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어송라이터, 재즈 가수, 블루스 가수, 포크 뮤직 싱어, 민권 운동가, 클래식 피아니스트 등.
하지만 그녀의 음악을 듣고 있으면 오히려 저러한 수식어들이 의미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자신이 사랑했던 음악으로 한 평생 살아온 '니나 시몬' 그 자체이니까.
사랑하다
2018년 현대자동차 CF 삽입곡 'Feeling Good'이란 음악을 들은 이후 니나 시몬의 존재를 알게 됐다. 적막한 멜로디에서 들려오는 굵은 목소리가 무척 매력적이었다. 마치 참아 온 자신의 감정을 폭발적으로 가사에 실어 전달하는 느낌이었다. '잘 부르는 것'이 아닌 '내가 이런 노래를 한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 매력이 참 좋아서 이후로 니나가 부른 여러 음악을 즐겼다. 신나는 재즈, 날카로운 포크, 부드러운 블루스, 가끔은 수준 높은 클래식을 기분에 따라 내 삶에 가득 채웠다.
그러다가 '니나 시몬: 영혼의 노래'라는 다큐멘터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감상했다. 그전에 텍스트로만 니나의 히스토리와 이력을 확인했었는데 영상으로 보니 그녀의 일대기를 더욱 역동적으로 즐길 수 있었다.
대체로 특정 인물을 다룬 다큐멘터리는 흐름이 비슷하다.
힘든 환경에서 태어나 무언가를 좋아하게 되고
그것을 통해 성장하고, 성공하고, 아파하고, 좌절하며
다시 그것을 통해 위로받고 행복을 되찾아 간다.
이 다큐멘터리도 비슷하다. 어떻게 보면 위인들의 흔한 인생 스토리 같지만 나는 작품을 보며 좀 다른 생각을 했다. 우리들의 인생을 조금이라도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선
내가 사랑하는 일을 해야 한다
는 것이다.
우리는 과연 우리가 사랑하는 것에 충실하며 삶을 살아가고 있을까.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한창 방황하는 청춘들을 위해 좋아하는 것을 선택할지, 잘하는 것을 선택할 지에 대해 논하는 콘텐츠들이 있었다. 둘 다 맞는 말이지만 이 둘을 합친 '내가 사랑하는 것'을 선택하여 살아가는 것이 보다 현명한 삶일지도 모른다. 무언가를 사랑한다는 의미는 좋아하고 잘하는 것을 넘어 또 다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국어사전에 '사랑하다'의 의미는 다음과 같다.
사랑하다: 어떤 사람이나 존재를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다.
반면에 좋아하다는 '어떤 일이나 사물 따위에 대하여 좋은 느낌을 가지다'이다.잘하다는 '익숙하고 능란하게 하다'이다. 사랑하다의 의미보다 뭔가 색이 빠진 느낌이다. 이 두 가지보다 훨씬 더 내 감정이 들어가고 삶에 일부분처럼 느껴지는 개념이 '사랑하다'라고 생각한다.
니나 시몬에게 음악은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존재였다.
진정으로 사랑하고 또 사랑하니 행복을 느끼고 성공까지 거머쥘 수 있도록 해 준 그런 존재였다.
깊은 사랑은 상처를 부른다
니나 시몬은 음악을 사랑한다고 말했다. 자신의 영혼을 마음껏 표현할 수 있는 존재이며 무대에서 사람들에게 음악으로 감동을 주는 일은 아름다운 것이라고 표현했다. 그래서 평생을 걸쳐 자신의 삶을 피아노에 바쳤다. 아니, 사랑하는 음악에 바쳤다고 하는 것이 맞겠다.
음악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을 때 그녀는 행복했다. 3살이 되던 해에 지역 교회에서 피아노 연주를 했고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았다. 다행히 니나의 재능을 알아본 음악 선생이 후원을 주선하여 그녀가 지속적으로 공부할 수 있도록 도왔다. 덕분에 고등학교뿐만 아니라 뉴욕 줄리어트 음대에서 1년 6개월 수학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인생이라는 것이 항상 밝은 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니나가 한창 활동했던 1950~60년대 미국 사회는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이 극에 달했던 시기였다. 니나도 '흑인'이었기 때문에 이에 대한 영향을 피할 수 없었다. 단지 흑인이란 이유만으로 그녀가 그토록 원했던 필라델피아의 '커티스 음악원'으로부터 입학 거부 통보를 받았다. 아무리 그녀가 연주를 잘했어도 합격은 백인에게 돌아갔다.
