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ch ~ May 2022
** 동네여행 2/3에서 계속
또한 각 주별로 국가의 수도(Capital)와 같은 주도(State Capital)가 있다. 뉴욕 주의 주도는 우리가 가까이 살고 있는 '알바니'다.
다른 주 사람들은 뉴욕의 주도가 뉴욕시티가 아닌 것에서 조금 의아해하기도 하는데, 뉴욕 주가 세워질 당시의 사정을 보면 이해가 된다. (동네여행 1/3 참고)
(뉴욕과 비슷하게 텍사스의 주도는 댈러스나 휴스턴이 아닌 오스틴이고, 알래스카의 주도는 앵커리지가 아니고 쥬노, 캘리포니아의 주도는 LA나 샌프란시스코가 아닌 새크라멘토다. 그 밖에도 많이 알려진 대도시가 주도가 아닌 경우는 많이 있다. 찾아보면 다 그럴법한 역사와 사정이 있다.)
뉴욕주의 온갖 중요한 결정은 알바니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뉴욕에 사는 사람들은 알바니에 있는 뉴욕주 정부 청사 건물을 매일 뉴스에서 볼 수 밖에는 없다.
그래서 알바니로 여행을 오는 사람들에겐 뉴욕주 청사와 그 주변을 보는 것은 필수 코스이다. 우리도 가보기로 했다.
엠파이어 스테이트 플라자 (Empire State Plaza)
뉴욕을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고속도로 I-87을 따라서 알바니에 접어들면 한눈에 보이는 랜드마크 건물들 여럿이 모여있는 곳을 볼 수 있다. 주변을 다닐 때마다 너무 눈에 띄어서 집에서 한번 찾아봤다.
지도를 보니 대학농구와 디즈니 아이스 쇼를 보러 갔던 MVP Arena에서 아주 가깝다. 커다란 인공 연못이 있는 광장 주변엔 주 청사와 각종 행정 건물들, 공연장과 박물관이 있다.
별도의 홈페이지(https://empirestateplaza.ny.gov/)가 있는데 일정을 보니 광장 및 잔디밭에선 각종 야외 행사가 있고 겨울엔 연못을 얼려서 스케이트도 탈 수 있다고 한다.
건물별로 방문자 입장이 가능 한 곳도 있고 사전 예약이 필요한 곳도 있다.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은 곳은 따로 스케줄을 잡아봐야겠다.
분위기나 좀 익힐까 해서 세은이가 학교 간 사이, 아내와 점심 먹을 겸 나들이 나왔다.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다. 평일 낮이라 사람이 그리 많지는 않고 주변 노상 주차장은 $1 수준으로 매우 저렴했다.
가장 눈에 띄는 건물은 뉴욕 주 정부의 청사 겸 의사당(NYS Capitol) 건물이다. ㅁ자 형태의 5층짜리 건물로 빨간색 지붕과 파란색 지붕이 섞여 있는 모습이 굉장히 화려하고 인상적이다.
뉴스에서 많이 봤던 주 청사 건물을 직접 와서 가까이에서 보니 더욱 고풍스럽고 웅장하다. 남북전쟁을 승리로 이끈 알바니 출신 장군(Philip Sheridan) 동상이 주 청사의 권위를 더해주는 듯하다.
여기는 1시간짜리 무료 투어가 있다고 했는데 조만간 예약을 해서 내부를 구경해 봐야겠다.
주 청사 앞 쪽으로 걸어 나오면 넓은 광장과 직사각형의 인공 연못인 Reflecting Pool이 있고 그 주변을 뉴욕 주 정부의 여러 건물들이 감싸고 있다.
그중에 알바니의 랜드마크 건물은 공연장인 The Egg, 전망대가 있는 코닝 타워 (Corning Tower) 그리고 뉴욕 주 박물관 이렇게 셋이다.
받침대에 올려놓은 계란처럼 생긴 공연장 'The Egg'는 살짝 고상한 공연들이 주로 열리는 곳이다. 희한하게도 외부에는 입구가 없어서 지하통로로 들어가야 하는 구조다.
조금 가벼운 공연이 있으면 가볼 법도 한데 코미디 공연이나 북 콘서트 같은 것은 아직 내가 감당하기에 벅차다. 그래도 언젠가는 가볼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일정을 꾸준히 확인 보고 있는 공연장이다.
The Egg 옆에 있는 44층짜리 초 고층 건물 코닝 타워는 뉴욕시티를 제외하면 뉴욕주 전체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다. (뉴욕시티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의 절반쯤 되는 높이다.)
