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이미지 : 이삿짐이 도착한 직후, 1층 부엌과 거실. 2층 방들에도 이삿짐이 박스채로 가득 찼다.)
*뉴욕시티(NYC)로 표기하지 않은 "뉴욕"은 뉴욕 주(NYS)를 의미하며 대도시가 아닌 교외지역입니다.
이삿짐이 왔다. 하지만 진짜 이사는 지금부터
우리가 휴가 내고 뉴욕시티에 2박 3일 다녀온 바로 그 주말에, 한국 이삿짐이 집에 도착하게 되어있었다.
세은이가 뉴욕에 오고 나서도 한 달 20일이 넘게 걸린 건데, 그동안 가족 모두가 바닥에서 자고 여러 가지 부족함에서 오는 불편함을 잘 참아주었다. 짐만 받고 나면 정말 사람처럼 살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이삿짐은 이미 일주일 전에 뉴욕항에 도착해서 통관 절차를 마쳤고, 강 건너 한인타운이 있는 뉴저지 주 팰리세이즈 파크(Palisades Park, NJ)의 한인 이사업체가 우리 짐을 찾아서 3시간 넘게 트럭에 싣고 와서 배송해 준다고 전화를 받았다.
이사 업체에서는 6명이 일을 하러 올 거라고 했는데, 그중에 인부들은 스페인어를 하는 라틴계 사람들이지만 책임자는 한국 사람이어서 의사소통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다. (미국에 살지만 영어를 전혀 못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짐이 오기 전날, 아내와 나는 한국에서 이사할 때 기록했던 짐 목록들을 보면서 어떤 짐을 어디에 놓을지 미리 정해 놓아야 했고 일하시는 분들이 찾기 쉽도록 방문마다 이름을 붙여두었다.
다음날 아침에 출발한다고 연락받은 뒤 3시간 후, 11시쯤 우리 짐을 실은 세미 트럭(Semi Trailer Truck)이 미국 우리 집에 도착했다. 오! 드디어 우리 짐이 왔다.
트럭이 차고 진입로에 주차를 하고 짐을 내리기 시작한다. 아차, 내 차가 차고 안에 있어서 뺄 수가 없게 되었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이따가 인부들 점심을 내가 사줘야 하는데, 어쩔 수 없이 우버(Uber)로 배달을 시켜야 한다.
배달비와 기사 팁이 음식값에 비례해서 매겨지기 때문에 우리는 배달보다는 직접 매장에 가서 음식을 픽업하는 편이었다. 한마디로 차를 미리 못 빼서 $10 정도 돈을 더 쓰게 생겼다는 뜻이다.
짐을 내릴 때도 한국에서 짐을 보낼 때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직접 해야 할 일은 거의 없었다.
트럭에서 내려진 박스가 하나씩 집으로 들어올 때마다, 박스에 적힌 번호와 한국에서 작성한 목록표와 맞는지 확인하고 어느 방으로 보내야 할지를 불러주기만 하면 되었다.
가구는 분해된 상태로 왔는데, 인부들이 다시 조립해서 배치까지 해 주었고, 친절하게도 박스들을 일일이 뜯고 풀어서 제 위치에 채워 주었다.
하지만 짐이 들어올수록, 우리가 모든 짐의 위치, 종류, 양 그리고 집 수납공간의 크기 등을 정확히 고려하지 못하다 보니 박스들이 점점 뜯지 않은 채로 여기저기에 쌓아두기 시작했다.
"아 일단 그냥 여기 놔주세요." 이런 식으로 박스가 한번 안 뜯긴 채로 쌓이기 시작하면 이제 걷잡을 수 없게 된다.
어쨌거나 모든 짐이 들어온 것을 확인하고 수령증에 마지막 서명을 하고 나니 오후 3시. 이사업체 직원들은 일을 마치고 돌아갔다.
집 모든 곳에 뜯은 박스, 안 뜯은 박스, 뜯다 말고 버려둔 것들, 쓰레기 등 여기저기 어지럽게 나뒹굴고 있다.
평화롭던 우리 집은 다시 난장판이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하아..."
애를 재우려면 해가 지기 전에 잠을 잘 수 있는 공간은 만들어 놔야 했다. 먼지 안 나게 방 청소도 해야 하고.
