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한 우리의 시간
1년 전 매일 상상했던 일이 현실이 되었다. 설거지를 하다 고개를 돌려 거실을 바라보면 아기 침대가 보인다. 그 안에 나의 작은 아기가 발가락과 손가락을 꼼지락 거린다. 온 집안이 아기 물건으로 가득할 거라고, 아이가 울면 설거지를 하다 말고 아이에게 뛰어갈 거라는 내 상상은 이렇게 현실이 되었다.
아기가 집에 오자 나는 정말 자연스럽게 엄마가 되었다. 육아를 배운 적도 경험해 본 적도 없지만 여러 번 했던 상상 때문이었는지, 간절히 원했던 일이라 그런지 몸이 익숙하게 반응했다. 남편은 그런 내 모습을 보고 놀람과 감탄을 숨기지 못했다.
아이가 집에 온 첫날, 우리는 미리 준비한 깨끗한 침대에 아기를 눕혔다. 아기는 배가 고파 입을 움직이고 몸을 꼼지락거렸다. 나는 서둘러 분유를 탔고 남편은 아기 옆을 지켰다. 분유를 타다 고개를 돌렸는데 189cm에 100kg이 넘는 거구의 남편이 허리를 숙여 2.4kg의 아기를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아! 이 모습이다. 지금 이 모습. 우리가 이 순간을 얼마나 간절히 기다렸었나. 이 광경을 실제로 마주 하게 해달라고 얼마나 기도했었나. 정말 마주 할 수 있을까 얼마나 의심했었나. 힘들었던 지난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아프고 두려웠던 시간을 지나 드디어 네가 우리에게 와줬구나. 그 힘든 길을 기꺼이 걸어와주었구나. 지금 이 시간이 온전히 우리 것이라는 것에 마음 가득 감사함을 느낀다.
아가 여기가 너의 집이야. 너를 얼마나 기다렸는지 몰라. 니큐에서 혼자 힘들었지? 여기서 엄마랑 아빠가 지켜줄 테니 무럭무럭 건강하게 자라렴. 내 사랑. 내 전부. 내가 세상에 태어난 이유. 나의 아들. 우리 아기.
그렇게 육아가 시작되었다. 다들 신생아 육아가 힘들 거라고 했지만 나는 전혀 힘들지 않았다. 오히려 모든 것이 즐거웠다. 아이를 먹이고 재우고 씻기고 돌보는 중요한 일부터 아주 사소한 것까지 얼마나 해보고 싶었는지 모른다. 내가 수유를 하다니! 아이를 안고 잠을 재우다니! 우는 아이를 품에 안아 달래 줄 수 있다니. 남들과는 다른, 조금 특별한 시간을 지나온 나이기에 육아를 대하는 이런 내 반응이 어쩌면 당연한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는 정말 예뻤다. 동그란 얼굴에 눈, 코, 입이 올망졸망 자리를 잡고 있었다. 솜털 같은 머리카락과 작디작은 손가락과 발가락 그리고 그 안에 더 작은 종이처럼 얇은 손톱을 가지고 있었다.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새근새근 잠을 잤다. 그러다 배가 고프면 밥을 줄 때까지 울음을 그치지 않았고 울었다. 이 작은 몸뚱이에서 어찌 이리 큰 울음소리가 날 수 있는지 신기하기만 했다. 얼굴과 머리카락을 씻길 때는 울었지만 물속에 몸을 담가주면 아주 좋아했다. 먹기도 잘 먹었는데 작은 입으로 젖을 야무지게 먹곤 했다. 분유도 잘 먹고 모유도 잘 먹고 젖병과 젖꼭지 둘 다 잘 빨았다. 가리는 것 없이 예민하게 굴지 않는 아이가 참 고마웠다. 사람들이 가끔 아이가 참 순하다고 하면 고맙다가도 이상하게 마음 한쪽이 아려왔다. 혹여라도 미숙아로 태어나 인큐베이터에서 시간을 보내 순한가 싶어 마음이 아팠다. 그래서 잠투정을 하거나 크게 울면 그래 더 크게 울어도 된다고 말하곤 했다. 보통 아기의 등센서로 부모가 고생을 한다는데 나는 그런 거 신경도 안 썼다. 너무 안아주면 손을 탄다며 안아주지 말라고 했지만 듣지 않았다. 남편과 나는 안아주고 싶을 만큼 아이를 안아줬다. 우리 배를 침대로 착각할 만큼 거의 대부분을 배 위에서 자게 했다. 아이의 머리가 내 심장 위에 닿도록, 내 심박소리를 들으며 잘 수 있게 했다. 그것이 아이에게 안정감을 줄 거라고 믿었다. 분리 수면 같은 건 할 생각이 없었다. 내 팔베개를 베고 내 품 안에서 잠들게 했다. 잠들 때까지 작은 손과 발을 만져줬고 머리카락과 볼을 쓰다듬어줬다.
그렇게 우리의 시간이 쌓여갔다. 내가 한 행동들이 아기의 마음을 어떻게 성장시켰는지 알 수 없지만 이것이 내가 믿는 육아이자 사랑이었다.
아이는 정말 아릅답다. 모든 행동이 신비롭고 경이롭다. 태어나 느껴보지 못한 사랑과 행복을 선물한다. 아이가 있어 여름과 가을이 더 특별하고 겨울이 새롭다. 첫눈이 더 아름답고 봄이 그 어느 때보다 기다려진다. 아이 덕분에 새로운 나를 발견하는 중이다. 동시에 아빠가 되어가는 남편을 만난다. 더 좋은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과 세상을 더 살기 좋게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우리의 새로운 미래를 꿈꾼다.
아이가 우리에게 와줬다.
남편과 나도 아이를 향해 걸어갔다.
그렇게 서로의 방향으로 걷고 걷다 드디어 우리는 가족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