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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온 사방에 불꽃놀이 "미국의 독립기념일"

July 4th, 2022

by Clifton Parker

(커버 이미지 : 뉴욕 알바니 Empire State Plaza의 독립기념일 불꽃놀이 장면.)


*뉴욕시티(NYC)로 표기하지 않은 "뉴욕"은 뉴욕 주(NYS)를 의미하며 대도시가 아닌 교외지역입니다.

미국 최대 휴일 : 독립 기념일 July 4th

7월 4일, 1776년 미국의 독립 선언을 기념하는 '독립 기념일'은 미국의 휴일 중 크리스마스 다음으로 가장 큰 규모의 휴일이다. 아이들 방학기간 중의 휴일이니 모두의 축제라고 봐야 한다. 미국 독립 역사에 관한 여러 사건이 많이 일어난 뉴욕시티나 보스턴 곳곳에는 독립기념일에 많은 행사가 열린다. 특히 보스턴에서 하는 독립기념문 낭독(Old State House)과 보스턴항의 해군 범선 항해(USS Constitution)는 아주 뜻깊고 유명한 행사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아무래도 날이 날이니 만큼 그런 대도시는 숙박비가 너무 비싸져 있어서 선뜻 갈 마음이 들지 않는다. 밤에 하는 불꽃놀이까지 보고 와야 하니 당일치기로 다녀올 자신도 없고 그 수많은 인파 속에 사고가 생기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도 든다. 도서관 선생님들도 그런 날에 그렇게 멀리까지 가는 걸 딱히 권하지는 않아서 독립기념일을 동네와 알바니에서 보내기로 했다. 큰 도시에 가서 큰 이벤트를 보는 것도 좋겠지만, 보통 사람들처럼 그냥 내가 사는 곳에서 독립기념일을 보내는 것도 의미 있지 않을까? 헤이니네에도 우리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길래 저녁에 만나서 불꽃놀이를 같이 보기로 약속을 해두었다. 어린이들에게 좋은 추억이 될 수 있기를 바라며.


미국 동네의 흔한 독립기념일 풍경

Town 페이스북에는 몇 주 전부터 독립기념일 행사 일정이 나와 있었다. 12시부터 학교 앞 대로에서 출발하는 퍼레이드를 시작으로 동네 공원인 Clifton Common에서 각종 이벤트를 한다. 어찌 보면 뉴욕시티 같은 큰 도시 이벤트의 축소판이라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세은이가 아침부터 왜인지 시큰둥해해서 간신히 어르고 달래어 점심 먹고 나서 Clifton Common으로 향했다. 주차장엔 자리가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이미 와 있었다.

막상 와서 보니 사실 그렇게 대단한 볼거리가 있는 건 아니다. 작은 규모의 축제, 소박한 동네 행사다. 공원 한쪽 공터에 아이들 입맛에 맞을 푸드트럭들과 조그마한 공예품들을 파는 천막들이 많이 와 있다. 미국 전통 놀이 체험 코너도 있는데 꼬마들에게 인기가 꽤나 있어 보인다. 옛날 show man 복장을 한 아저씨가 저글링, 죽마(Balance Stilts) 타기, 디아볼로 팽이 같은 걸로 시범을 보이는데 아이들이 넋을 잃고 바라본다. 나도 한번 해봤는데 정말 쉽지 않다. 여기 동네 공원에서도 저녁에 밴드 공연과 불꽃놀이가 있다고 했다. 어른들은 의자를 가져와서 좋은 자리에 이미 자리를 잡고 있다. 애들은 공원에서 알아서 놀고 어른들끼리 한가롭게 담소를 나누는 시간이 느슨하고 여유로워 보인다. 미국 최대 명절을 북적거리는 곳에서 요란하게 보내는 것도 좋겠지만 이렇게 그냥 미국인들 일상에 함께 하는 것도 나름 의미 있는 경험이 아닐까?

저녁까지 이곳에 남아 소소하게 축제를 즐기는 것도 좋겠지만, 독립기념일의 하이라이트인 불꽃놀이는 뉴욕주 청사에서 보기로 헤이니네와 약속했기 때문에 너무 오래 있지는 못하고 자리를 옮겨야 했다.

(왼쪽) 동네 공원인 Clifton Common에 열린 'July 4th Celebration Event'. (오른쪽) 저녁 9시의 불꽃놀이를 대낮부터 기다리는 사람들
뉴욕주 주청사 앞 독립기념일 행사

소박한 동네 축제로 충분하지 않다면 알바니로 가면 독립기념일의 북적거림을 느껴볼 수 있다. 뉴욕주의 주청사가 있는 엠파이어 스테이트 플라자에서 하는 독립기념일 행사는 자타공인 뉴욕주 전체를 대표하는 것이니 뉴욕주 전체에도 손에 꼽을 만큼 큰 규모다. 뉴욕시티나 보스턴 같은 곳에 가기 어렵다면 알바니 정도의 장소에서 보는 것도 괜찮은 것 같다.

워낙 많은 사람들이 오기 때문에 서너 시간 전에는 미리 가라고 옆집 Mark가 알려 주었는데 막상 와보니 그 말대로여서 간신히 주차했다. 그래도 알바니니까 이만하지 뉴욕시티였다면 어느 정도였을지 짐작도 안된다. 주차장에서 헤이니네를 만나고 많은 사람들 사이에 섞여서 주청사 쪽으로 걸어 올라간다.