(사진) 우리 짐을 싣고 온 세미트럭 (짐칸과 운전석이 연결되어 있는 일체형 트럭)
(왼쪽) 한국에서 적어 온 이삿짐 목록표 (오른쪽) 안방에 잔뜩 쌓인 이삿짐. '에라 모르겠다.' 세은이와 티비를 보고 있는 베짱이 남편. 일하고 있던 아내가 찍음.
2층에 있는 방 4개 모두 한쪽 벽 안으로 미닫이 문이 달린 벽장(Closet)이 있어서 가져온 옷을 넣어두기에는충분해 보였다.일단 옷을 박스채로 처박아둔다.
당장 필요 없는 것들은 다 지하실로 보내고, 쓸지 안 쓸지 모르는 것들은 1층 거실에 쌓아두고, 책은 책장에 꽂고, 식기는 주방선반, 중간중간 포장 박스와 완충재 같은 것들은 한 번에 버리기 위해 차고에 모으고... 우리는 오후 내내 정리했지만 너무 많은 양이고 이건 하루 이틀에 끝날 문제가 아니었다.
나는 이삿짐 받고 나서곧바로 주재원 동기 헤이니네랑 옆집 Gavin 가족을 집에 초대하고 싶은데 이 속도라면 아무래도 한두 달은 지나야 가능할 것 같아 보였다.
그래도 한국에서 쓰던 침대와 이불 그리고 세은이의 옷과 책이 제 자리를 잡고 나니 비로소 이곳이 진짜 우리 집이 된 것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특히, 다음 주 세은이가 학교 가기 전에 세은이의 물건들이 모두 도착해서 참으로 다행이었다.
학교 갈 준비 : "4학년이 되었어요."
뉴욕은 9월 둘째 주에 새 학년이 시작되고 다음 해 6월 말까지 겨울방학 없이 다니게 된다.
학교 홈페이지에는 각종 휴일과 평가 기간 등 각종 1년간의 일정이 모두 나와 있어서 앞으로의 여행 일정을 짜기에 편리했다.
한국 같은 긴 겨울 방학은 없고, 11월 추수감사절, 12월 크리스마스 그리고 2월과 4월에 각각 1주일 정도의 휴가(Recess, Break)가 있다.
학교에서는 개학을 며칠 앞두고 각종 안내문을 우편으로 보내주었다.
급식 동의 및 알레르기 설문, 건강검진 서류, 스쿨버스 일정, 학교 학부모회(Parent Teacher Association, PTA) 가입 등 한국에서는 접하지 못했던 내용들이 많았다.
그중에 4학년 오리엔테이션 참석 안내문이 있었는데, 새 학기가 시작되기 전 학교에 직접 가서 아이의 교실을 직접 확인하고 담임선생님을 만나는 연례행사다.
나도 너무나 가보고 싶었지만 이것 때문에 휴가를 낼 수는 없어서 아내 혼자 세은이를 데리고 참석했다.
새 학년 오리엔테이션
나는 집에서 파트너들과 회의를 하고 회사 업무를 하는 동안 아내와 세은이는 오후 내내 학교에 갔다가 밝은 표정으로 집에 왔다.
"오, 마누라님 즐거우셨나요? 저녁 얼른 먹읍시다. 궁금하니까."
사실 매년 하는 학교 행사였는데 코비드 때문에 한동안 못하다가 올해 재개된 거라고 했다. 그래서 사람들이 꽤 많이 왔다고.
미국도 초등학교는 한국처럼 담임 선생님이 있고 아이들이 한 교실에서 모여서 공부한다.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교실을 찾아다니며 수업을 듣는 것은 중학교 때인 6학년부터다.
세은이네 교실은 학교 2층. 교실엔 20명 정도 되는 아이들의 이름이 적혀있는 자리가 있었는데 담임 선생님 Mrs. Miller는 자리마다 편지와 사탕을 놓아두었다.
아내가 가져온 Mrs. Miller의 편지엔, 이 동네에 오래 살았으며 학교도 다 뉴욕에서 다녔고 지금은 초등학생 세 아이의 엄마로 살고 있는 선생님의 자기소개가 들어있었다.
편지 한쪽 구석에 보라색 옷을 입고 두 팔을 벌려 아이들을 환영하는 자신의 모습을 깜찍하게 그려 놓아서 친근하게 느껴졌다.
한국에서 학부모 선생님 관계는 서로를 잘 드러내지 않고 아이 얘기만 하는 게 기본인데... 여기는 다르구나.