엠파이어 스테이트 플라자와 함께 1970년대에 지어진 건물이고 '코닝'이라는 이름은 무려 40년을 알바니 시장으로 재임했던 정치인의 이름이라고 한다.
코닝 타워 꼭대기엔 '무료'로 들어갈 수 있는 전망대가 있다. 입구를 지키는 가드도 없고 엘리베이터도 그냥 열려있다. 내가 직접 작동시켜서 올라간다.
뉴욕시티의 여타 전망대처럼 화려하게 꾸민 건 없지만 주변에 높은 건물이 하나도 없기 때문에 경치는 꽤나 볼만하다. 우리가 지금껏 가 봤던 곳들을 찾아보는 것도 나름 재미있다.
코닝타워의 옆에 있는 뉴욕주 박물관은 주 청사를 정확히 마주 보는 위치에 있다. 여기는 나중에 시간을 충분히 갖고 세은이를 데리고 와야 할 것 같다. 학교 사회시간에 도움이 되겠지.
엠파이어 스테이트 플라자는 지상에 있는 건물들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각 건물들은 광장 아래에 있는 지하 통로로 서로 연결되어 있는데, 이 지하 공간까지가 엠파이어 스테이트 플라자이다.
안내문엔 뭔가 굉장한 시설로 표현되어 있지만 지하상가의 나라인 한국에서 온 우리에겐 다소 약소한 수준으로 보이긴 하다.
푸드코트, 미용실, 커피숍 같은 상점들이 있고 뉴욕주(뉴욕시티가 아닌)의 공식 기념품점이 여기 지하에 있다.
아마도 뉴욕주 공무원들에게는 일상의 공간이겠지. 식당의 메뉴도 가격도 그다지 특별한 것 없는 직장인들의 가벼운 식사 용도다. (점심시간엔 지상에도 푸드트럭들이 있다.)
아내와 함께 식사를 하며 뉴욕 직장인의 일상을 살짝 구경했다. 가끔 놀러 오면 좋을 곳이다.
뉴욕주 청사 겸 의회 의사당 : NYS Capitol
엠파이어 스테이트 플라자를 다녀온 후 정부 청사 투어는 꼭 가고 싶었다. 투어는 무료지만 주말이나 휴일엔 안 하고 평일 낮에만 한다. 소중한 연차를 쓰면서까지 투어를 가기엔 아까워서 포기해야 하나 싶었다.
긴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서 휴가를 내고 쉬기로 한 어느 월요일, 드디어 기회가 왔다. 때마침 세은이가 Madison네 Playdate를 가겠다고 해서 서둘러 투어 예약을 하고 아내를 일으켜서 주 청사로 왔다.
주 청사를 직접 와서 보고 설명을 들은 것은 상식을 쌓고 뉴스를 이해하는 꽤나 도움이 되었다.
정치얘기는 사람들과 말하기 껄끄러운 주제이긴 해도 일정 수준의 정치 지식은 상식 아닌가? 심지어 시민권 시험 문제 중에는 지역 상하원 의원의 이름을 적어야 하는 것도 있다.
연방 하원은 Congressman, 주 하원은 Assemblyman이라 부른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역시 이렇게 직접 봐야 배우는 게 많다.
오랜만에 아내와 주 청사 근처에 있는 19세기 후반에 지은 저택이었던 비싼 식당(Iron Gate Cafe)에서 점심을 먹고 돌아왔다. 기분 좋은 나들이다.
뉴욕 주립 박물관 : 빙하기, 원주민 그리고 911
뉴욕 주립 박물관은 미국 내 모든 주립 박물관들 중에서 가장 오래되었고(1836년 개관) 가장 규모도 크다. 게다가 관람비마저 무료인 아주 좋은 곳이다. (주 청사 바로 옆 건물을 사용하다가 1976년에 현재 위치로 이전.)
뉴욕시티나 워싱턴 DC에 있는 자연사 박물관보다는 규모가 작지만 뉴욕의 자연과 역사를 이해하는 데는 충분히 큰 박물관이다.
매주 월요일과 특정 공휴일에만 휴관이라 주말에 오기 좋은 곳이다. 토요일에 세은이까지 데리고 박물관으로 왔다. 박물관 입구는 광장 쪽 계단이 아니고 지하통로 쪽에 있다. 박물관 앞 노상주차장에 차를 대면된다.
박물관은 예약할 것도 없고 그냥 들어가면 된다. 입구의 오른쪽에서 시작해서 크게 한 바퀴 돌고 왼쪽 출구로 나오면 된다.