엠파이어 스테이트 플라자에 가보니 뉴욕 박물관 앞 계단이 객석으로 되어 맞은편의 주청사를 바라보게끔 무대가 설치되어 있었다. 우리는 불꽃놀이 4시간 전에 도착했는데도 이미 자리가 많이 채워진 상태였다.

행사장 주변으로는 푸드트럭이 꽤 많지만 줄 서있는 사람이 더 많다. 미국 국기 디자인의 옷을 입은 사람들도 있고 기념품을 파는 사람, 1인 시위를 하는 사람도 있다. 한적한 우리 동네 축제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긴 하다.

식순을 보니, 우리가 오기 전에 주지사가 직접 참석한 시민권 수여식(The Oath)이 있었고, 공군의 곡예비행도 있었다. 역시 사람이 많을 법도 하군. 못 본 게 아쉽지만 어쩔 수 없다.

(사진) 뉴욕 박물관 계단에서 바라본 독립기념일의 Empire State Plaza. 정면 중앙의 건물이 뉴욕주 의회의사당이다.
(왼쪽) 뉴욕 박물관 앞의 사람들. 일찍 오지 않으면 자리가 없다. (오른쪽) 80년대 락밴드 Starship의 추억의 히트곡 'We built this city.'

불꽃놀이를 기다리는 동안 무대 위에선 군악대, 로컬 밴드의 공연이 계속되고 있다. 축하공연의 마지막 순서는 80년대 전성기를 누렸던 'Starship'이라는 락밴드가 장식한다. 그래서 몇 주 전부터 라디오에서 엄청 나오던 그들의 최대 히트송인 'We built this city'는 나도 한국에서 들어본 적이 있는 곡이다. 이제 막 10살 된 우리 아이들은 무척 지루했겠지만 아빠는 신나게 잘 봤다. '배철수의 음악캠프'같은 라디오에서 듣던 노래를 여기 와서 라이브로 듣는구나. 엄청나네.

이제 공연도 다 마무리되고 어느덧 9시가 넘었다. 여름이 긴 뉴욕은 이제야 날이 어두워졌다. 모두가 기다리는 순서가 시작되려 한다.


모든 사람이 매년 기다리는 독립기념일 불꽃놀이

주청사 무대에서는 Starship의 축하공연이 끝나고 불꽃놀이가 시작되려 한다. 사실 이미 저 멀리 어디선가 인지 벌써 폭죽 소리가 나고 있다. 아마 곧 동부 모든 마을에서 일제히 폭죽을 쏘아 올리면서 미국 전역이 불꽃놀이를 하게 되겠지.

9시가 넘자 주청사 건물들에 미국 국기 색인 파랑, 하양, 빨간색의 조명이 비친다. 음악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연못 한가운데서 폭죽이 날아오른다. 드디어 시작되었다. 뉴욕주 행사이다 보니 확실히 규모가 있다. 노래와 함께 폭죽이 터지는데 굉장히 볼만하다. 이 정도면 굳이 뉴욕시티까지 가지 않아도 되지 않나?

50분 동안 터지는 불꽃들을 말없이 바라보면서 그 간의 미국 생활이 머릿속에 하나씩 스쳐 지나간다. 내년 이맘때는 한국에 있을 테니 이걸 다시 보지는 못하겠구나. 아름다운 순간이 불꽃처럼 확 피었다 사라진다. 남은 1년 동안 매 순간이 아쉽지 않도록 잘 지낼 수 있기를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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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독립기념일 불꽃놀이. Corning Tower에 보이는 후원사 이름 Price Chopper는 로컬 식료품 체인기업이다.
(사진) 불꽃놀이의 피날레, 행진곡 '성조기여 영원하라, The Stars and Stripes Forever'에 맞춰 모든 것을 쏟아붓는다.

미국 독립기념일은 마치 온 나라 모든 사람의 불꽃놀이를 위한 날인 것 같다. 사람이 많이 원래 많이 모이는 도시뿐만 아니라 우리 동네 같이 작은 타운에서도 불꽃놀이를 한다. 페이스북에서만 봐도 우리 집을 중심으로 1시간 거리 이내에 불꽃놀이 하는 곳이 열 군데도 넘어 보였다. 이렇게까지 많을 이유가 있을까? 그뿐만이 아니다. 집에서도 즐길(?) 수 있게 사람들을 위해 폭죽을 팔고 있다. 6월이 되면 월마트 주차장 같은 곳에 폭죽 팝업스토어가 생기곤 한다. 중국사람들 못지않게 미국사람들도 폭죽에 진심인 것 같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집에서 마음껏 즐기는 분위기 까지는 또 아니다. 넥스트 도어나 페이스북을 보면, 때가 때이니 만큼 저녁에 주택가에서 폭죽을 터트리는 것에 대해 이해는 해도 상당히 신경질적 반응도 있다. 아무래도 총소리와 구분하기 어렵기 때문이지 않을까? 역시 주택가에서 그런 일을 하는 건 미움을 받기 쉬운 일이다.


Fondly,


C. Par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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