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gust 2025
(커버이미지 : 2년간 지냈던 뉴욕을 떠나온 지 이제 2년이 넘었다. 아내가 데려간 서울 모처의 '뉴욕 스타일' 카페는 무려 7개의 노선을 환승할 수 있는 지하철역 컨셉이었다. 실제로 NYC에는 그런 지하철역은 없다.)
*뉴욕시티(NYC)로 표기하지 않은 "뉴욕"은 뉴욕 주(NYS)를 의미하며 대도시가 아닌 교외지역입니다.
2년 전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해서 애초에 계획했던 '미국 추억 이야기'의 약 75%를 작성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기념하여 그동안의 글쓰기에 대해 얘기하려 합니다. 아래의 글들을 먼저 읽어보시면 이번 이야기를 이해하시는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참고 1 : 글 여행의 시작
참고 2 : 글 여행 25% 달성 기념 인터뷰
참고 3 : 오늘부터 휴직입니다
참고 4 : 글 여행 50% 기념 - 나의 브런치 글쓰기 여정 : 그 시작과 9개월의 결산
미국에서의 2년을 기록으로 남기기로 한 지 어느덧 2년이 지났다. 그러나 그 시간은 오히려 모자라, 여전히 완성 짓지 못한 채 길고 긴 글 여행을 계 이어가고 있다.
그 과정에서 참고가 될까 하여 여러 다른 이들의 여행기를 읽어보기도 했는데, 왜 그들이 여행을 마치고도 출판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는지, 짧은 여정임에 비해 그토록 긴 집필 시간이 필요했을지 조금은 알 것 같다.
전문 작가들조차 그러하니, 나의 도전은 얼마나 무모한 것일까? 내 도전의 목표는 오로지 완주여야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많이 든다. 사실 그것도 내 깜냥에는 넘치는 일인 듯한다.
'우와, 미국도 다녀오고 작가가 되었다고? 그래서 그게 뭐?'
돌아보면, 한국에 돌아온 지난 2년은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평생을 살아온 곳이 한국이고, 미국에서 지낸 시간만큼 이미 한국에 살고 있는데도 여전히 한국 생활에 적응하지 못했다. 미국에서의 2년은 내 인생의 방향을 바꿀 만큼 강렬했지만, 한국에서는 그런 태도가 아무 소용없다는 걸 금세 깨닫게 되었다.
한국에서는 뉴욕에서처럼 PPT로 여행기를 만들어 학교에 보낼 수도 없다. 가볍게 식사에 초대할 만한 지인도 드물고, 회사에서 동료들을 회의실에 모아 개인의 이야기를 나누는 일도 상상할 수 없다. 미국 생활 이야기는 누구도 궁금해하지 않으니, 여행지에서 사 온 티셔츠들도 결국 옷장 깊숙이 넣어버렸다. 그렇게 나는, 서울에선 사람들이 원하지 않는 ‘무쓸모의 인간’이 된 것만 같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기록뿐이라고 생각했다. 특별하고 소중한 경험이었으니 잘 남겨두면 지금은 알아주지 않더라도 언젠가는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세은이가 철들어 아빠 글을 읽게 된다면 좋아하겠지.”
“친한 후배가 내가 다녀온 곳에 파견된다면 도움이 될 거야.”
“완성되면 자비로 책을 만들어 영어로 번역해 미국 친구들에게 보내야지.”
이런 바람들이 그동안 내가 글을 쓰는 힘이었다. 그래서 지난 2년 동안은 회사 일을 제외한 대부분의 시간을 컴퓨터 앞에서 보냈다. 매주 한 편씩 올리는 일조차 늘 벅찼지만, 그래도 전체 이야기의 3/4을 쓰는 데까지는 왔다.