학기 시작 전에 학부모, 학생과 선생님이 직접 만나서 인사도 나누고 학급의 운영방향을 미리 들어볼 수 있는 자리를 만드는 건 참 좋은 문화 같아 보였다.
우리는 세은이가 학교 친구들과 쉽게 친해지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미국에 오기 전에 거의 한 달 넘게 고민해서 세은이 영어이름을 지어왔다.
실제 이름과 발음이 비슷한 "Sienna Park (시에나 팍)". 이름 주인 세은이의 결재를 받는 과정이 오래 걸렸지만 아무튼 해냈다.
그래서 Sienna를 학교 등록할 때 선호 이름(Preferred name, 꼭 법적 이름이 아니어도 되고 원하는 이름으로 불러준다.)으로 등록해 두었는데, 세은이는 막상 자기 자리에 적혀 있는 Sienna를 보더니 그냥 한국이름 쓰고 싶다고 했다고 한다. Sienna가 아닌 "쎄운"으로 살겠다고 한다.
이게 내가 어떻게 받은 결재인데... 근데 결재자가 그냥 뒤집었다. 우와...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해.
이 날 아내는 집에 오기 전에 3학년 한국 남자아이 "성우"와 엄마를 우연히 만났다는데, 이것 때문에 집에 오는 시간이 오래 걸렸고 밝은 모습으로 집에 올 수 있었던 거였다.
성우네는 주재원으로 온 게 아니고 몇 년 전에 이 동네에 집을 사서 아예 이민을 왔다.
성우엄마는 우리가 안내문으로만 받았던 새 학기 준비물을 상세히 알려주면서 우리 동네에 성우네처럼 한국 이민 가족이 대여섯 있어서 엄마들이 가끔 만나는데 아내에게도 다음에 같이 보자고 했다고 한다.
우리는 참 운이 좋았다. 회사와 상관이 없는 새로운 관계를 만들게 되는 건 참 반갑고 다행인 일이다. 왜냐면 회사의 다른 한국사람들과는 원 소속 부서가 달라서 그런지 내가 끼어들기 어려운 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째서 우리 가족은 같은 회사 사람들 사이로 들어가지 못했던 걸까? 한국에 돌아와 있는 지금 생각해도 참 아쉬운 일이다.)
(사진) 오리엔테이션이 있던 날 학교 복도. 모든 학년 학부모가 다 모였다.
(왼쪽) 세은이(舊 Sienna) 교실 자리와 선생님의 환영 선물. (가운데) 소아과 검진날. 종이 가운을 입게한다. (오른쪽) 치과검진. 한국과 다를것이 없었다.
학교에 가기 위한 준비 (내과/치과 검진)
학기 시작할 때 학년에 따라 필요한 서류가 조금씩 달랐는데, 4학년들은 학기 시작 후 한 달 이내로 내과와 치과 검진 결과를 제출해야 했다. 학교에서는 양식을 우편으로 보내주었다.
나는 이미 7월에 소아과(Pediatrics)와 치과 등록 및 예약을 다 해두었었다. 동네 아이들이 많다 보니 7월에 준비했어도 9월에나 약속이 잡힌다.
그래도 일단 등록이 되면 그다음부터는 핸드폰 앱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병원을 오가는 일이 비교적 간단해진다.
세은이는 소아과 약속이 먼저였다. 입구에서 접수를 하고 나면 잠시 기다린 뒤 진료실로 안내한다. 작은 진료 침대가 있는 아무도 없는 방에 들어가니 갈아입을 종이 가운이 놓여있다.
세은이는 평소에 "여자 & 아이"처럼 보이는 옷을 싫어하는데(항상 본인은 다 컸다고 생각함) 딱 그런 디자인의 치마 가운을 입어야 해서 엄마랑 살짝 신경전이 있긴 했다.
잠깐 기다리니 간호사가 먼저 들어오고, 문진을 하고 신체 치수를 측정하고 기초서류를 작성하는 등 기본적인 일들을 하고 나서는 의사는 곧 올 거라면서 다시 밖으로 나갔다.
잠시 뒤 들어온 친절해 보이는 할머니 의사는 꽤나 꼼꼼하게 세은이를 살펴보고 얘기도 많이 나누는 등 상당히 성의 있게 진찰을 해주었다.
