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님이 미쳤어요.
감정 선물 가게의 마지막 날. 나는 묵은 감정들을 모두 꺼내 보기로 했다. 오늘은 창고 대방출의 날이다. 보기 싫은 감정들을 마구잡이로 밀어 넣은 방. 언젠가는 정리해야지 하면서도 차일피일 미뤄온 그 방. 외면하고 살면 편하지만, 문득문득 떠올라 마음을 찌푸리게 만들던 그 방. 오늘은… 그 공포의 방문을 연다.
깊숙한 곳을 들여다본다. 아주 오래된 감정 뭉치를 발견했다. 감정은 이름표를 붙여주면 가벼워진다. 오늘 내가 마주한 유적은 '불안'이다. 내 불안 속에는 엄마의 삶이 들어 있었다. 아픈 시어머니를 돌보며, 제사 준비와 일을 병행해야 했던 엄마의 고단함. 그 속엔 한숨, 짜증, 날 선 말들이 서려있었다.
어린 나는 엄마의 눈치를 살피며 그 불안을 조용히 받아들였다. 그렇게 불안은 방 한 구석, 아무도 손대지 않는 곳에 단단히 뿌리내리고 있었다. 나는 그 유적을 발굴하고, 먼지를 털고, 조심스레 이름표를 붙였다.
감정 정리는 고고학과 닮았다. 공룡 뼈 조각을 맞추듯, 감정의 조각을 하나씩 조심스럽게 붙여 나간다. 단번에 해치우지 않아도 괜찮다. 치우기 쉬운 감정부터 하나씩 꺼내도 된다. 원래 창고 대방출 세일도 ‘딱 3일’만 한다더니 몇 달씩 하는 거 다들 알잖아요.
회피한 감정은 사라지지 않는다. 어떤 식으로든,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튀어나온다. 짜증, 게으름, 도피, 분주함… 그 뒤에는 언제나 이름 붙이지 못한 감정들이 숨어 있다.
타버린 냄비를 깊은 찬장 속에 처박아두면 당장은 속 편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언젠가는 그 냄비가 또 눈에 밟힌다. 한 번 마음먹고 꺼내 씻으려 들면, 씻어도 씻어도 검은 물이 계속 나온다.
“이야, 이거 괜히 건드렸나?” 싶은 순간이 온다. 그래도, 버리지도 못하고 보관하지도 못할 냄비를 찬장 속에 그냥 둘 수는 없다. 하루 안에 새것으로 만들겠다는 욕심은 내려놓자.
잘 불려서, 조금씩 벗겨내다 보면 언젠가는 원래의 모습이 드러난다. 방치된 감정은 썩지만, 이름 붙인 감정은 살아나 나의 일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