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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20주를 넘기다

같이 가면 됩니다

by 코지그린

2년 전 아기를 보내고, 정신 상담을 받았다.

"선생님, 임신을 하면 또 유산을 할까 봐 너무 두렵습니다.

어떻게 이겨내야 하나요?"


선생님은

"정말 두려울 겁니다. 유산했던 주수를 지난다면 공포감이 줄어들 거예요"


깊은 한숨이 나왔다. 나는 20주에 아기를 보냈는데 임신의 절반, 20주까지는 무조건 공포에 떨어야 한다는 말이었다. 그 공포에서 어찌 살라는 말인가요? 당시는 마음이 지옥 같아 희망을 짓밟히는 것 같았다.


하루라도 빨리 임신을 해야 한다며 그래야 이 아픔을 털어낼 수 있다며 발악했다.

그러나 다시 아이를 만나기까지 2년의 시간이 걸렸다.



시간은 찢어지고 상처 난 뾰죡한 마음을 둥글고 단단하게 만들어줬다. 다시 찾아온 뱃속의 아이. 임밍아웃도 못하고 매일이 조심스러워 집에만 있었지만 두려울 것만 같았던 우리의 시간은 생각보다 평온하고 따뜻했다. 아침에 눈을 뜨면 내 배 위로 손을 올려봤다. 배 속에 아기가 자라고 있다는 사실이 꿈이 아니라 현실이라는 것에 행복이 가득 차 올랐다. 마음이 두둥실 구름 위로 올라가 건강한 밥을 해 먹고 내가 좋아하는 박완서 책을 보고 좋아하는 라디오를 들으며 하루를 보냈다.


나의 아기는 건강했다. 특정 주수에 진행하는 검사에서 모두 다 정상 소견을 받았다. 아기는 이렇게 건강한데 내 자궁은 그렇지 못했다. 나의 자궁 경부는 임신 전부터 짧았다. 아기를 꽉 묶어 지켜줘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까꿍이가 하늘에 간 것도 분명 9할은 내 책임이 분명했다. 주변에서 내 탓이 아니라고 말해주었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이번에는 엄마가 꼭 지켜 낼 거야!


아기는 제 몫을 다해 건강하게 크고 있으니

엄마인 나만 내 몫을 잘 해내면 돼.


나는 아침마다 기도했다. 부디 나의 자궁이 잘 버텨주기를. 매일 내 자궁이 쫙쫙 늘어나는 상상을 했다. 압력에 못 이겨 빵 하고 터져버리는 자궁이 아니라 아기의 크기만큼 고무줄처럼 잘 늘어나기를. 길이는 2.5cm도 안 되는 자궁경부지만 단단히 묶여 절대 열리지 않기를. 아기가 아무리 무거워져도 자궁경부가 꽉 닫혀 아기를 지켜주기를. 나쁜 세균 같은 거 절대로 들어가지 않게 꽉 닫혀 있기를.


우리의 시계는 남들과 다른 속도로 흐르는 것이 분명했다. 어찌 이리 시간이 안 가는지 눈을 감고 떴을 때 38주가 되면 얼마나 좋을까. 조산을 하더라도 태아가 생존할 수 있는 주수로 뿅 하고 점프하면 얼마나 좋을까. 어서 빨리 배가 나오고 아기가 쑥쑥 자라기를. 달력에 12주를 체크하고, 다시 긴 일주일을 보내고 13주를 체크하고 다시 꾸역꾸역 14주를 체크하고 봄이 오고 벚꽃이 만개하더니 어느새 오지 않을 것 같은 18주에 도달해 있었다.


교수님은 19주에 맥수술을 하자고 하셨다. 건강히 아이를 지키기 위해서 필요한 수술이었다. 맥수술 이후에 아이를 보냈던 기억이 너무나 두려워 이미 수술이 결정 났음에도 진료를 마치고 나오는 교수님을 붙잡아 저 맥수술 안 하면 안 되냐고 다시 물어볼 정도였다. 맥수술을 꼭 해야 하는 건 아니지만 하는 것이 좋다며 교수님은 나를 진정시켰다.

그렇게 19주에 두 번째 맥수술을 했다. 예전 기억에 전신마취를 하고 수술을 했었는데 이번에는 부분 마취만 하고 수술을 진행했다. 정신이 온전한 상태에서 수술하는 것이 무서웠는데 막상 수술을 시작하니 뚝딱 하고 5분 만에 수술이 끝이 났다. 이렇게 뚝딱 끝나는 수술이라니! 전신마취였다면 상황을 알지 못했을 텐데 부분마취 덕분에(?) 두려움이 조금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수술 후 3일을 입원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가 우리 집으로 가자!

엄마가 자궁을 단단히 묶었으니

너는 마음 편히 뱃속에서 신나게 놀고 무럭무럭 자라렴.


그렇게 맥수술을 하고 19주 6일이 되었다. 고대하던 20주를 하루 앞둔 날. 남편에게 말했다. 우리 드디어 내일이면 20주다. 남편은 이제 우리 시작이다. 앞으로 더 많이 조심하자며 손을 잡았다. 겨우 작은 산봉우리를 넘어온 우리 부부는 그 몇 배로 높은 산을 바라보며 다시 심호흡을 했다.


다음날 20주 0일이 되었다. 달력에 20주 0일을 동그랗게 표시했다. 우리에게 20주가 왔다. 20주 3일에 아이를 보냈기에 20주 4일부터는 나도 내 자궁도 겪어보지 못한 시간이었다.


20주를 넘기자 2년 전 의사 선생님에게 했던 질문이 생각났다. 또 유산을 할까 봐 두렵다며 울면서 물었던 나의 질문에 선생님은 유산했던 주수를 넘기면 공포감이 줄어들 거라고 답하셨다. 거기까지였다. 20주까지는 죽었다 깨어나도 두려워해야 한다는 말에 희망이 없다고 생각했었다. 뒤돌아 나오려는 나에게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어쩌면 그 뒷 말이 나를 절망 속에서 꺼내줬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같이 가면 됩니다.

같이 이겨내면 됩니다."


나 혼자가 아니었다. 남편과 함께였다. 뱃속 아이와 함께였고 교수님과 함께였다. 날 위해 기도해 주시는 엄마와 아빠와 언니, 남동생, 시부모님, 나의 선배, 후배, 친구들, 난임 카톡방 사람들. 이름도 얼굴도 알지 못하지만 댓글로 진심 어린 응원과 기도를 남겨주시는 분들까지. 2년 하고도 20주의 시간을 혼자가 아닌 많은 사람들과 손을 잡고 여기까지 같이 왔다. 그들 덕분에 내가 여기까지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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