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질 좋은 신발을 찾기 위해 애썼었다. 그런데 신발은 옷과 성격이 달랐다. 소재를 기준으로 접근하면 실패했다. 사고 버리기를 반복하다가 산책용 운동화에서 답을 얻었다. 나는 공원으로 산책하러 갈 때 신는 신발이 있다. 2016년 봄에 산 것이다. 그때부터 겨울을 제외하고 주에 한두 번씩 신었다. 얇은 매시로 만들어졌는데도 밑창이 조금 닳은 것 말고는 멀쩡하다. 매일 신었다면 2년도 안 되어서 어딘가에 구멍이 났을 것이다.
그 운동화를 보며 깨달았다. 아, 소재보다 착용 횟수가 신발 수명에 영향을 미치는구나. 이 간단한 이치를 왜 인제야 알았을까. 신발은 체중을 짊어지고 거친 땅바닥을 밀어낸다. 그래서 소재가 무엇이든 마모가 빨리 일어난다. 신발 소재는 내구성과 큰 관련이 없다. 여러 켤레를 바꿔 가면서 신는 것이 신발을 오래 신는 방법이다. 착용 습관도 바르게 교정하면 그 기간은 더 길어진다.
신발은 최소 3켤레여야 한다. 한 켤레를 하루 신었으면 이틀 쉰다. 월요일에 하나, 화요일에 다른 것 하나, 수요일에 또 다른 것 하나. 목요일에는 월요일에 신었던 것을 다시 신는 식이다. 신발은 우리가 신는 동안 수없이 접히면서 바닥에 닿는다. 이때 신발 모양이 조금씩 틀어진다. 신발 내부는 발에서 나는 땀에 노출된다. 한 번 신은 신발을 연속으로 신으면 신발은 계속 틀어지고 젖은 상태가 된다. 따라서 일정한 주기로 신발을 신어야 한다. 착용하지 않을 때, 틀어진 모양이 돌아오고 밑창이 건조되면서 상태가 회복된다. 튼튼한 신발이라도 매일 신으면 일찍 망가진다.
착용 습관도 중요하다. 힘주어 쾅쾅 걷거나, 뒤꿈치 바깥 부분이 땅에 먼저 닿거나, 앞꿈치를 꺾은 채 앉는 습관은 밑창이 닳는 속도를 높이고, 발가락이 접히는 부위에 균열을 만든다. 특히 앞의 두 습관은 무릎, 척추, 골반에 무리가 간다. 잘못된 걸음걸이로 체내에 강한 충격이 전해지기 때문이다. 하루아침에 고칠 수는 없겠지만, 조금씩 개선하면 건강도 챙기고 신발도 오래 신는 일거양득의 효과를 얻을 것이다.
신발 소재가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일부 소재로 만든 신발은 내구성이 약하다. 특정한 구조의 신발도 그러하다. 그 예시는 다음과 같다.
가루가 생기는 밑창
밑창 아래와 옆을 손가락으로 밀었을 때 지우개처럼 가루가 생기는 신발이 있다. 이런 것은 피해야 한다. 성질이 물렁거려서 굽이 금방 닳는다. 밑창은 마찰이 잦고 체중이 실리는 곳이다. 이곳이 허술하면 걸을 때 불안정하고 사용 기간이 짧아진다. 밑창은 신발의 기둥이다. 품질에 하자가 있어서는 안 된다.
에어가 노출된 구조
(점선 표시) 에어가 바깥으로 노출된 구조. ⓒNIKE
밑창에 에어가 노출된 신발이 있다. 에어는 쿠션감을 위해 넣은 기능성 부자재다. 밑창 겉으로 드러나 있어서 독특한 멋이 난다. 그러나 잘 터지는 것이 문제다. 내 주변에 이 문제로 고생한 지인들이 많다. 애석하게도 대부분의 브랜드에서는 터진 에어를 수리해주지 않는다. 불량이 아닌 이상 고객 과실로 처리된다. 조심히 신어야 한다.
뱀프에 덧대어진 겉감
(점선 표시) 뱀프 위에 겉감이 덧대어진 형태. ⓒNew Balance
뱀프는 신발 앞쪽 부분을 가리킨다. 걷거나 뛸 때 신발이 접히는 부위이다. 어떤 신발은 뱀프 위에 합성 가죽, 폴리에스터, 면 등의 겉감이 덧대어져 있다. 신다 보면 덧대어진 곳의 실밥이 터지거나, 합성 가죽은 표면이 벗겨지기도 한다. 뱀프가 접히고 펴지기를 반복하면서 겉감 소재에 힘이 가해져서 그런 것이다. 본인이 활동량이 많거나 앞꿈치를 힘주면서 걷는 습관이 있으면, 신중하게 구매할 필요가 있다. 앞꿈치를 꺾은 채 앉는 사람도 이에 해당한다.
나는 주력으로 신는 신발 3켤레, 막 신는 신발 1켤레, 산책용 운동화 1켤레 총 5켤레가 있다. 막 신는 신발은 비나 눈이 많이 내릴 때 신는다. 이 신발이 망가지면 주력 신발 중에서 가장 낡은 것으로 대체한다. 그리고 새 신발을 사서 3켤레를 채운다. 이렇게 해서 큰돈 들이는 것 없이 신발 착용 기간을 늘렸다. 한 켤레당 족히 4년 이상은 신는 듯하다. 예전에는 10켤레씩 있었는데 공간만 차지했다. 신발이 많아도 신는 것만 신었다. 그래서 과감히 수를 줄였다.
나는 내 신발을 볼 때마다 생각이 깊어진다. 신발은 아낌없이 주는 나무 같다. 지저분한 바닥에 자기를 내던져서 내 발을 보호한다. 차가운 눈과 비를 대신 맞는다. 내 발이 움직이는 대로 움직여서 내가 어디든지 갈 수 있게 해준다. 그 고마움을 모르고 나는 신발을 벅벅 벗는다. 옷만큼 신경 쓰면서 관리하지 않는다. 분명 서운할 법도 한데 신발은 불평하지 않는다. 불만도 품지 않는다. 그저 나와 함께한다.
신발은 군데군데 주름이 졌고 신발 끈에 녹 얼룩이 피었다. 신발은 늙었다. 그런데도 끝까지 나를 지켜준다. 경험하지 못한 세상 속으로 나를 안내한다. 곧 정든 나의 발과 이별할 것을 알면서도 자기 역할을 다한다. 그런 신발과 마지막 순간을 보낼 때 나는 후회한다. 우리의 관계만큼 깊이 닳은 뒷굽을 보면, 거칠게 갈린 앞 코를 보면, 나의 체온이 남은 깔창을 보면, 나는 슬프다. 신발과 함께 한 순간은 사진 몇 장으로 기억될 뿐이다.
그동안 많은 신발을 만났고, 또 떠나보냈다. 나는 그들이 고맙다. 그들이 있었기에 나는 마음껏 걸을 수 있었고, 뛸 수 있었고, 내 자리 위에 설 수 있었다. 그들은 언제나 제일 밑바닥에서 자기를 희생했다. 나는 그들의 숭고한 정신에 고개를 숙인다. 내일은 주말이다. 오랜만에 신발들을 꺼내어 햇빛을 쐬어주고, 깨끗한 물수건으로 때 묻은 흔적을 지워야겠다. 그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정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