비단 니나의 문제만은 아니었다. 당시 흑인들은 버스를 탈 때도 맨 뒷 자석에 앉아야 했고 백인들의 온갖 멸시와 괴롭힘을 당해야 했다. 무엇이든 이분법으로 재단되어 좋은 것은 백인, 나쁜 것은 흑인으로 나뉘었다. 이러한 사회적 환경에서 그녀는 매번 행복한 음악만 할 수 없었다.
어렸을 때부터 쌓여온 인종차별에 대한 상처는 채 아물기도 전에 다른 상처로 뒤덮였다. 뛰어난 역량에도 불구하고 '넌 흑인이니까 할 수 있는 건 몇 없어'라는 모욕을 들어야 했고, 더러운 분장실에서 분장을 하며 공연을 준비해야 했다.
매니저이자 그녀의 남편이었던 '앤디 스트라우드'는 그녀의 성공으로 돈 맛을 본 후 스케줄을 무리하게 잡았는데, 이에 지친 그녀가 저항할 땐 거친 폭력을 행사했다. 그녀의 인생에 서서히 그림자가 드리우는 시점, 무엇보다 자신과 같은 흑인들이 극심한 차별로 상처를 입고 죽음을 맞이하는 모습을 보며 니나의 마음은 병들어 갔다.
자신이 그토록 사랑했던 음악.
하지만.
성공을 유지하기 위해 억지로 공연했다.
흑인이라서 사회적인 차별을 받았다.
위로도 없이 외롭게 피아노를 연주했다.
열정적으로 피아노를 치고 노래를 불러도 자신의 처지와 흑인들을 향한 멸시가 개선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그녀는 깊은 상처를 받았다.
사무치는 슬픔과 인종 차별에 대한 저항심이 극에 달했던 시기, 그녀의 음악은 이러한 마음을 대변했다. 그 정점을 찍은 음악이 개인적으로 'Ain't Got No, I Got Life'란 곡이라고 생각한다.
아무것도 없지만 나란 존재가 있으니 우리(흑인)는 무엇이든 할 수 있고 각자가 처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매시지를 전하고 있다. 이 곡을 들었을 때 많은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사랑하는 일을 하다가 어려운 문제를 겪게 되면 처음에는 해결하려 한다. 그러다가 정 안되면 '사랑한 일이 아니었다'라고 합리화하며 그 일에서 손을 놓는다.
그런데 니나 시몬은 그렇지 않았다. Ain't Got No, I Got Life란 곡뿐만 아니라 '망할 미시시피(검열이 심한 당시 욕을 작품에 대놓고 사용했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었다), 끊임없는 흑인 민권 운동 참여, 활발한 음악 활동을 통해 계속 비참한 현실을 바꾸려고 했다.
60년대 민권 운동 - Civil Rights Movement in 1960s
니나는 흑인 사회가 본인이 부른 음악을 통해 자부심을 갖고 강한 연대를 만들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또한 자신처럼 힘든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다시 당당하게 일어서길 원했다. 폭력적으로 다가오는 백인 집단에 기죽지 않고 음악을 이처럼 지속했다는 것은 음악을 정말 사랑하지 않는 이상 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그녀의 이러한 용기 있는 행동에 사람들은 열광했고 니나는 열렬한 지지 속에서 자신의 사회적 활동에 격정적으로 빠져들었다. 하지만 너무 감정적이고 정치적인 성향의 음악을 추구했던 탓일까. 그녀의 콘서트 개최나 방송 출연을 거부하는 곳들이 생겨났다. 심지어 우편으로 보낸 녹음 레코드를 부셔서 다시 반송하는 일까지 있었다. 무엇보다 헌신적으로 음악으로 저항하고 민권 운동을 주도해도 바뀌지 않는 현실이 그녀를 더욱 힘들게 했다.
사랑-> 성공-> 상처-> 극복-> 상처
반복되는 상처에 니나 또한 심한 감정 기복이 생겼고 결국 조울증으로 이어졌다. 이때는 이미 정치적 성향이 짙은 사람으로 낙인찍혔고 건강도 나빠졌으며 남편과 사이가 멀어져 이별까지 했다. 깊은 수렁에 빠진 시기였다.
