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외투의 또 다른 종류로 '패딩'이 있다. 한파도 한파 나름이라서 두꺼운 울 코트로는 감당이 안 될 때가 있다. 그때는 패딩이 답이다. 빵빵한 패딩 하나면 동장군이 기승을 부려도 두렵지 않다. 좋은 패딩은 안에 상의 한 벌만 입어도 따뜻하다. 걷다 보면 등에 땀이 나기도 한다. 반면 품질이 저급한 패딩은 해가 갈수록 숨이 죽는다. 어떤 것은 누린내가 나거나 털 빠짐이 심하다. 패딩은 보기보다 까다로운 옷이다. 잘 골라야 문제없이 입을 수 있다.
패딩은 충전재와 겉감을 눈여겨본다. 이 두 가지가 조화를 이루는 것이 중요하다.
충전재
패딩 충전재는 거위털(구스다운)과 오리털(덕다운)이 주로 쓰인다. 패딩이 따뜻한 이유는, 털 사이에 공기층이 형성되어서 그렇다. 공기층은 벽처럼 작용하여 외부의 냉기를 막고, 체온이 밖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방지한다. 보통 거위 털이 오리털보다 고급 충전재로 알려져 있다. 보온성이 좋고 무게가 가볍다는 이유 때문이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조금 생각해 봐야 할 것이 있다.
평균적으로 거위가 오리보다 크다. 그래서 털 길이도 길다. 털이 길면 털 사이에 공간이 넓어서 공기층이 많이 생긴다. 그만큼 체온 보존력이 우수하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오리보다 덩치가 큰 거위의 털'을 사용했을 때 이야기다. 거위보다 큰 오리의 털로 만든 패딩은 작은 거위로 만든 패딩보다 따뜻하다. 무게가 조금 더 나가지만 체감할 정도는 아니다. 나는 살면서 눈 감고 거위 털 패딩과 오리털 패딩을 구분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구분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인간의 오감을 넘어선 자일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패딩을 선택해야 할까. 핵심은 충전량(우모량)이다. 볼륨이 있고 눌렀을 때 빠르게 부풀어 오르는 패딩을 사야 한다. 단순히 거위 털 패딩이라고 해서 뛰어난 것이 아니다. 최상급 거위 털을 사용한 패딩은 같은 충전량의 오리털 패딩보다 따뜻하다. 그러나 일반적인 패딩은 개체 차이가 크지 않은 거위 털과 오리털로 채워져 있다. 보온성도 무게도 비슷하다. 굳이 거위 털 패딩만 고집할 필요가 없다. 같은 스펙이라면 저렴한 것을, 같은 가격이라면 충전재가 두툼히 든 것을 고르면 된다. 충전량은 250g~400g이면 충분하다. 충전재 비율은 솜털 9:깃털 1 혹은 솜털 8:깃털 2인 것이 적당하다.
필파워의 차이. ⓒPARUDEN
다음으로 '필파워(Fill Power)' 수치를 확인한다. 필파워는 거위 털과 오리털의 복원력을 의미한다. 필파워가 높을수록 털 사이에 공기를 풍부하게 머금고 있어서 눌리고 나서도 크게 부풀어 오른다. 즉, 높은 필파워는 높은 보온성을 보장한다. 일반 패딩의 필파워는 약 600~700이다. 이 정도만 되어도 우리나라에서 입는 데 무리가 없다. 필파워만 높다고 해서 따뜻하지 않다. 충전량도 받쳐줘야 한다. 필파워 800에 무게 100g 경량 패딩과 필파워 600에 무게 350g 패딩 중 어느 것이 따뜻하겠는가. 당연히 후자이다.
마지막으로 'RDS(Responsible Down Standard-책임 다운 기준)' 인증을 확인한다. 몇 년 전, 거위와 오리털의 채집 실태가 고발되면서 파문이 일었다. 털을 산채로 뽑거나, 억지로 동물에게 사료를 먹이는 모습 등이 사회에 알려진 것이다. 이후 세계 각지에서 동물 보호 운동이 일어났다. 동물 보호 단체는 동무 보호를 위한 실질적인 법률과 인증 제도의 확립을 요구했다. 그 요구에 부응한 것이 RDS다. 2014년 미국 비영리 섬유 협회 '텍스타일 익스체인지'와 아웃도어 브랜드 '노스페이스'가 공동 연구한 인증 제도이다.
