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행복은 역시 꿈이었던 걸까?‘
중학생 때쯤 일본 밴드 레드윔프스가 ‘노래 좀 안다’ 하는 친구들 사이에서 유행이었다. 나는 그 중 별로 알려지지 않았던 <히키코모리 롤링(Hikikomori Rolling)>이라는 노래를 가장 좋아했다. 이제는 웬만한 음원 사이트에서도 서비스하지 않는 노래라 생각날 때마다 간간이 유튜브에서 재생하고 있다. 그중 유독 잊혀지지 않는 가사 한 줄을 소개한다.
君の生きてる今がこの瞬間が 「嘘です 夢です本当は君死んでます」
네가 살고 있는 지금이, 이 순간이 ‘거짓입니다, 꿈입니다, 사실 당신은 죽어있습니다’
って言われたそんな時も笑えるようこんな幸せやっぱり夢だったのかぁって
라는 말을 듣게 된 그런 때에도 웃을 수 있도록. ‘이런 행복은 역시 꿈이었던 걸까?’ 라면서.
지금까지 내 삶이 모두 꿈이었다는 말에 ‘이런 행복은 역시 꿈이었던 걸까?‘라고 중얼거리며 웃을 수 있는 삶은 대체 어떤 걸까, 그런 생각을 많이 했었다.
슬프게도 나의 경우 정확하게 정반대였다.
강간 피해로 6개월간 천주교성폭력상담센터를 드나들며 그 일은 강간이었구나, 라는 확신이 들었다. 피해가 발생한 후 거의 일 년이 지났을 때에서야 법률 상담을 받았다.
절반의 가능성만 있어도 승산이 있다고 여기는 민사와는 달리 형사 사건에서는 70~80%의 확신이 있어야만 처벌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민사는 개인의 승리고 형사는 법적 처벌의 영역이니 당연한 부분이다.
나의 경우를 모두 짚은 변호사는 50%의 확률이 있다고 했다. 그러니까 형사 사건에서 확신이 큰 상황이 아닌 것이다.
증거 불충분이 걸림돌이 될 거라고 생각했지만 의외로 진술 부분이 문제였다. 확실한 거절이 없었다는 것이 문제였다. 일반강간으로 고소할 경우 누가 봐도 확실한 거절, 예를 들어 CCTV로 확인했을 때 손을 뿌리쳤다든지 하는 명확한 거절 의사를 내비쳤음에도 폭행 또는 협박(이 경우 흔히 생각하는 물리적 폭행, 즉 손찌검이 아니어도 된다. 멍이 들 만큼 세게 이끌었다든가, 위협적인 언어로 협박했다든가 하는 것도 폭행에 해당한다)으로 강간에 이르러야 하는데 나는 이에 해당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술에 취해 있었으니 준강간은 어떨까. 준강간이라고 해서 일반강간보다 약한 강간이 아니다. 준강간은 ‘심신상실이나 항거불능상태’를 이용해 강간과 유사한 형태의 결과를 초래한 범죄를 뜻한다. 당시 나는 내가 만취 상태라고 생각했으나, 변호사는 준강간에 해당하기 위해서는 ‘눈을 떴다 감으니 옷이 모두 벗겨져 있는’ 정도가 되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나는 이 또한 해당하지 않았다.
몇 배로 절망스러웠다. 나는 강간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서도 강간임을 몰랐기에 거절을 하지 못 한 걸까, 그런 생각도 들었다. 그렇다면 상대도 강간을 몰랐기에 내가 불쾌해함을 알면서도 계속 행위를 했던 걸까. 사실 강간은 없었던 게 아닐까. 그렇다면 나는 왜 PTSD 진단을 받은 걸까. 오리무중에 빠졌다. 6개월간 지속된 나의 강간 찾기 여정이 위기에 봉착했다. 나는 분명 불쾌하고 원하지 않은 성관계를 ‘당했’고 피임을 선택할 수 조차 없어 피해를 입었음에도 그는 법적 책임에서 자유로웠다. 그렇다면 내 피해는 누가 보상해줄 수 있을까.
퇴근 후 누구는 자아성찰을 위해 요가를 하고, 누구는 영어를 배우고 일본어를 공부하고 사교활동을 하는데 나는 천주교성폭력상담센터에서 휴지를 뜯어 가며 눈물을 흘렸는데 그는 여전히 범법자가 아니었다. 그렇다면 나는 뭘까? 스스로를 강간 피해자라고 착각하며 사는 여성? 아니면 정말 피해자지만 법적으로는 피해자가 아닌 사람? 그런 명제가 애초에 있긴 한가. 그래서 나는 이 사건을 스스로 명명하기로 했다. ‘가벼운 강간’이라고. 다시 여정이 시작됐다.
내가 피해라고 생각하고 그를 가해자라고 여겼던 시간들은 정말 꿈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