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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지오 Sep 20. 2022

철학


철학은 누군가의 삶을 이루는 기반이다. 그 기반에 의거하여, 사람은 판단하고 성찰하고 성장한다. 브랜드도 같다. 브랜드를 이루는 기반이 없으면, 언제 자원을 활용할지, 경험으로 얻은 교훈을 어떤 방식으로 기억할지, 위기에 어떻게 대응할지 브랜드는 알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브랜드의 행보가 불투명해지는 것이다. 브랜딩은 단단하게 자리 잡은 철학에서 시작된다.



패션 브랜드 파타고니아는 철학이 확고하다. 파타고니아는 'We’re in business to save our home planet(우리는 지구를 되살리기 위해 사업한다)'이라는 믿음 하에 활동한다. 지구 환경을 보호하고 가꾸고 발전시키는 데 전 임직원이 모든 역량을 집중한다. 대표적인 내부 정책 네 가지가 있다.


첫째, 파타고니아는 친환경 소재로 제품을 생산한다. 폐플라스틱 및 합성 섬유, 의류 폐기물, 유기농 면 등을 가공하여 다시 제품으로 탄생시킨다. 새 부자재가 필요하면 그 비율은 최소화한다.


둘째, 원웨어(Worn Wear) 캠페인을 운영한다. 망가진 옷을 고쳐 입도록 권장하고자, 파타고니아에서 제공하는 의류 무상 수선 서비스이다. 일부 매장에 상주하는 전문 수선사가 파타고니아 옷은 물론 타 브랜드의 옷도 고쳐준다. 한 해 동안 전 세계에서 새로운 의류를 만드는데 드는 물의 양이 약 1.5조 톤이 넘는다. 청바지 한 벌을 만드는데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는 약 34kg이다. 의복 별 탄소 배출량을 평균을 내어서 연간 의류 생산량에 곱하면, 그 수치는 천문학적이다. 그러나 원단을 재활용하고 옷을 고쳐 입으면 물 낭비와 탄소 배출을 막을 수 있다고, 파타고니아는 말한다.


셋째, 파타고니아는 작업 공간을 친환경적으로 만든다. 미국 벤투라에 위치한 파타고니아 본사는 버려진 건물로 지었다. 사무실 책상, 의자, 전자 기기는 중고품으로 채웠다. 건물 옥상과 주차장에는 태양관 패널을 설치하여 재생 전기를 공급한다. 본사에서 나온 음식물 쓰레기는 근처 논과 밭의 비료로 쓴다. 종이를 대체할 수 있을 때는 종이를 사용하지 않는다. 여의치 않으면 재생 종이를 우선 사용한다.


마지막으로, 파타고니아는 직원 채용, 사내 복지, 사회 활동도 친환경 철학에 맞게 관리한다. 지구를 사랑하는 사람을 뽑고, 자연과 어울릴 수 있는 아웃도어 활동을 임직원들에게 권유하며, 환경 단체와 강과 산을 보호하는 시위를 벌인다. 많은 사람이 파타고니아를 친환경 브랜드의 대명사로 떠올리는 것은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이들은 인류의 터전인 지구를 존재하게끔 하기 위해 수십 년간 노력하고 있다. 파타고니아의 목적은 명료하다.


이것이 철학의 효용이다. 바탕이 명확하니 브랜드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일관되게 유지된다. 이는 브랜드를 표현하는 정체성으로 이어진다. 정체성은 브랜드만의 무기가 된다. 같은 물건이면 브랜드의 느낌이 더 뚜렷한 곳을 사람들은 택하기 마련이다. 우리도 모르는 사람보다 아는 사람을 믿지 않는가. 대중에게 사랑받는 브랜드들의 공통 사항은 철학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그들은 철학에 위배되는 것은 배제하고 부합하는 것은 취한다. 뺌과 더함을 거듭하면서 자신들만의 뿌리를 공고히 한다. 그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브랜드에 모이고 종국에는 팬이 된다.


반면에 철학이 없으면 어떻게 될까. 몇몇 브랜드는 이익이 급하여 물건을 대충 만든다. 시류를 좇느냐고 브랜드와 적합하지 않은 결정을 한다. 이를 테면, 착용 몇 번에 형태가 틀어지는 옷을 납품하거나, 차분한 색체를 강조하는 장갑 브랜드가 비비드 컬러가 유행한다고 제품에 형광색을 도입하는 것이다. 이 밖에 여러 경우가 있는데, 그중에서 디자인 표절을 철학의 부재에 관한 예시로 깊게 다룰 만하다.


