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살던 에피소드와 여행기 매거진을 작성하다 생각난대로 비정기적으로 적는 이야기입니다.>
미국 살던 에피소드는 글 제목에 '미국'을 넣는 게 맞나?
브런치의 글 제목은 30자 이내로 써야 한다. 띄어쓰기, 특수기호 모두 포함이라서 생각보다 칸이 좁다.
그러다 보니 최대한 함축적으로 글의 모든 것을 담을 수 있는 제목을 써야 한다.
미국에 살던 이야기를 쓰는 입장에서 '미국'이라는 단어를 넣으면 제목으로 거의 만능이다.
'미국 직장', '미국 학교', '미국에서 스포츠 보기' 등 한국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글에서 이것 만큼 자연스러운 표현이 없다.
하지만 미국에 살던 기준으로 보면 이 표현은 굉장히 어색하다. 미국은 정말 넓은 나라라서 '미국'이라는 단어로 그 지역과 사회와 사람들의 특징을 한데 묶어서 말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사실 미국 방식으로 글을 쓴다면 제목은 '미국 직장/학교'가 아닌 '뉴욕 직장/학교'로 되어야 맞다. 더 정확히는 '뉴욕주 Capital Region 직장/학교 이야기'라고 해야 했을 거다.
그런데 이렇게 쓰면 제목 30자에 쓸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브런치에는 '미국'이라고 쓴다.
차라리 '뉴욕'이라고 쓸까 싶기도 한데, 그러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뉴욕시티를 생각하게 될 거라서 그것도 좋은 생각은 아니다. (미국 사람들도 뉴욕에서 왔다고 하면 NYC냐고 되묻는다. 그래서 항상 "I'm from NY, not the city."라고 말해야 했다.)
미국은 주 별로 기후와 풍습이 다르고 그에 따라 세금 및 법률까지도 제각각이다. 그래서 미국인들 스스로도 미국에 대해 얘기할 때 굉장히 조심스러워한다. 지역별로 차이가 아주 커서 자기가 사는 곳 외에는 잘 모르기 때문이다. 그 차이가 어느 정도여야 짐작이라도 하지, 평생을 숲이 많은 뉴욕에서 살던 사람이 애리조나 사막에 사는 사람의 생각을 이해할 수 있을까?
그러니 이 나라에서는 '내가 살던 곳에선'이나 '우리 주에서는'으로 말할 수밖에 없고 자기 상식 밖의 일에도 '미국엔 그런 거 없어'라고 말하기보다는 '잘 모르겠지만 그럴 수도 있겠지'라고 할 수밖에 없다.
지역에 따른 경험의 차이는 우리 생각보다 어마어마한 게, 예를 들면 미국사람 중에 2,500만 명 정도는 평생 단 한 번도 바다를 직접 본 적이 없다고 한다.(관련기사 : 숙박업체 Motel 6의 통계자료)
실제로 캔자스나 네브래스카 같은 미국 정중앙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바다 한번 보려면 며칠씩 휴가 내고 돈도 몇 백만원은 써야 할 거다. 정말 큰 맘먹어야 갈 수 있다.
같은 관점으로, 눈(snow)을 한평생 본 적 없는 미국인도 생각보다 많다. 바다와 눈에 익숙한 우리는 그것이 없는 사람들의 삶이 어떤지 알지 못한다. (그런 관점에서 현재의 미국 크리스마스 문화는 명백히 동북부가 기원이다.)
이 정도의 격차는 의지와 교육으로 좁힐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들 모두를 '미국 사람'이라고 묶어서 말하기엔 사람들은 살아온 환경이 너무 다양하다.
이런데도 내가 뉴욕, 그것도 NYC가 아닌 Capital Region에서 겪은 일을 글로 쓰면서 '미국'이라는 말을 넣는 게 맞나 싶다. 캘리포니아 사는 사람은 내 글을 보면서 미묘한 불편함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게 항상 고민되지만 한국사는 한국사람들에게는 이 복잡한 설명을 다 할 필요는 없겠다.
"미국엔 50개 주가 다 제각각 달라서 내가 이걸 미국 생활이라고 하기엔 좀 그렇지만, 그래도 뉴욕에서는 이렇게 살아. 아니, 아니, 뉴욕시티는 안 그렇고 그냥 뉴욕에서 그렇다고. 뉴욕주에 뉴욕시티가 있는 거야. 뉴욕주는 도시가 아니고 그냥 시골이야. 아... 내가 헷갈리게 말하는 게 아니라 그냥 뉴욕은 뉴욕주를 말하는 거라고! 뉴욕에 살면 LA는 아무 상관 없으니까 그만 물어봐!!"
뭐 그냥 그렇다는 거다. 브런치는 제목 칸이 좁으니 앞으로도 계속 '미국'이라고 써야지.
"이 동네 사는 건 미국에 산다고 할 수가 없어."
나는 도서관 수업을 들을 때 자발적으로 PPT를 만들어서 발표하는 걸 좋아했다. 사진과 짧은 글을 보여주면서 얘기하면 내용 전달이 확실히 수월하다. (영어를 잘 못해도)
하루는, '한국과 미국의 일상'이라는 제목으로 두 나라에서 내가 겪은 일상생활에 대해 얘기했다. 살던 집, 관리비, 재활용/음식물 쓰레기 처리 등등에 대한 차이를 얘기했는데...
선생님 Judy는 재밌게 잘 들었다면서, 제목은 좀 맘에 안 든다고 했다.
"이 동네에 살면서 미국에 살고 있다고 말하는 건 좀 맞지 않아.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동네는 의사(MD)나 박사 학위자가 미국 평균의 거의 두 배에 가까운 곳이야. 교육 수준이나 소득이 평균에 비해 비정상적으로 높은 동네라고. 너 같이 서울, 부유한 곳에서 살다 온 사람들(Guys from wealthy areas like you)은 미국 평균이 어떤 건인지 짐작조차 못 할 거야."
한국 기준으로 나는 부유한 사람은 아니지만 Judy가 무슨 의도로 말하는지 이해하기 때문에 굳이 가난 인증까지는 하지 않았다.
"이 동네는 전체가 일종의 Gated Community 같은 곳이야. 실제로 문이 있는 건 아니지만, 사회적 진입장벽이 있어서 아무나 들어올 수 없는 곳이야. 여기의 생활이 보통의 미국이라고 할 수는 없어. 그러니 앞으로는 어디 가서 얘기할 때 미국 생활이라고 하지 말고 뉴욕 Clifton Park의 생활이라고 하렴."
Gated Community 예시 (생성된 이미지)
학교 선생님으로 40년 가까이 일했던 Judy는 그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봐 왔겠는가. 선생님이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