한 가지 살짝 걱정되었던 것이 세은이 엉덩이에 있는 몽고반점(Mongolian Spot)이었는데, 혹여나 가정폭력(Domestic Violence)의 흔적으로 오해받을까 봐 나는 머릿속으로 혼자 "그건 멍든 게 아니고 아시아 어린이에게 흔한 몽고반점입니다."를 영어로 연습하고 있었다.(내과, 소아과 의사는 가정 폭력에 관해 신고해야할 의무가 있다.)
걱정과는 달리 아무 일없이 검진이 다 끝나고 건강하다는 내용으로 서명받은 검진 결과지를 받아서 병원을 나섰다. (검진 결과는 병원 앱에서 언제든지 아주 구체적으로 찾아볼 수 있다.)
며칠 뒤엔 치과 검진인데 이곳은 누가 봐도 이름부터 한국인 치과 의사가 계신 곳이다. "성창숙 치과(Chang S. Sung DDS, Doctor of Dental Surgery)"
소아과에서와는 다르게 병원 구조나 치과 의자 같은 것이 너무나 익숙하다. 게다가 친절하게 웃어주시는 한국인 여의사 선생님이 봐주시니 마치 한국 치과에 온 것 같은 느낌이다.
우리는 2년 동안 회사 일 때문에 주재원으로 왔다고 하며 인사하니, 선생님은 고등학교 때 이민오셔서 지금껏 살고 계신다고... 다 큰 딸이 있다고 했다.
미국 이민 생활에서 가장 어렵게 느껴지는 건 역시 병원인데 한국인 선생님이 계신 곳을 다닐 수 있게 된 건 큰 행운이다. 모르는 걸 편하게 여쭤볼 수 있겠다.
세은이가 충치가 좀 있으니 다음에 약속을 잡고 찾아오라면서 학교 서류에 서명을 해주셨다. 이렇게 검진 서류는완료.
그리고 다른 안내장에는 1년 동안 사용할 학용품 준비 목록이 굉장히 구체적으로 품목과 수량이 적혀있었다.
(12개짜리 색연필 1팩, 100페이지 넓은 실선줄 작문노트 6권, 색 없는 풀 6개 등으로 20 종류 안팎이다.)
주변 마트인 타깃(Target)이나 월마트(Walmart)에 가보니 학교별 학년별로 준비물을 세트로 묶어 팔고 있어서 어렵지 않게 준비했다.
DyAnn은 이번주 영어 과외 시간에 세은이에게 "I pledge allegiance to the flag of the united states of America..."로 시작하는 "충성 맹세 (Pledge of Alliegiance)"를 알려주었다고 했다. 미국에선 매일 아침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옛날 한국에서 국기에 대한 맹세를 하게 했던 것처럼 이것을 하기 때문이란다.
모른 채 학교를 갔다면 당황할 수도 있고 선생님께 지적받을 수도 있었겠지. 우리는 미처 몰랐는데 이렇게 챙겨주니 고마운 일이다. DyAnn은 선생님이 아니라 할머니 같다.
이제 세은이도 우리도 학교 갈 준비가 되었다. 내일이면 진짜 미국 4학년 초등학생이 된다.
첫 등교와 Back to School Picnic
새 학기 첫날, 안내문에는 세은이가 스쿨버스를 타야 하는 위치와 시간이 나와 있었다.
방학과는 달리 집 앞까지는 오지 않는다. 아무래도 학기 중엔 탑승 아동 수가 많아지니 노선 효율을 위해 변경된 것 같다.
그럴지라도 학년별로 집에서 정류장까지의 거리가 규정으로 정해져 있어서 많이 걷지 않게 정해지게 된다.
세은이는 아침 7시 30분에 집에서 5분 정도 걸어가서 타고 같은 자리에서 오후 2시 40분에 내리게 되어 있었다.
학교에 이미 익숙해진 세은이는 씩씩하게 웃으면서 버스를 타고 갔고 아내와 나도 이 상황이 이미 자연스럽다.
세은이를 배웅하고 나서 편안한 마음으로 아내와 뒷마당에서 커피를 한잔 마신다. "이게 진짜 우리가 기대한 미국 맛인가 보다." 이 시간 정말 여유롭다.
오후가 되어 집에 돌아올 때 세은이는 아주 밝은 모습이었다.
학교 급식이 맛이 없고 양이 작았다는 것 빼고는 모든 게 다 좋았다고 했는데, 특히 친구들이 세은이에게 관심을 좀 주었던 것 같았다.
세은이 말로는 한국 문화에 관심이 있는 아이도 있었던 것 같고, 영어 못하는 친구에게 호의와 배려심을 보여준 아이들도 많았던 것 같다.