RDS 인증을 받은 패딩은 윤리적으로 채집한 동물의 털만을 쓴다. 예를 들어, 죽은 거위·오리의 털이나 사육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탈락한 털을 사용하는 것이다. 인간이 만물이 영장이라는 이유로 다른 동물의 고통을 당연시할 수는 없다. 기회가 있으면 RDS 인증 패딩을 경험해볼 것을 추천한다. 인간의 윤리와 동물의 존엄을 지키는 소비가 될 것이다.
겉감
패딩의 겉감 소재로는 나일론 원단이 좋다. 나일론 원단 중에서도 두께가 두꺼운 것을 고른다. 그런 패딩이 변형이 거의 없고 바람을 잘 막는다. 방수 코팅된 나일론은 겨울철 눈비로부터 옷을 보호할 수 있어서 더욱 좋다. 겉감이 울과 면으로 만들어진 패딩은 추천하지 않는다. 면은 수분에 취약하고, 울은 워셔블 울이 아닌 이상 물세탁이 안 된다. 패딩은 물세탁을 해야 한다. 드라이클리닝을 하면 털의 기름기가 손상되어서 보온성이 떨어진다. 울이 겉감이면 물세탁을 할 수 없다.
폴리에스터가 겉감인 패딩도 괜찮다. 대신 비닐처럼 반짝이거나 질감이 존득거리는 패딩은 피한다. 무언가에 쓸렸을 때 쉽게 찢어질 수 있다. 표면에 광택이 없는 겉감이 생활 마찰에 강하다. 봉제선도 살펴봐야 한다. 패딩 중에서 가로 혹은 세로로 여러 조각이 봉제된 것들이 있다. 패딩하면 떠오르는 전형적인 디자인이다. 구매할 때 가로 봉제선은 세로로, 세로 봉제선은 가로로 살짝 당겨 본다. 바늘구멍이 보일 정도로 봉제가 허술한 것은 털 빠짐 현상이 잦다. 틈이 조밀해야 털이 빠지지 않는다.
패딩은 아울렛이나 역시즌을 이용하면 저렴하게 구할 수 있다. 나는 50만 원짜리 오리털 패딩을 여름에 12만 원에, 70만 원짜리 거위 털 패딩을 20만 원에 아울렛에서 건졌다. 가격대가 비싼 겉옷은 이 방식으로 접근하면 유용하다. 현명한 소비가 옷질을 즐겁게 한다.
올겨울도 역대급 한파가 올 것이라는 뉴스 기사를 봤다. 시베리아에서 건너오는 차가운 칼날들이 온몸을 헤집고 지나갈 때마다 정신이 아찔하다. 그 아찔함이 무서워서 매번 가을부터 단단히 준비한다. 그래도 막상 한파를 마주하면 늘 후회한다. 패딩 지퍼를 코 위까지 채우고, 두 손을 주머니에 깊숙이 찔러 넣어봤자 소용없다. 추위는 어떻게든 비집고 들어와서 나의 육체를 얼린다. 피부의 시림이 진동할 때마다 짜증이 치솟는다. 그렇지만 이번 겨울은 마음을 고쳐먹기로 했다.
추워야 겨울이고 겨울이어야 추워진다. 그것이 자연의 순리이니 받아들인다. 겨울은 지독한 추위가 1년에 딱 한 번 있는 계절이다. 나는 그 추위를 유연한 마음으로 즐길 것이다. 추워도 너무 불평하지 않을 것이다. 추우니까 따뜻함도 알 수 있으니까. 아침과 밤이 되면 겨울의 손 인사가 저 멀리서부터 보인다. 며칠 후면 나는 겨울을 만난다. 그날을 위해 옷 방 한구석에 놓인 보관함에서 패딩들을 꺼낸다. 두 손으로 잠든 숨을 깨운다. 이들의 기지개가 반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