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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지오 Dec 26. 2020

할머니를 꼭 안아드렸다

크리스마스 날의 눈물


할머니 아프지 말고 나랑 오래 살아요.



2020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


난 할머니를 꼭 안아드렸다.






어제는 이렇게 시시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조용하고 심심한 크리스마스였다. 이제는 말하기도 지겨운 시국으로 인해 집에서 조촐하게 시간을 보냈다.


나는 할머니와 함께 살고 있다. 어머니가 사업으로 바쁘셨기 때문에 어렸을 때부터 키워주셨다. 그래서 어머니보다 더 어머니 같은 존재이시다. 내가 달걀 한 판 이상의 나이를 먹어도 여전히 날 걱정하신다.


다치지 마라

끼니 거르지 마라

참을 인(忍) 자 세 번을 새겨라

나가서 사람들하고 싸우지 마라

길가면서 핸드폰 하지 말고 걸어라


30년 넘게 듣는 할머니의 사랑 담긴 잔소리다. 어렸을 때는 정말 듣기 싫었다. 했던 이야기를 맨날 똑같이 하시니 지겨웠다. 내가 어린 애냐며 툴툴거리기 바빴다. 하지만 커갈수록 오히려 안 하시면 괜히 섭섭한 느낌이 든다. 긴 세월 나란 사람이 복잡한 세상을 올바르게 걸어갈 수 있도록 해 준 소중한 가르침이다.


TV 앞에 앉아 추억을 곱씹으며 할머니와 시간을 보냈다. 어제 유독 할머니의 모든 것이 눈에 깊게 들어왔다. 얼굴에 주름도 많아졌고, 눈꺼풀도 살짝 내려앉았으며, 행동도 느려지셨다. 내가 어떤 말을 하면 한 번에 잘 이해하시지 못하셨다. 여쭤보셨던 것을 또 여쭤보시기도 하고 아무 생각 없이 창밖을 바라보시기도 했다.


먹던 과자가 더 이상 넘어가지 않았다. 왠지 모를 슬픔이 올라오면서 내 코 끝을 강하게 눌렀다. 눈시울이 붉어졌다. 분명 재작년까지만 해도 건강하셨던 것 같았는데. 재작년, 작년, 올해. 갈수록 할머니의 기력이 나빠지는 것을 느꼈다. 노인은 어제오늘 다르다는 말이 이제야 이해가 됐다. 정말이지 내 마음을 후벼 팠다.


20대 후반까지만 해도 할머니와 평생 살 수 있을 것이라는 철없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요즘 그 생각이 슬픈 현실을 애써 외면하기 위한 자기 최면에 불가했다는 것을 느낀다. 할머니로부터 받은 사랑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데 아직 난 제대로 해드린 것이 없다.


아직도 난 방황하고 자리를 못 잡았는데. 해 드려야 할 것이 산더미처럼 쌓였는데. 정작 내 사랑을 온전히 받으셔야 할 할머니는 그렇게 나이가 들어가고 계신다. 아마 내년은 올해랑 또 다르실 것이다. 이러한 생각이 떠오르기 시작하니 어찌할 바를 몰랐다. 가슴이 답답하고 울고 싶었다.


과자가 담긴 그릇을 옆으로 치우고 할머니 옆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꼭 안아드렸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전보다 작아지신 할머니를 안으니 감정이 더욱 북받쳤다. 할머니 역시 나를 따뜻하게 안아주셨다.



"우리 손자가 벌써 이렇게 컸구나. 이 할미는 이제 늙어서 우리 손자 업어주지도 못하네.

아픈 곳만 없으면, 코로나만 없으면 저 멀리 여행이라도 가는데 말이다."


"할머니 아프지 말고 나랑 오래 살아요."



아직 잘해드린 게 하나도 없는데...






2018년 4월에 첫 직장 합격 통지를 받기 전 할아버지와 이별해야 했다. 그날의 충격은 나에게 꽤나 큰 트라우마로 남아서 구급차의 엠뷸런스 소리를 듣거나 심폐소생술 동작을 보면 심장이 조여 오는 기분이 든다. 할머니와 마찬가지로 나를 키워주신 분이기에 갑작스러운 이별은 지울 수 없는 슬픔으로 남았다.


장사를 치르고 받은 기업 합격 통지 문자는 기쁨이 아닌 눈물로 얼룩졌었다. 그날 할머니와 부모님과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모른다. 할아버지가 살아계셨더라면 손자가 좋은 기업에 당당히 취업한 것을 눈으로 보셨을 텐데. 세상은 정말 나빴다. 끊임없이 슬픔이란 감정을 흩뿌린다.


지금은 개인적으로 나의 다른 일을 준비하고 있다. 아직 자리 잡으려면 멀었는데 할머니한테 갑자기 문제가 생길까 봐 마음이 내내 불안하다. 용돈도 드리고 영양제도 사다 드리고 병원도 모시고 가지만 가슴 한 구석에 무거운 돌이 들어앉은 기분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작더라도 최선을 다해서 할머니를 챙겨드리는 것이다. 그리고 더 자주 옆에서 말동무가 되어드리고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덜 후회하려면 내 인생에 할머니와 함께한 흔적을 더 많이 남기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이 정성이 부디 할머니가 더욱 건강하게 사실 수 있도록 해줬으면 좋겠다.



할머니가 계시지 않는다면 너무 슬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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