영어를 못하니까 왕따를 당하지나 않을까 걱정했는데, 착하고 친절한 아이들이 많은 곳인 것 같아서 다행이다. 앞으로 계속 이렇게만 되었으면...
우리가 버스에서 내린 세은이를 집으로 데리고 들어오는 길에 옆집 마당에서는 Sarah와 Mia가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애기 엄마 Sarah와 큰 아들이 곧 대학가는 Mia에게 '오늘 세은이 학교 첫날이었어요'라고 인사를 하니 활짝 웃으며 축하해 주었다.
(왼쪽) 4학년 첫날. 버스에서 내려 집으로 걸어가는 길. (가운데) Back to School 행사. (오른쪽) 아이스크림 버스. Liv 아빠에게 아이스크림을 얻은 세은이.
세은이가 안내문을 하나 가져왔는데, 개학 첫 주 금요일 저녁엔 백 투 스쿨 피크닉 (Back to School Picnic)이라는 행사가 있다고 되어있었다. 이것도 매년 하던 것인데 코비드 때 한동안 중단되었었다.
학교의 모든 학생 대상으로 새 학기를 맞아서 서로 어색하지 않도록 하루 노는 자리인데 학부모들끼리도 인사할 수 있을 거라고 성우엄마가 알려주었다.
금요일 오후에 회사 일을 끝내고 학교에 도착했다. 그냥 넓다 못해 광활한 학교 뒷마당엔 이미 많은 수의 아이들과 학부모들도 북적거리고 있었다.
아이들은 레크리에이션 강사와 함께 댄스대회, 훌라후프, 림보 등을 하거나 자기들끼리 뛰어다니고, 한쪽 구석에서는 PTA에서 준비한 아이스크림과 피자를 사 먹을 수 있었으며 이미 안면 있는 학부모와 선생님들은 모여서 얘기를 나누는 모습이었다.
우리는 성우네와 다른 한국 가족들도 만나서 인사했다. 세은이와 같은 학년은 아니지만 이 학교엔 한국 아이들이 여섯 명이나 있었고 다들 친절하게 우리를 맞아주셔서 참 다행이라 생각했다.
세은이는 같은 반 친구들과 놀이터에 가서 한참 동안 놀다가 누군가를 데리고 나한테 왔다. 친구 Liv(리브)와 Liv 아빠였다.
Liv 아빠가 나한테 인사하고 싶다고 해서 찾아온 것이었다. 용기 내서 피크닉까지는 왔지만 사실 분위기가 조금은 어색해서 사람들 찾아다니며 인사하는 걸 머뭇거리고 있었는데 누가 먼저 와 주는 이런 행운이 있을 수가...
Liv네 가족은 두 달 전 여름 방학에 플로리다 주에서 이사 와서 동네 정착과 Liv의 친구 관계에 대한 걱정이 있다고 했다. 어쩌면 우리와 비슷한 상황이다.
같은 전학생 처지인 Liv와 세은이가 친하게 지내면 좋겠다고 하면서 Liv 아빠는 아이들에게 아이스크림을 사 주었고 아빠들은 서로 전화번호를 주고받았다.
아이 친구 아빠와 얘기 좀 나누는 건 사실 별것 아닌 일이다. 하지만 이민 와서 외롭게 살다가 이렇게 짧은 순간이나마 일상적으로 누군가와 어울릴 수 있게 되는 것은 묘한 성취감이 있었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이번 피크닉을 준비한 학부모회인 PTA는 미국 사회에서 학부모와 선생님사이의 공식적인 대화 채널이다. PTA는 이런 류의 교내 이벤트를 기획하고 비용 지원이나 봉사 등을 맡아서 한다.
사실 개학 전 오리엔테이션 안내문 중에는 PTA 가입 양식이 있었는데, 뭔지도 모르는 데다가, '우리가 뭐 얼마나 할 수 있겠어?' 하는 마음에 회신하지 않았었다.
피크닉을 다녀와서는 이번 기회를 통해 한국인 가족들과 Liv네 가족을 만날 수 있게 된 것에 감사하면서 PTA 가입 및 활동비 기부에 체크해서 회신했다.
누군가는 봉사하고, 그것에 대한 혜택을 누리기도 하고, 이런 활동의 순환을 위해 기부하는 모습이 미국 생활 문화인가 보다 라고 생각하며 기꺼이 기부를 하기로 결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