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장. 글쓰기, 가장 사적인 치유
어릴 적 나는 자주 혼자였다.
부모님의 부재는 내 마음을 내가 지내던 지하실처럼 차갑게 만들었다. 그때마다 내가 기댈 수 있는 건 종이와 펜뿐이었다. 소설을 흉내 내 쓰기도 하고, 하루를 일기에 남기기도 했다. 글을 쓰는 동안만큼은 우울이 조금 정리되었다. 혼자 삼키기엔 벅찼던 마음을 문장에 쏟아내면, 이상하게도 나 자신을 다독이는 기분이 들었다.
나만 아는 이야기들이 글이 되자, 나는 스스로를 위로할 수 있었다. 그렇게 꺼내둔 문장들은 때때로 칭찬을 받기도 했다. 나의 글이 누군가의 마음에 닿는 순간, 어쩌면 내가 괜찮은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을 쓰고 책을 읽으며 밑줄을 긋고, 작은 메모들을 남겼다. 다이어리와 쪽지, SNS의 짧은 기록들이 차곡차곡 쌓여 결국 오늘의 나, ‘이한울’을 만들었다.
가장 깊이 위로받았던 때는 연극을 전공하던 시절이었다. 수많은 대본과 희곡, 그리고 소설들을 읽으며 내 삶을 견디는 힘을 얻었다. 무대 위에서 내가 아닌 인물을 살아내듯, 책 속의 문장을 따라 살았다. 암울했던 현실에서 잠시 도피할 수 있었고, 그 안에서 꿈을 키워나갔다.
미국으로 건너가 육아를 시작했을 때, 나의 미래는 더 이상 선명하지 않았다. 하루가 전쟁 같았고, 나 자신을 돌볼 여유도 없었다. 그때도 나는 글과 사진으로 세상과 연결되어 있었다. 아무도 묻지 않았지만 나는 기록했고, 아무도 보지 않아도 썼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버틸 수 없었기 때문이다. 글은 나의 치료제였고, 동시에 버팀목이었다.
글쓰기는 늘 가장 사적인 행위였다. 내 안의 그림자를 불러내는 작업이었고, 동시에 내 안의 빛을 확인하는 일이었다. 종이 위에서 나는 울기도 하고 웃기도 했다. 말로는 꺼내지 못했던 상처들이 글자가 되면 이상하게도 조금은 현실과 멀리 떨어져 보였다. 글이 있었기에 나는 무너지지 않았다.
지금도 글은 내 삶의 중심에 있다. 아이들을 돌보는 엄마의 하루 속에서, 책을 읽고 메모하는 순간은 나만의 은밀한 방이 된다. 요가가 몸의 균형을 잡아주듯, 글은 마음의 균형을 붙들어 준다. 쓰는 동안만큼은 나는 엄마도, 아내도 아닌, 그냥 나 "이한울"로서 존재할 수 있다.
이제는 바란다.
나를 살려낸 글이 누군가에게도 작은 숨구멍이 되기를.
내 문장이 누군가의 어둠 속을 비추는 작은 불빛이 되기를.
나의 글은 결국, 내 이야기를 넘어 당신의 이야기로 이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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