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D 영상을 보다가 눈에 들어오는 강연이 있었다.
모델 카메론 러셀(Cameron Russell)의 'Looks aren't everything. Believe me, I'm a model' 이란 강연이었다. 해석하자면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닙니다. 믿어도 괜찮아요. 제가 모델이거든요.' 정도일 것이다. 제목을 읽자마자 어떤 내용일지 궁금해졌다. 화려한 직업이라고 일컫는 모델이 겉모습의 중요성을 다르게 해석하는 것인가?
강연을 보니 예상한 바가 맞았다. 부모님으로부터 좋은 유전자를 물려받은 러셀. 또래에 비해 큰 키와 뚜렷한 이목구비, 윤기 나는 머릿결, 균형감 있는 신체 비율, 게다가 '백인'이라는 인종. 카메라를 향해 보이는 연기력도 나쁘지 않으니 모델로서 완벽한 잠재력을 가진 그녀였다. 생각해보면 모델만큼 '외모'가 중요한 직업이 몇 없다는 것 같다.
훌륭한 모델이 되기 위해선 신장, 분위기, 눈빛, 머릿결, 비율, 피부색, 몸무게, 연기력 등 정말 많은 요소들이 필요하다. 인성도 있을 수 있겠지만 대중들은 화보나 패션쇼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모델'을 신경 쓰지 그 사람의 과거와 성격에 큰 관심은 없다. 그만큼 외적인 부분을 중요하게 여긴다는 것이다.
하지만 러셀은 말한다. 일반인들보다 '완성도'높아 보이는 모델들도 그 모습이 결코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그 뒷면에는 너무나도 고통스러운 노력이 수반되며 평소에도 편안하게 행동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어떻게 보면 그저 멋져 보이는 우리들의 모습은 '겉 껍데기'에 불과할 수 있다는 것을.
대부분의 사람들은 예쁘고 잘생기고 키도 큰 멋진 모델들을 보면 부러워한다. 나도 사실 그렇다. 길가다가 일반인들과는 전혀 다른 종족(?)처럼 느껴지는 모델들이 지나가면 '우와'하고 쳐다보게 된다. 허리가 내 가슴 높이에 있는 것도 신기하고, 나라면 절대 어울리지 않을 옷도 척척 소화해낸다. 그들도 우리의 시선을 느끼는지 더욱 도도하고 우아하게 앞을 보며 걷는다. 저런 모습으로 단 하루라도 살면 좋겠다는 생각도 종종 하곤 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런 생각이 얼마나 철없는 생각인지 알 수 있다. 남들이 부러워할 만큼 수려한 외모를 갖추기 위해 모델들이 겪는 '고통과 노력'을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TV 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에 출연했던 모델 한혜진 씨의 스토리를 본 적이 있다. 화보 촬영이 잡히면 몇 날 며칠 먹고 싶은 것도 못 먹고 운동만 한다. 끝도 없는 워킹과 포즈 연습 그리고 지속적인 트렌드 파악까지.
그런 혹독한 관리를 오랜 세월 한 탓인지 그녀의 관절은 성한 곳이 없고 정신적 스트레스도 상당해 보였다. 한 편으로는 안쓰러워 보이기까지 했다. 나 같으면 애초에 포기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떤 모델들은 일상생활도 일의 연장선이라고 한다. '나는 모델이니까' 평소에 편하게 입는 옷도 괜히 한번 더 신경 써야 할 것 같고, 친구들과 모인 자리에서도 '나는 모델이니까' 앉은 자세, 서 있는 자세도 스스로 엄격하게 평가한다고 말한다. 소위 최고로 평가받는 혹은 최고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모델들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하나 같이 이처럼 혹독하게 관리하는 듯하다.
완벽해 보이는 그들이지만 그 모습 뒤편에는 이와 같은 노력이 숨어있다.
왜.
불완전하니까
내 아는 지인은 2억이 넘는 스포츠카를 세 대나 타고 다녔다. 가방도 루이비통의 클러치백에 지갑은 벨루티 장지갑을 들고 다녔고 정장은 꼭 테일러샵에서 맞춰 입었다. 한 번 쇼핑을 하면 돈 백만 원씩 써가며 SNS에 인증 샷을 남겼다. 가난이 싫어 자신의 힘으로 사업을 일궜다는 가슴 절절한 이야기까지 해준 적도 있다. 명함에는 예쁜 폰트로 인쇄된 회사명과 '대표'라는 직함이 그 사람의 위치를 대변했다.
