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희망의 증거

나의 특별한 이야기의 끝

by 코지그린

아무도 모르게 아기를 낳았다. 나의 아기가 지구에 도착했다는 사실을 어느 누구도 알지 못했다. 남편과 나는 아이를 건강히 출산하면 양가 부모님에게 소식을 전할 작정이었다.


30주에 갑자기 양수가 터졌고 간호가 필요했던 나는 더 이상 비밀을 지킬 수 없었다. 제일 먼저 친정에 소식을 전했다. 남편은 아빠에게 전화를 걸어 "00이 지금 30주인데 양수가 터져 대학병원에 입원했어요. 뱃속에서 아이를 더 키워 출산해야 하는데 간호를 도와주실 수 있을까요?" 남편이 전한 짧은 문장 안에는 놀라운 소식이 가득했다. 아빠 엄마는 정말 깜짝 놀라셨다. 나의 임신을 조금은 눈치채고 있었지만 30주의 아기를 품고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단다. 30주라는 소식이 기쁜 동시에 양수가 터졌다는 말에 걱정이 많으셨다. 2년 전 중기유산과 증상이 너무나 똑같았기에 두려움이 컸지만 내색하지 않으셨다. 아마 우리를 위한 배려였으리라. 아빠는 언니에게도 소식을 전했다. 언니는 정말 새카맣게 모르고 있었다. 나의 임신 소식에 눈물을 많이 흘렸다. 언니는 겁이 나서 나에게 전화를 못하겠다고 했다. 저번처럼 또 내가 아이를 보낼까 봐 너무 무서웠다고 했다. 중기 유산으로 아이를 보냈을 때 언니는 나만큼 아파했다. 나만큼 많이 울고 몸에 좋은 것을 왕창 사주었다. 언니는 하나밖에 없는 동생 임신했는지도 모르고 놀러 가자고 졸랐던 것이, 챙겨주지 못한 것이 너무 미안하다고 했지만 언니가 나에게 해준 것이 더 많았다.


시댁에는 여전히 소식을 전하지 못했다. 그러다 3일 만에 패혈증에 걸려 응급 제왕으로 아이를 낳게 되었다. 출산과 함께 남편과 나는 드디어 비밀 임신 프로젝트에 종결을 선언했다. 남편이 찍어 온 아기 사진이 내가 아이를 낳았다는 유일한 증거였다. 하지만 나와 아이의 상태가 심각했기에 출산을 하고도 삼일의 시간을 더 기다려 소식을 전했다. 임신 소식도 아니고 출산이라니! 갑작스러운 소식에 뜨악하며 기뻐할 가족들을 생각하니 가슴이 벅차고 목구멍이 뜨거워졌다.


아빠는 아이의 사진을 받자마자 할머니에게 소식을 전했다. 할머니는 “뭐?! oo이 임신을 했다고?!!” 아빠는 “아니요! 임신이 아니라 아기를 낳았다고요!” 하며 사진을 보여드리자 할머니는 너무 놀라 앉은자리에서 천장으로 거의 쏟고 쳐 오르셨단다. 그러고는 눈물을 보이셨다고 했다.


시댁에도 드디어 소식을 전했다. 아버님, 어머님도 내가 시험관을 하고 있겠구나, 임신 초기인데 말을 하지 않는 건가 했는데 30주까지 아이를 품다 출산을 했다는 소식에 많이 놀라셨다. 시부모님은 진심으로 기뻐하셨다. 그리고 내가 지나온 시간과 움츠렸던 마음에 위로를 보내주셨다. 가족 중 제일 마지막 통화는 형님(남편의 누나)과의 통화였다. 모든 가족들과 다 통화를 한 뒤 제일 마지막 통화를 하려고 기다렸다고 하셨다. 그동안 고생했다고 정말 축하한다며 위로조차 조심스러웠던 지난 시간, 위로할 수 없어 미안했다는 말에 형님과 나는 둘 다 목놓아 엉엉 울었다. 말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울음으로 다 알 수 있었다.


유산을 너무 많이 했던 것이, 중기 유산이라는 아픔을 줬던 것이, 그러고도 30주 밖에 아이를 품지 못한 것이, 1.59kg의 아이를 낳은 것이... 인큐베이터에서 한 달 이상을 있다가 세상 밖으로 나와야 한다는 사실이 가족들에게 죄송스러워 나는 작아졌다. 그러나 소식을 들은 가족 중 어느 누구도 이른둥이를 낳았다는 염려의 말을 하지 않았다. 걱정 대신 뜨거운 박수와 응원과 축하만을 보내주었다. 가족 덕분에 내가 가진 걱정도 작아짐을 느꼈다.


고향 친구, 회사 동료, 대학 친구들, 아주 멀리 있는 지인들에게까지 구석구석 나의 소식을 알렸다. 그랬더니 그동안 받지 못했던 축하가 쏟아졌다. 늦게 전한 소식이라 그런지 축하의 크기가 어마어마했다. 축하의 벅참과 감사함 속에 남편과 나, 그리고 우리 아기가 있었다. 마음에 그 어떤 걱정도 거리낌도 없이 우리는 온몸으로 축하를 받아들였다.


지금 이 시간이 오기까지 나는 줄곧 희망을 찾아다녔다. 희망이 어디에 있냐고 의사 선생님에게 물었다. 도대체 있긴 한 거냐며 친구에게 한탄했다. 고개를 올려 하늘을 바라보며 신에게도 물었다. 나에게 왜 이리 가혹하냐며 희망을 달라고 소리쳤다. 하지만 그 어디에서도 답은 없었다. 그래서 묻기를 멈추고 그냥 살아가기로 했다. 느리지만 천천히 하루하루 앞을 향해 걸어 나갔다. 밥을 먹고 세수를 하고 밖으로 나가 걸음을 걷고 다시 사람을 만났다. 내 이야기를 그림으로 그리고 글도 썼다. 그렇게 다시 난임 병원으로 가는 지하철을 탔다. 승강장에 서서 유리문에 비친 나를 바라봤다. 아픔의 시간을 걸어온 내가 서 있었다. 바로 여기였다. 희망은 내 안에 있었다. 그렇게 찾던 희망의 증거가 바로 내 안에 있었던 것이다.


나의 특별한 이야기는 여기까지다.

지금은 너무 평범해서 이야깃거리조차 되지 않는 일상을 살고 있다. 엄마라는 이름으로, 아내라는 이름으로 그리고 내 이름 석자로. 한 손엔 남편 손을 잡고 한 손엔 아이를 안고 평범한 우리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 중이다.




난임부부, 고위험 임산부, 이른둥이 부모에게 전합니다.

당신이 찾던 희망의 증거는 당신 안에 있어요! 응원을 가득 보냅니다.


지금까지 부족한 글을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보내주신 응원을 한 아름 안고 갑니다.

좋은 부모가 되어 건강하고 바르게 키우겠습니다.

항상 건강하셔요. 정말 감사합니다.

- 코지그린 올림


제목 : 나 너를 만나고

keyword
이전 17화우리에게 네가 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