사람이 지속적인 상처를 받게 되면 긍정적인 사람일지라도 '극복 에너지'가 고갈된다. 물론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어느 정도 극복을 통해 다시 행복을 느껴야 자신이 사랑하는 일도 지속할 수 있다. 어차피 우리가 삶을 통해 이루려고 하는 것도 '행복'이 아니던가. 매번 내리막 길만 존재하면 그것이 어찌 행복한 삶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니나는 짙은 상처가 남긴 무게로 인해 쓸쓸히 내리막 길로 접어들게 되었다.
그래도 결국 사랑하는 일로 돌아온다
사람은 애석하게도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지기 마련이다. 그렇게 대중들과 멀어진 그녀는 서서히 사람들 기억 속에서 잊혀 갔다. 니나 또한 오랜 시간 함께한 피아노를 멀리 했고 여러 나라를 떠돌며 살았다. 그의 친한 지인들이 그녀를 오랜만에 봤을 때 넝마를 주워 입은 사람 같다고 할 정도로 니나는 자신을 완전히 내려놓았다.
정말 니나 시몬은 음악을 그만둔 것일까.
자신이 평생 동안 사랑했던 일을 마음속에 묻어둔 것일까.
그렇지 않았다. 후에 1976년 '스위스 몽트뢰 재즈 축제 콘서트'로 복귀하며 다시 아티스트로서의 삶을 살아간다. 그토록 미웠고 그토록 힘들었으며 그토록 상처를 줬던 음악을 그녀의 삶에 한번 더 초대했다. 피아노에 손을 얹어 건반을 누르는 순간 향긋하고 행복했던 시절들이 떠오르는 듯했다.
니나는 그렇게 사랑하는 음악을 통해 마음을 회복했다. 자신의 감정을 마음껏 표현하며 사람들과 호흡했고 그녀 스스로 뿐만 아니라 팬들도 소중한 행복을 느꼈다. 끝없이 내려가는 길만 있는 줄 알았는데 다시 보니 오르막 길이 있었다. 그 오르막 길을 안내하는 표지판은 다름 아닌 자신이 사랑하는 일, 음악이었다.
아무리 사랑하는 일이라도 어느 순간 하기 싫을 때가 있다. 처음엔 이 일이 천직이고 잘 맞는다고 생각했어도 시간이 흐르면 보지 못한 어두운 단면들을 마주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상처를 입기도 하고 감정 소모를 할 때도 있다. 이러한 것들이 쌓일수록 도망치고 싶을 만큼 진절머리가 난다. 경제적으로 도움도 안 되면 그 정도는 더욱 심해진다.
그렇게 참다가 결국 그만두고 다른 일을 하게 됐을 때. 신기하게도 격렬하게 사랑했던 일이 다시 머릿속에 떠오른다. 본인도 모르게 몸과 마음은 그 일을 향해 가고 있다. 돌아가면 괜히 나 자신에게 지는 기분이 들어 억울한 기분도 들지만 사랑했던 일을 다시 마주할 때, 잊었던 행복을 느낀다.
왜 이런 것일까. 그만큼 그 일이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긴 존재' 였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온 정성을 다해 아끼고 귀중하게 여기는 존재가 몇이나 있을까. 가족이나 연인, 어떠한 물건 외에는 거의 없다시피 하다. 나의 인생이 담긴 것이기에 뒤돌아서면 생각날 수가 밖에 없다. 격렬히 사랑했던 옛 연인이 기억나는 것처럼 말이다.
사랑하는 일을 하더라도 가슴 아프거나 답답한 순간들이 찾아온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행복을 위한 오르막 길'을 걷기 위해 겪는 과정이라고 생각해보자. 다른 사람들은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하지만 나는 내가 진심으로 사랑하는 일을 하며 살고 있다는 자부심을 갖자.
적어도 그런 일을 하는 나는 무의미하게 일을 하는 사람들보다 '행복'이란 관점에선 훨씬 앞서 있으니까 말이다.
니나 시몬: 영혼의 노래
이 다큐멘터리는 나에게 사랑하는 일이 어떠한 존재인지를 다시 한번 일깨워 준 멋진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