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질에 정답은 없다. 누군가는 유행하는 옷을 그때그때 입길 원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비싸더라도 질 좋은 옷을 오래 입기를 원한다. 나의 성향은 후자다. 나에게 잘 어울리는 옷이라도 소재의 질이 안 좋으면 나는 입지 않는다. 구입한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남루해지는 옷을 보면 허무하다. 그 옷을 만든 사람들의 노력은 어찌할 것이고, 나의 소비는 어떤 의미인 것이며, 미어져 버려진 옷을 감내해야 하는 환경에 우리는 또 어떻게 고개를 숙여야 하는가. 질 떨어지는 옷을 한 철 입고 내다 버리는 행위는 여러 고민을 낳는다.
나 역시 과거에는 유행만을 좇으면서 옷을 쉽게 구매하고 쉽게 버렸다. 나에게 옷은 멋을 내기 위한 옷가지에 불과했다. 올바른 옷질이 무엇인지 나는 고민하지 않았다. 그렇게 남는 것도 없는 옷질의 굴레 속에서 돈과 시간을 낭비하고 나서야, 옷질에 대한 우둔한 나의 태도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제대로 된 옷을 입고 싶었다. 한두 해 입으면 쓰레기봉투나 헌 옷 수거함으로 들어가는 옷이 아닌, 두고두고 입을 수 있는 옷을 입고 싶었다. 그때부터 '질 좋은 옷을 오래 입자.'라는 나의 옷질 철학이 형성되었다.
질 좋은 옷의 기준이 무엇일까. 나는 그 기준을 '소재'에서 찾았다. 브랜드 명성과 디자인은 기준이 될 수 없다. 명품 옷이어도, 디자인이 훌륭한 옷이어도 품질이 조악한 것들은 얼마든지 있다. 그러나 소재는 다르다. 옷마다 어울리는 소재와 소재 등급, 소재 가공법이 있다. 거기에 부합하는 옷은 문제없이 입을 수 있다. 내가 그러했고, 옷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그러했다. 소재를 중심으로 옷에 접근하니 옷질이 재미있어졌다. 소재를 꼼꼼하게 살펴서 고른 옷을 수년간 입고 있는 나를 보면 묘한 희열감을 느낀다.
나는 그 희열감을 다른 사람도 느끼길 원했다. 그래서 감히 옷 소재에 대한 글을 쓰겠노라고 마음먹었다. 소재는 결과 하나로 수렴하지 않는다. 같은 소재의 옷이라도 수명이 전부 다르다. 착용 습관, 관리 주기, 원단 등급, 직조 방식 등 다양한 요인에 의해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울만 해도 이탈리아 울, 영국 울, 스코틀랜드 울, 제3국 울 등이 있고, 거기에서 파생된 품질의 다양함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이다. 깊은 부분까지 다루면 글의 장벽이 높아질 것이므로, 소재의 보편적인 특성을 어려운 용어 없이 정리하려고 노력했다. 그것만 알아도 질 좋은 옷을 고르는 안목을 기를 수 있다고 확신한다.
나는 사람들이 옷을 오래 입었으면 한다. 오래 입을 수 있을 만큼 품질 좋은 옷을 사서 그 옷에 자신의 인생을 담길 바란다. 시간이 갈수록 그 옷은 처음과 달리 색이 바래고, 소매가 조금씩 해지고, 형태는 느슨해질 것이다. 그것은 낡음이 아니다. 나의 지나간 순간들을 오롯이 기억하는 흔적이다. 그 흔적은 오직 질 좋은 옷만이 만들 수 있다. 나는, 사람들이 의미 있는 옷질로 그들의 삶을 공유할 수 있는 옷을 입었으면 한다.
2021.10.06. 수
안개 자욱한 아침에 마침표를 찍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