직도 믿어지지 않았고 낯설었다. 아이를 향한 감정이 모성애인지 사랑인지 알 수가 없었다. 아기를 먼저 보고 온 남편은 내일이면 나도 면회를 갈 수 있다고 했다. 남편은 계속 설명했다. "아기는 태어날 때 1590g이었어. 지금은 신생아집충치료실(니큐)의 인큐베이터에 들어있어. 내일 면회는 오전 10시야. 면회시간은 총 30분인데 네가 먼저 가서 아기를 맘껏 보고 5분만 남기고 바통터치를 해줘." 니큐에 들어가는 순서와 주의 사항, 아기 위치를 말하고 또 말했다. 손을 소독하고 가운을 입고...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내일이 되면 어련히 알아서 잘하겠지 싶었다. 나는 그저 아기를 보러 간다는 사실에 마음이 설레기만 했다. 면회를 가기 위해 수술한 배를 움켜 잡고 열심히 걷는 연습을 했다. 내일이면 뱃속에 있던 아기를 만난다. 나는 자기 전 사진으로 본 생각보다 크고 하얗고 통통한 아기의 모습을 마음 가득 상상했다.
생각해 보면 살면서 이른둥이를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가끔 티브이로 본 적이 있지만 화면으로는 아기의 크기가 잘 가늠되지 않았다. 신생아 아기도 본 적이 없는데 이른둥이 아기를 본 적이 있었겠는가. 내가 낳은 아기가 1590g의 이른 둥이 아기라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지 못하는 초보 엄마였다.
다음날 아침이 되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배를 움켜쥐고 니큐로 향했다. 면회시간 20분이나 일찍 도착해 대기를 했다. 들어가기 전 남편에게 설명 들은 대로 방명록을 작성하고 신상을 확인하고 목에 거는 출입증을 받았다. 니큐 대기실에는 아이를 만나기 위해 기다리는 부모들로 가득했다. 나도 이들과 같은 이른둥이 부모라는 것을 그때까지 실감하지 못했다. 그들 대부분이 초조함, 안타까움, 그리움, 애틋함이라는 감정을 가지고 속으로 울먹이고 있다는 사실 역시 알지 못했다.
오전 9시 58분이 되자 출입구로 길게 줄이 늘어섰고 10시가 되자 사람들이 후다닥 안으로 들어갔다. 왜 이렇게 서두르는지 그 이유 역시 나중에 알게 되었다. 출입증을 체크하고 안으로 들어가 사람들이 하는 것처럼 짐을 사물함에 내려뒀다. 모두가 1분 1초가 아깝다는 듯 빠르게 움직였다. 동시에 내 마음도 급해졌다. 이어 수술을 집도 하는 의사처럼 깨끗하게 손을 씻었고 온몸을 가리는 비닐 가운을 입었다.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부모들 사이에서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따라 행동했다. 준비가 끝나고 드디어 니큐의 문이 열렸다. 니큐 안은 생각보다 정말 넓었다. 그리고 알 수 없는 신호음으로 가득했다. 벽에는 수많은 모니터가 있었고 매 순간 무엇인가를 체크하며 시끄럽게 경고음을 울려대고 있었다. 남편이 말한 대로 제일 안 쪽으로 들어갔다. 양 옆으로 인큐베이터가 있었고 나는 그중에서 우리 아기를 찾으려고 이름표를 확인했다.
크고 하얗고 통통하던 우리 아기의사진을 떠올리며.
니큐 왼쪽 끝, 거기서 더 들어가 제일 안쪽 1번 인큐베이터에 ooo의 아기라는 이름표가 보였다.
태어나 처음 보는 인큐베이터.
그리고 그 안에 나의 아기가 있었다.
나의 아기가 인큐베이터 안에 있었다.
아기를 마주하고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참을 새도 없이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나의 아기는 1590g으로 태어났다. 살면서 1590g의 아이를 본 적이 없었다. 아니 제대로 상상해 보지도 못했다. 아기는 작아도 너무 작았다. 살아 있는 것이 신기할 정도로 작았다. 당장 뱃속으로 다시 넣어야 할 만큼 작았다. 누가 보아도 뱃속에 있어야 하는 아기였다. 작은 손에 바늘이 꽂혀있었고 입에는 관이 달려있었다. 너무나 빨간 아이였다. 너무 빨개 검게 보일 정도로 빨간 아기. 어제 사진으로 보던 크고 하얗고 통통하던 아기는 여기에 없었다. 차마 만져볼 용기조차 나지 않을 정도로 작은 아이였다.
엄마가 이렇게 무지할 수 있단 말인가? 나는 무엇을 믿고 싱글 생글 웃으며 니큐에 들어왔단 말인가?
이렇게 작을 거란 것을 왜 미처 생각하지 못했을까?
그래서 남편이 니큐 이야기를 계속했던 거였구나…
적어도 38주에 세상 밖으로 나와야 했다. 그런데 두 달이나 빨리 30주 3일에 세상밖으로 꺼내졌다. 아이가 얼마나 힘겹게 이 시간을 살아내야 하는지 상상하지 못했다. 아빠 엄마 옆이 아닌 인큐베이터에서 혼자 모든 것을 이겨내야 한다. 아… 이제야 알았다. 나는 미안함에 몸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더 품어 줬어야 하는데 나 때문에 아이가 사지로 내 몰린 것 같았다.
옆에 있던 간호사에게 울면서 물었다. “아이는 건강한가요?” 간호사는 내 질문을 듣고 표정이 굳어졌다. “어머니 여기는 니큐입니다. 아이가 건강하냐고 물으시면 안 되어요”. 아…! 여기는 아픈 아기만 있는 신생아집중치료실이다. 머리를 망치로 맞은 것 같았다.
인큐베이터 밖에서 아이를 유심히 봤다. 나의 작고 빨간 아기. 아기를 바라보니 정신이 번뜩 들었다. 더 이상 울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이제 울지 않고 아이를 마주할 거야. 아기는 눈을 감은채 아주 느리게 손과 발을 움직이고 있었다. 안쓰럽고 미안했지만 동시에 그 모습이 너무나 경이롭고 아름답고 고마웠다. 그렇게 나는 동시에 사랑에 빠져버렸다. 내 생에 최고의 사랑이자, 절대적인 사랑임이 분명했다.
아가 내가 너의 엄마야. 똥깡아 사랑해. 똥깡아 사랑해.
너무너무 사랑해.
이어 담당 교수님이 오셨다. 교수님은 정말 따뜻하고 친절하셨다. 30주 3일에 태어났지만 몸무게가 나쁘지 않고 호흡 상태가 괜찮다고 하셨다. 엄마가 패혈증이었기 때문에 아이도 감염이 우려되어 항생제를 투여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 아이의 상태와 치료 계획에 대해 말해주셨다. 나는 교수님의 말이 점점 먹먹하게 들리며 머리가 어지러웠다. 우리 아이를 치료해 줄 사람. 내가 기댈 수 있는 사람은 교수님 밖에 없다. 이 분이 우리 아이를 살릴 거다라고 생각하니 어찌나 감사하고 소중한지…
'선생님! 제가 가진 금은보화를 다 드릴게요!
제발 우리 아이 좀 살려주세요!'라며
교수님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소리치고 싶었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업로드가 늦어 죄송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