디자인 표절은 특히 패션 업계에서 공공연하게 일어난다. 어느 브랜드에서 특정 디자인으로 인기를 끌면 다른 업체들이 그 디자인을 똑같이 따라 하는 것이다. 그 업체들은 저마다의 신념을 내세운다. 장인 정신이 깃든 신발을 제작하거나, 한국식 미니멀리즘 스타일을 선도하겠다는 식이다. 진지한 선언을 하는 곳들이 누군가 고뇌하여 창작한 디자인을 법적 허락 없이 도용한다. 그리고 마치 자신들이 그 디자인을 세상에 처음 내놓는 것처럼 군다.


한국은 디자인 표절에 관한 법률이 미흡해서 표절 시비를 가리기가 어렵다. 당사자끼리 소송전을 펼쳐도 판결까지 1년이 넘게 걸린다. 디자인이 정말 원작자의 아이디어인지, 두 디자인이 어느 부분에서 동일한지 따져야 하기 때문이다. 이의를 제기한 원고가 시간과 비용을 들여 증거를 준비해야 하므로, 웬만한 브랜드는 디자인 표절을 당해도 대응하기를 꺼린다. 도용하는 브랜드들은 이 허점을 노린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자. 진정한 철학이 있는 브랜드가 타인의 지적 재산을 함부로 쓰겠는가. 그들은 기준이 확고해서 남의 것을 훔쳐야 할 만큼 궁핍하지 않다. 오히려 그런 행위가 자신들에게 불명예를 안겨준다고 판단할 것이다.


브랜드에 철학이 전무하면, 예시처럼 브랜드는 도용과 조바심과 그릇된 선택을 일삼게 된다. 따라서 브랜드는 사업을 하기에 앞서 브랜드의 철학을 공고하게 할 필요가 있다. 1인 브랜드라면 내가 이 업으로 무엇을 추구하고 싶은지 고민해야 한다. 팀원들로 구성된 브랜드는 팀원 모두가 같은 지향점을 바라보는지 합을 맞춰야 한다. 나는 우리 브랜드의 철학을 A라고 생각했는데 상대방은 B라고 여길 수 있어서다. 각자 다른 쪽을 보고 있으면 브랜드는 나아갈 수 없다. 구성원이 많을수록 그 접점을 찾아가는데 시간이 걸린다. 체력 소모와 논쟁이 불가피할 수 있으나, 접점이 생겨야 브랜드는 효율적으로 움직인다. 철학을 뽑아내는 일은 고되다. 그럼에도 해야 한다.


브랜딩이나 마케팅, 경영 서적 등을 보면 사명 선언문·미션·비전·전략·슬로건 등 철학의 의미와 유사한 단어들이 나온다. 그것들이 전부 중요하다고 강조되어 있는데, 나는 철학 하나만 기억하면 충분하다고 본다. 저 용어들을 정확히 구분해서 사용하는 곳은 드물다. 저 용어들에 맞게 정확히 활동하는 곳은 더 드물다. 단어에 매몰되면 허황되고 추상적인 개념이 나올 뿐이다. 딱 한 줄. 우리 브랜드가 무엇을 추구하는지를 나타내는 철학 한 줄이면 된다. 그러면 철학을 지키기 위한 행동 방침(미션)과 세부 계획(전략)과 철학을 간결하게 표현할 문장(슬로건)은 저절로 완성된다.



인생관이 있는 사람의 언행은 다르다.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말하고, 행동하고, 생각하고, 느끼는 방식이 번잡스럽지 않아서 생활이 가지런하다. 주변에는 자기와 맞는 사람들이 모이며 그들과 인생관을 공유하면서 삶에 풍요를 더한다. 브랜드도 사람과 다르지 않다. 철학이 있는 브랜드는 한 방향으로 흐른다. 그 과정에서 자신들의 방향을 응원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과 함께 발전할 내일을 그린다. 브랜드 철학은 허무맹랑한 탁상공론이 아니다. 현상으로 난무하는 시장에서 브랜드의 지속을 가능케 하는 원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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