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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지오 Dec 27. 2020

내 음악 취향은 90년대에 멈춰있다

과거엔 추억과 행복이 있었다

얼마전 유튜브에서 '가요톱10'이란 예전 음악 프로그램을 다시 실시간으로 스트리밍한 적이 있다. 맨 처음 소식을 들었을 때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바로 틀어서 들었는데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풋풋했던 예전으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수요일 저녁만 되면 TV앞에서 가요톱10을 보며 음악을 즐겼다. 댄스 음악이 나오면 춤을 추고 발라드가 나오면 사뭇 진지하게 들었다. 고작 6살이었는데 또래와 달리 우아한(?) 취미를 가졌다.


짧은 회상을 하며 오랜만에 마주한 가요톱10. 시대가 변하면 과거의 영광은 서서히 사라지기 마련이다. 현실에 적응해야 하니 옛 추억은 마음 한 구석에 담아둘 뿐이다. 그런데 그 추억을 다시 꺼내서 즐길 수 있도록 하나의 장이 열린 셈이다.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계속 영상을 봤다. 채팅창에는 나와 같은 사람들이 많았다. 누군가는 신난다고 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뭐라 말 못할 감정이 북받쳐 눈물이 난다고 했다.


그 글을 읽는데 나도 뭔가 울컥한 감정을 느꼈다.






이후 나의 음악 리스트는 90~2000년대 초 중반 음악으로 다시 가득채워졌다. 2000년대 초 중반까지는 90년대의 향수가 어느정도 이어졌기 때문에 주옥같은 곡들이 참 많다.


김정민 - 슬픈 언약식

임창정 - 그때 또 다시

박정현 - 편지할게요

플라워 -Endless

포지션 - I love you

김건모 - 미안해요

제이 - 어제처럼

정재욱 - 잘가요

김형중 - 그랬나봐

KCM - 흑백사진

유미 - 사랑은 언제나 목 마르다

윤미래 - 시간이 흐른뒤

이수영 - 그리고 사랑해

이루 - 까만 안경

바이브 - 그남자 그여자

...


하나 같이 소중하고 추억이 가득 담긴 명곡들이다. 하지만 이런 음악들을 언제부터인지 안 들었던 시기가 있었다. 성인이 되면서 자연스럽게 팝송이나 재즈를 즐겼다. 친구들끼리 홈파티를 하거나 캠핑을 갈 때 팝이나 재즈를 블루투스 스피커로 틀어 놓으면 뭔가 좀 있어보이기도 했다. 2010년대 중반에는 '클래식 패션'에 빠져있을 때라서 옷에 어울리는 음악을 들어야 한다는 나름의 곤조로 서양 음악을 더 많이 즐겼다.


저 음악들만 들으면 그때 당시 내가 느꼈던 생각, 감정, 주변 모습, 향기, 시간까지 모두 떠오른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그냥 나도 모르게 그렇게 된다. 초등학생일 때 친구의 생일 파티가 끝나고 다 같이 노래방에 가서 노래를 불렀던 추억, 중고등학생일 때 학원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가면서 mp3로 음악을 들었던 추억 등. 시시콜콜한 기억들이 떠올랐다. 팝이나 재즈를 들을 때 느끼는 감정과 아예 다르다.



박정현 'A second helping' 앨범 - 편지할게요(1999)



감각이 말랑했던 어린 시절에 즐겼던 것들이 성인이 되어서도 유독 강한 잔상으로 남아있다. 오히려 오늘날 너무 많은 콘텐츠들이 범람해서 어지간하지 않으면 '오 이거다'라고 느끼는 경우가 많진 않다. 참신한 것 같아도 얼마 지나지 않아 시시해지고 재미없다. 음악, 그림, 동영상 등 다 비슷해 보인다.


그래서 구관이 명관이라며 옛 것을 찾나 보다. 실제로 33세 전후로 자신이 좋아하는 것만 즐긴다고 한다. 새로운 양질의 무언가가 나와도 귀찮음과 과거에 대한 향수로 원래 선호하던 것을 선택한다는 '자물쇠 효과'이다. 어린 시절 추억이 담긴 음악을 즐기려고 하는 것도 이에 해당한다. 나도 설마 그럴까 했는데 신기하게도 해당 나이대에 들어오니 자연스럽게 그렇게 됐다.


요즘 나오는 음악들도 물론 훌륭하다. 멜로디도 세련되고 장르도 다양하니 입맛에 맞춰 들을 수 있다. 하지만 뭔가 90년대~2000년대 음악에 비해서 감성적으로 느껴지지 않을 때가 있다. 너무 트렌디하거나 의미를 알 수 없는 가사들이 음악을 소비하는데 장벽으로 작용된다. 편안하게 들어도 귀에 잘 안들어온다고 해야 할까.


반면 예전 음악들의 가사를 보면 진심을 가득 담은 편지 같다. 이지훈의 '왜 하늘은' 가사를 봐도 그렇다.


왜 하늘은 널 데려가는지

한 없이 착하기만 한 너를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내 모습이

너무나 초라해 미칠 것 같아


참 좋다. 요즘 노래는 뭔가 멜로디에 힘을 주는 듯한 느낌이 든다면 옛날 노래는 가사에 더 가치를 둔 것 같다. 훨씬 직관적이고 서정적이다. 그래서 그런지 들었을 때 감정이 요동치는 기분이 든다. 저 당시 가수들이 부른 노래를 다시 들었을 때 감정이 북받쳐 올라오는 것도 감정 가득한 가사가 마음을 흔들어 놓아서 그런가 보다.








어제 밤 일기를 쓰고 맥주를 마시며 포지션의 'I love you'를 들었다.

5분 30초 동안 난 잠시 20년 전으로 돌아가 추억을 회상했다.


당시에는 뮤직비디오도 거의 영화처럼 만들어진 것들이 많았다. 이 곡도 마찬가지다. 겨울을 배경으로 차승원과 신하균, 이요원이 등장한다. 사랑과 상처, 슬픔 그리고 분노가 어우러지며 장면 하나하나를 가득 채운다. 지금 보면 조금 어설플 수 있겠지만 배우들의 열연이 남긴 감성은 지금도 잊지 못한다.


음악과 MV를 다 즐기고 나니 마음이 아렸다. 이 음악을 들으며 친구들과 나눴던 순간들이 떠올라 행복을 느꼈지만 허무함과 묘한 슬픔도 함께 올라왔다. 다시 그때로 돌아갈 수 없다는 아쉬움에 그런 듯하다. 어떻게 보면 과거 미화에 사로잡혀 혼자 청승맞게 감정에 빠진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래도.


음악 하나를 들어도 마치 영화 작품처럼 감상하고 음미할 수 있었던 시대.

조금은 오글거릴 순 있어도 그만큼 가사에 정성이 가득했던 시대.

사랑과 이별을 그 어느 때보다 깊게 고민하고 표현했던 시대.



그 시절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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