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물들지 않고, 물들이며
책을 쓰는 동안 나는 몇 번이고 멈추었다. 이 이야기를 꺼내도 될까, 나의 우울이 누군가에게 옮겨버리는 건 아닐까 두려웠다. 그래서 제목을 정할 때도 오래 망설였다.
이 책은, 그 망설임을 딛고 쓰게 된 기록이다.
돌아보면 나의 우울은 단순한 그림자가 아니었다. 어린 날의 집에서부터 시작해, 사랑의 방식, 엄마라는 자리, 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 우울은 늘 내 곁에 있었고, 그 곁은 때로 상처였지만 동시에 글을 쓰게 하는 힘이 되었다. 우울이 있었기에 나는 내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었고, 글로 적어낼 수 있었다.
나는 이제 안다. 우울을 덮어두는 건 사라지게 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우울은 나를 설명하는 하나의 언어가 되었다. 상처는 늘 흉터로만 남지 않는다.
상처는 때로 이야기가 되고, 그 이야기는 누군가를 살리는 다정이 된다.
1장에서 나는 우울을 마주하는 법을 고민했고, 2장에서는 그늘과 빛이 공존했던 어린 날의 집을 기억했다. 3장은 엄마라는 자리를 지키며 흔들렸던 시간의 기록이었다. 4장에서는 사랑의 거리 두기를 배웠고, 5장은 상처와 위로가 동시에 춤을 추는 순간들이었다. 6장은 일상에서 발견한 감사였고, 7장은 몸과 마음을 돌보는 법을 담았다. 8장은 글쓰기라는 가장 사적인 치유에 대한 고백이었다. 9장은 작은 순간의 반짝임을 붙잡은 기록이었고, 10장은 나를 살려준 말, 너를 살게 할 말에 대한 이야기였다.
이 장들을 모아보니, 결국 하나의 길이 보였다.
우울은 나를 무너뜨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나를 더 단단히 일으켜 세우기 위한 장치였다. 그 길 위에서 나는 조금씩 성장했고, 또 다른 이들과 마음을 나눌 수 있게 되었다.
이제 이 책을 덮으려 한다. 그러나 덮는다고 끝나는 건 아니다. 글을 쓰는 동안 나를 살려준 문장들이 있었듯, 당신에게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책 한 권의 문장일 수도 있고, 누군가의 다정한 한마디일 수도 있다.
그 말이 당신을 살리고, 또 다른 누군가를 살릴 수 있다면, 우리는 이미 충분히 서로의 등불이 된 것이다.
내 우울은 나의 상처였다.
하지만 동시에 나의 글쓰기 친구였고, 나의 삶을 지탱하는 동반자였다.
언젠가 이 우울이 당신의 삶에서도 단순한 어둠이 아니라, 새로운 빛을 찾게 하는 창이 되기를 바란다.
부디 기억했으면 한다.
우리는 모두 흔들리면서도 여전히 살아간다. 잘해오고 있고, 잘 해낼 것이다.
다정하기를 포기하지 않는 한, 우리의 말과 마음은 누군가를 물들이고, 또 물들여주며 살아갈 것이다.
이 책이, 나의 글이 독자들의 마음속에 오래 남아 필요한 날 꺼내 읽을 수 있는 다정한 문장이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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