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깊이 스며들었느냐다
사람은 저마다의 이유로 책을 펼친다. 어떤 이는 지식을 쌓기 위해, 어떤 이는 살아보지 못한 삶을 배우기 위해, 또 다른 이는 잠시 다른 사람이 되어보기 위해 책장을 넘긴다. 때로는 책을 통해 세상을 바꾸려 하고, 누군가의 삶에 작은 떨림을 남기려 한다. 그러나 독서의 가치는 단순한 숫자로 환산되지 않는다. 몇 권을 읽었느냐가 아니라, 한 권의 책이 마음속에 얼마나 깊이 스며들었느냐가 중요하다.
책이란 단순한 종이 묶음이 아니다. 그것은 저자의 시간과 사고, 감정과 사유가 응축된 결정체이며, 한 시대를 초월해 흐르는 강물과도 같다. 우리는 그 강물에 발을 담그기도 하고, 깊이 잠기기도 하며, 때로는 완전히 휩쓸려 새로운 세계로 나아간다. 한 줄의 문장이, 한 권의 책이, 한 사람의 운명을 바꿀 수도 있다. 마음을 흔드는 문장은 단순한 활자가 아니다. 그것은 심장을 두드리는 파동이며, 생각의 지평을 넓히는 한 줄기 빛이다.
많은 책을 읽었지만, 그 흔적이 남지 않는다면 그것은 마치 바람이 스쳐 간 모래 위의 발자국과 같다. 그러나 단 한 권이라도 영혼을 적신다면, 그 독서는 깊이 뿌리내려 오래도록 우리의 일부가 된다. 책이 우리 안에서 숨 쉬고, 우리의 사고를 재편하며, 삶의 태도를 바꾸어 놓는다. 깊이 읽고, 곱씹으며, 문장 사이에 숨어 있는 의미를 탐색할 때, 우리는 비로소 진정한 독서의 의미를 깨닫게 된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곧 누군가의 삶을 통째로 빌려 사는 것이다. 저자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그의 가슴으로 느끼며, 그의 언어로 사유한다. 그러나 진정한 독서는 단순한 모방이 아니다. 그것은 타인의 경험을 자신의 것으로 삼아, 새로운 통찰로 나아가는 과정이다. 문장을 넘기며 우리는 저자의 흔적을 따라가지만, 결국에는 자기만의 길을 만들어 나간다. 읽는다는 것은 타인을 이해하는 일이며, 나를 찾아가는 여정이기도 하다.
그러니 너무 많은 책을 읽지 못했다고 조급해하지 말자. 중요한 것은 단 한 권이라도 온전히 읽는 것이다. 서두르지 않고, 한 문장 한 문장을 음미하며, 글이 우리 안에서 천천히 녹아들게 해야 한다. 문장이 피가 되고 살이 되어, 언젠가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이 되도록. 결국 독서란 숫자가 아니라 깊이다. 책장을 덮을 때, 우리는 얼마나 많은 책을 지나왔는지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책이 우리 안에 머물렀는지를 기억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