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떠난다는 말을 떠올리면 우리는 먼저 잃을 것을 계산한다. 지금 쌓아온 자리, 익숙한 관계, 놓치게 될 안정감. 머무르는 이유는 분명해 보이지만, 떠나는 이유는 늘 설명이 필요해진다. 그래서 우리는 마음이 먼저 움직여도 몸을 붙잡는다. 떠남은 늘 용기보다 불안을 먼저 불러온다.
가만히 돌아보면, 떠나지 못하게 하는 건 장소 그 자체가 아니라 태도인 경우가 많다. 여기까지 왔다는 생각, 이제 와서 바꾸기엔 늦었다는 판단, 떠나면 모든 게 무너질 것 같다는 막연한 두려움. 하지만 오래 머무른 자리일수록 마음은 먼저 떠나고 싶어 한다. 몸은 남아 있어도 감정은 이미 길을 찾고 있다.
떠난다는 건 반드시 어딘가로 가는 일을 의미하지 않는다. 머무는 자리에 머물되, 집착을 내려놓는 선택이기도 하다. 어디에 있든 여행자처럼 살아보겠다는 마음. 오늘 만나는 사람을 처음이자 마지막인 것처럼 대하고, 지금의 풍경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 태도에 가깝다. 그렇게 살면 떠남은 두려움이 아니라 자세가 된다.
인생의 끝을 또 하나의 여행이라 부르기도 한다. 그 말이 위로가 되는 이유는, 결국 우리는 모두 언젠가 떠난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 있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만나는 이들과 후회 없이 마음을 주고받는 일이 중요해진다. 떠날 날을 의식할수록, 오늘의 관계는 더 단정해진다.
여행자의 마음으로 살아가면 집착이 줄어든다. 관계에 매달리지 않고, 물질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는다. 머물다 가는 풍경을 대하듯 하루를 바라보면, 아름답지 않은 순간은 거의 없다. 나의 경우엔 해외에서 살던 여러 해의 시간도, 지금의 이곳도 모두 잠시 머무는 장소일 뿐이라는 감각이 삶을 가볍게 만든다.
결국 떠나기를 겁내지 않는다는 건, 어디에 있든 흔들리지 않을 자유를 스스로에게 허락하는 일이다. 머무름과 떠남 사이에서 균형을 아는 사람은 장소에 삶을 맡기지 않는다. 지금 이 자리에서도 여행자처럼 살아갈 수 있을 때, 삶은 덜 무거워지고 나는 그 안에서 조용히 단단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