겉모습만 봤을 땐 완벽했다. 심지어 성격도 차분하여 늘 사람들에게 둘러 쌓여 있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비싼 스포츠카들은 지인의 것이었고 명품 아이템들도 불법 스포츠 토토로 벌어들인 돈으로 사치를 부린 것이었다. 당연히 회사 명은 가짜. 이 사실이 알려진 후 나와 지인들은 잠깐 꿈이라도 꾼 것처럼 어안이 벙벙했다. 금전적인 손해를 본 것은 없었지만 기분이 썩 유쾌하지 않았다.
이처럼 우리 주변을 보면 겉모습이 화려한 사람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입고 다니는 옷이 전부 명품이거나 타고 다니는 자동차가 고급 외제차인 경우가 그렇다. 또한 어떤 이는 수십억에 호가하는 아파트에서 살기도 하고, (코로나 이전) 다양한 해외 여행지를 밥 먹듯이 즐기러 다니는 사람도 있다. 정말 모든 것이 완벽해 보인다.
그러나. 현실은 완벽과 거리가 먼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어느 것 하나 허투루 입지 않는 사람이 알고 보니 옳지 않은 방식으로 누군가의 스폰을 받고 있기도 했고, 어떤 사람은 과소비로 빛까지 내며 허덕이기도 했다. 또한 애정결핍이나 정신적 트라우마로 자신을 끊임없이 꾸미려고 하는 욕구에 빠진 사람도 있었으며, 완벽한 모습을 유지하기 위해 광적인 다이어트 집착 및 SNS 중독에 시달리는 사람도 있었다.
물론 건강한 방식으로 자신의 겉모습을 관리하는 이들도 있지만 결국 관리의 고통과 이를 지속하려는 피눈물 나는 노력은 필요조건이었다. 글을 더 잘 쓰고자 하는 우리도 매번 문장과 씨름하지 않던가. 뛰어난 글 저 뒤편에는 우리가 감히 상상하기 힘든 저자의 엄청난 노력이 숨어있기 마련이다.
러셀의 강연을 보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절대로 사람은 겉모습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면 안 된다는 것을 말이다. 누구나 아는 지혜지만 생각보다 지키기 어려운 부분이다. 시각에 취약한 인간 특성상, 보이는 모습에 사람을 평가하고 그 '모자란' 평가에 모든 것을 대입하는 경향이 있다.
저 사람은 평소에도 저렇게 멋진 삶을 살겠지.
저 사람은 평소에도 저렇게 모든 일을 완벽하게 처리하겠지.
저 사람은 집에 돈이 많아 주변 사람들을 여유롭게 대하겠지.
저 사람은 자신이 열심히 일해서 경제적으로 자립을 한 거겠지.
저 사람은 인기가 많아 항상 좋은 사람들이 주변에 많겠지.
저 사람은 유전적으로 타고나서 저렇게 멋진 몸매를 유지하는 것이겠지
그러나 현실은.
그 사람은 사람들 앞에선 멋져 보여도 밤에는 어둠의 세상에서 일을 할 수도 있고
그 사람은 완벽해 보일지라도 하는 일을 책임감 없이 대하는 성격일 수도 있고
그 사람은 돈이 많아도 친한 친구들에게 조차 10원 하나 쓰기 싫어하는 성격일 수도 있고
그 사람은 불법적으로 돈을 벌었거나 누군가를 갈취하여 부를 이룬 사람일 수도 있고
그 사람은 자신에게 뭐라도 뺏어 먹을 게 없나 호시탐탐 노리는 가짜 인맥에 지쳐 있을 수 있고
그 사람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남들 술 마시고 놀 때 혹독하게 운동하며 관리하는 것일 수도 있다.
아무도 모른다.
겉으로 보이는 것은 한 사람을 구성하고 있는 여러 요소 중 '하나'일 뿐이다. 따라서 수려한 외모를 지닌 사람을 보고 마냥 부러워할 것 없다. 앞에 언급한 것처럼 생각보다 뒤가 구릴 수도 있는 것이고, 평범한 사람은 돈을 받으면서 해도 할 수 없는 노력을 하는지도 모른다.
상대방이 가진 겉모습만 보고 속단하지 말자.
우리는 너무나도 불완전한 존재이다.
겉모습은 '겉모습'일 뿐이다.
<카메론 러셀(Cameron Russell) 강연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