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사랑이고 행복이야
계란 하나 50g
사과 하나는 250g
작은 생수 500g
지금 우리 아기 몸무게는 1590g
1.59kg을 들면 어느 정도 체감일까? 아기의 몸무게를 생각하니 내가 알고 있던 무게에 대한 감각이 혼란스러워졌다. 지금 아기를 안으면 어떤 느낌일까? 물병 하나를 들었다가 다시 물병 세 개를 들어 이 정도 느낌이려나. 아기를 안으면 이 느낌이겠구나. 이렇게 가볍구나.
아기는 30주 3일의 미숙아였지만 다행히 심장, 뇌, 호흡 등에 특별한 이상을 보이지 않았다. 어서 빨리 몸무게를 늘려 쑥쑥 크는 것이 신생아중환자실 (이하 니큐 (NICU))을 건강히 졸업하는 방법이었다. 당시 아이가 다녔던 병원의 니큐 퇴원 기준은 아기 주수 35주 이상, 몸무게 1.85kg 이상, 아기가 혼자 호흡이 가능할 것, 경구로 수유가 가능할 것, 그리고 부모가 수유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했다.
신생아 중환자실은 니큐 1과 니큐 2가 있었는데 니큐 1에는 케어가 많이 필요한 아기들이 있었고 니큐 2는 호흡 등 좀 더 상태가 괜찮은, 퇴원을 앞둔 아이들이 있었다. 보통 니큐 1 아기들은 인큐베이터에 있었고 니큐 2 아기는 바깥공기에 노출된 상태의 바구니에 있었다.
나의 아기는 니큐 1 인큐베이터 안에 있었다. 그래도 1.59kg은 니큐에서 심각한 몸무게는 아니었다. 아침 10시가 되면 니큐에서는 응원의 메시지와 함께 아기의 몸무게와 수유량, 모유보관 유무 등을 카톡으로 보내줬다. 아기의 아빠가 아닌 엄마에게 카톡을 보내주는데 나는 그 문자를 받는다는 것에 큰 책임감을 느꼈다. 몸무게를 받으면 제일 먼저, 연락을 애태우며 기다리는 남편에게 공유했고 이어 시댁, 친정 가족 카톡방에 전달했다. 가족 모두가 아기의 몸무게 1g에 울고 웃었다. 교수님은 아기의 몸이 양수에 불어나 있기 때문에 약 일주일 정도는 몸무게가 줄어들 거라고 했다. 정확히 태어난 다음날부터 매일 20g씩, 30g씩 무게가 줄어들었다. 저렇게 작은 아기인데 살이 빠지니 마음이 타들어갔다. 교수님은 곧 체중이 늘어날 것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지만 쉽지 않았다. 아침 10시가 어찌나 기다려지던지. 9시 50부터는 모든 행동을 멈추고 핸드폰만 바라봤다. 소중한 성적표를 받는 것처럼 몸무게가 늘었다는 메시지를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른다. 그렇게 애타는 시간이 지나고 아이 몸무게는 10g씩 서서히 늘어나기 시작했다.
몸무게와 함께 수유량도 보내주는데 아이가 많이 먹은 날은 정말 기분이 좋았다. 어찌나 기특하고 대견한지 내 새끼 잘했다 말이 절로 나왔다. 아이가 태어나 처음 먹은 수유량은 2cc였다. 2cc. 작은 거북이가 목을 축일 때 그 정도 먹지 않을까 싶은 양이었다. 다음날은 4cc를 먹었고 점점 2cc씩 늘어나더니 어느 순간 10cc를 먹고 20cc를 먹었다. 아이는 그렇게 우리에게 오기 위해 매일 조금씩 힘겹게 크고 있었다. 참 고맙고 강한 아이였다.
그런 너에게 나는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매일 아침 면회를 갔다. 아이를 봐야 하는 것도 있었지만 유축한 모유를 전해주기 위함도 있었다. 아침 메시지에는 보관 중인 모유양도 함께 알려주는데 보관량 부족이라고 뜨면 걱정이 태산이었다. 반대로 모유양이 가득하다고 하면 어찌나 든든한지 부자가 된 것 같았다.
인큐베이터 속 아기는 천사처럼 잠을 자고 있었다. 어떤 날은 황달 치료를 하고 있었고 다음 날은 눈 떠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인큐베이터 너머로 가만히 들여다봤다. 그런 내게 간호사는 아기를 만져보라고 했다. 엄마가 만져주는 것이 아이의 치료와 정서에 도움이 많이 된다고 하셨다. 용기 내 아기의 손가락을 처음 만진 날. 아기는 내 손가락을 꽉 잡았다. "아가야 엄마야. 엄마 알아요? 우리 아기 엄마 뱃속에 있었던 거 기억나? 엄마랑 같이 있었지? 엄마 목소리 기억나요? 엄마랑 같이 아파트 산책했지? 꽃도 같이 봤지? 우리 아기 엄마 아빠가 사랑해요."
그러던 어느 날. 아기가 변을 보지 못해 관장을 했단다. 간호사는 엄마가 직접 아이 배를 마사지해 주라며 특명을 내리고 사라지셨다. 개구리처럼 작고 투명한 배를 어찌 쓰다듬나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내가 만지면 부러질 것만 같은 아기의 배에 동그란 원을 그리며 마사지를 했다. 그리고 아기에게 말했다. "아가 시원하게 똥 싸자. 너는 시원하게 똥 쌀 수 있어요! 똥 싸자. 엄마 가면 시원하게 똥 싸요" 나는 면회 시간 내도록 마사지를 했고 할 수 있다고 계속 말해줬다. 그러고 다음날 면회를 갔더니 아기가 정말 변을 봤다는 것이 아닌가! '아! 아이가 내 말을 알아들은 거야!'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지만 실은 다 알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날부터 나는 매일 아이에게 말을 건네기로 했다.
들려주고 싶은 말이 정말 많았다.
"아가 너는 정말 건강하고 강한 아이란다.
너는 사랑이 가득하고 복이 가득한 아이야.
얼마나 행복한 아이인지 몰라.
너는 많은 걸 이겨내고 있어. 넌 진짜 진짜 건강하단다"
나는 미래형이 아닌 현재형으로 긍정을 가득 담아 아이에게 말을 건넸다. 아닌 게 아이라 아이는 정말 우리에게 사랑이고 행복이었다. 그걸 아이가 알기 바랐다. 짧은 면회 시간이 끝나면 니큐에 혼자 남아 모든 걸 이겨내야 하는 아이 마음에 내 응원이 가득 차기를. 그렇게 매일 30분을 꽉 채워 쉬지 않고 이야기를 했다.
신기하게도 아이는 내 말처럼 점점 건강해졌다. 몸무게도 늘고 수유량도 점점 늘어났다. 그러던 어느 날 오후, 병원에서 문자가 왔다. 아침에만 오는 문자가 오후에 오니 가슴이 철렁했다. 읽어보니 아기가 드디어 니큐 2로 이동했다는 문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