전시실이 시작되는 입구에는 미국 독립과정을 크게 그린 그림이 방문객을 맞이한다. 더 들어가 보면 뉴욕의 자연, 각종 광물과 알바니 일대에서 발견된 동물 화석도 있다.
150여 년 전쯤 코호스 폭포 근처에서 발견된, 마지막 빙하기인 13,000년 전의 마스토돈(코끼리의 먼 조상)의 화석이 전시되어 있다. 크기나 복원해 놓은 모습이 뉴욕시티 자연사 박물관에서 본 것과 큰 차이가 없다.
뉴욕 주 원주민 이러쿼이 마을과 가족의 집도 잘 복원되어 있다. 나뭇가지로 지은 집에서 옹기종기 살았던 모양이다. 겨울이 추운 곳이니 2층 집을 지어서 살았나 보다. 땅바닥은 너무 추우니까 2층에서 자야지.
같은 이유로 지금의 뉴욕 사람들도 침실은 2층에 있다.
그리고 제일 안쪽 특별 전시실에는 911에 관련된 전시가 따로 되어있었다. 꽤 넓은 공간에 그 당시의 사진과 부서진 소방차들, 각종 잔해,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다.
눈을 뗄 수 없던 한 가지가 있었는데, 특별 전시실의 한편에 실종자 가족 트레일러가 놓여 있다. 사고 이후 실종자 가족들이 수색 과정을 지켜봤던 장소라고 한다.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얼마나 서글프고 착잡했을까?'
테러가 발생한 이듬해에 확인되지 않은 희생자가 1,500명도 넘게 남았지만 맨해튼에서의 수색을 종료해야 했다고 한다. 수색을 중단하고 모든 잔해를 스태튼 아일랜드로 '치우는 것'으로 결정이 되었다고 한다. 그에 따라 가족 트레일러도 뉴욕주 박물관으로 옮겨와서 전시된 것이다.
트레일러 내부에는 실종자 가족들이 가져다 놓은 각종 뉴스 스크랩과 실종자들의 이름, 사진, 옷가지, 소지품 등이 여전히 걸려있다. 이 사람들은 가족을 결국 찾기는 했을까?
한 가지 마음 아팠던 건, 트레일러의 천장에 '우리 아빠는 쓰레기가 아니야 (My Daddy's Not Garbage).'라고 적혀 있다. 아직 실종된 아빠를 찾지 못했으니 건물 잔해를 치우지 말라는 뜻인 것 같다.
이걸 보는 순간, 아빠를 찾고 있는 가족의 마음이 확 느껴져서 울컥한 마음이 들었다. 사고가 나고 가족을 찾는 과정 중에 얼마나 가슴 아픈 순간이 많았을지 상상이 되었다.
결국 모든 '쓰레기'들은 매립지로 옮겨졌고 그곳에서 실종자 탐색 작업은 계속되었다고 한다.
'과연 아빠를 찾았을까? 꼭 찾았으면 좋겠다.' 나는 이 트레일러 앞에서 한참을 서서 바라보았다.
다 돌아보고 박물관 밖으로 나오는 길에는 한국인으로서 한 가지 더 보고 가야 하는 것이 있었다. 박물관 바로 뒤편 공원에 한국 전쟁 참전용사 기념비가 있다.
미국에선 주 별로 또는 도시별로 참전용사들을 기리는 기념비를 만드는 경우가 많은데, 이 작은 기념탑은 뉴욕 주 출신의 한국전 참전자들을 기리는 곳이다.
워싱턴 DC같이 큰 공원은 아니지만 평화로운 작은 공원 분수대와 소박한 탑에 참전용사들에게 감사를 전하는 글이 쓰여있다. 생각해 보면 이 분들 덕에 내가 뉴욕으로 올 수 있었던 건 아닐까?
먼 곳으로 여행을 가서 느끼는 것도 좋지만, 동네 투어도 많은 것을 보고 느낄 수 있다. 우린 아직 동네에 대해 알고 싶은 것이 많다. 모르는 게 많으니 배우는 것도 많다. 세은이도 보고 느낀 것이 많았으려나?
Judy가 꼭 가보라고 권해준 이유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보고 생각한 것들을 PPT로 만들어서 도서관 수업에서 공유해 주면 참 좋을 것 같다. Judy도 좋아하지 않을까?
'같이 얘기하고 싶어서 이렇게 공부하고 왔어요. 나랑 잠깐만 같이 놀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