그 과정에서 작은 성취들도 있었다. 브런치 작가 승인을 받았고, 1년 6개월 동안 단 한 번도 쉬지 않고 매주 연재해 100편가량의 글이 쌓였다. 내 글이 다음넷 메인에 며칠간 노출되기도 했고, 얼마 전에는 ‘크리에이터 배지’도 받았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브런치라는 공간 안에서만 의미가 있을 뿐, 내 현실에서는 아무도 관심 없는 이야기다.
그래서... 매일 방에 혼자 앉아 모니터를 보고 있노라면, 성취감보다는 회의감이 든다.
아내와 아이는 한국 생활에 잘 적응해 이제는 내가 하는 3년 전 이야기에는 큰 관심이 없다.('아빠는 왜 아직도 미국에 있어? 여기는 한국이야.') 게다가 회사가 올해부터는 미국 파트너사에 연구원을 보내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애써 긴 글로 도움을 주고 싶었던 후배들도, 이제는 미국 이야기를 굳이 보고 싶어 하지 않는다.
결국, 내가 애초에 ‘이 글을 선물하고 싶다’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은 모두 사라져 버린 셈이다. 아니, 어쩌면 이미 오래전부터 사라졌던 건지도 모른다.
물론 몇몇 친구들과,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독자들이 글을 읽고 좋은 반응을 남겨주는 건 감사하다. 하지만 정작 내가 선물하고 싶었던 이들에게는 필요하지 않은 글이 되어버린 것 같다.
'가족이 보지 않는 우리 가족 이야기', '후임 파견자가 없는 파견지 이야기' 이런 건 무슨 소용이 있는 걸까?
요새 내가 써 놓은 것을 볼 때마다 뿌듯한 성취의 느낌보다는 쓸모를 찾지 못했다는 씁쓸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는 것 같다.
작년 가을, 50% 달성 기념 글을 쓸 때만 해도 어떻게든 완결을 내면 뭔가가 있을 것만 같았다. 출판이나 강연 같은 연락은 언감생심이어도, 자비출판 정도는 가능하리라 생각했다. 그렇게 해서 사람들과 또 뭔가 재밌는 일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가졌었다.
그러나 진짜 작가들이 나누는 대화나 그들이 출판한 글을 보고 있으면, 내 글은 절박함 없는 취미의 산물일 뿐, 그 이상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자비출판을 하기에도 너무 길고 엉성해 보이기까지 한다. 글쓰기 경험이 없고 역량이 부족하니 글을 읽는 사람에 대한 배려보다는 내 생각의 기록이 우선된 탓이다. 반성은 하지만 그렇다고 지금의 내가 어쩔 도리도 없다.
솔직히 이걸 내 돈 주고라도 책으로 만들어 누군가에게 선물한다면... 나에겐 소중한 기록이겠지만 받은 사람은 좀 곤란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렇다면 나는 왜 이걸 하고 있나.”
동기가 약해지니 글을 쓸 때 감정도 잘 차오르지 않고, 어떤 말을 써야 할지도 떠오르지 않는다.
더구나 복직까지 해버려서, 회사에서 많은 고통을 겪고 난 다음 돌아온 날에는 멍하니 키보드 위에 손을 얹고도 한 글자도 쓰지 못하는 날은 점점 늘어난다.
'소모되었으니 충전하는 시간이 필요한 게 당연하지'라는 말로 스스로를 위안하려고 하지만, '아무도 나의 글을 대신 써 주지 않는다'는 사실이 나를 조바심 나게 한다.
그리고 조바심은 조바심일 뿐, 결국 소중한 퇴근 이후를 아무것도 안 한채 보내버리고 죄책감까지 안고 잠에 든다. "직장생활 + 조바심 + 죄책감"으로 이어지는 고통 3종 세트다. 나는 왜 이러고 있지?
내가 75% 달성 기념으로 이런 부정적인 글을 쓰게 될 줄이야. 그래도... 그렇지만... 여기까지 온 걸 포기할 수는 없다.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기대는 낮추고 & 부담은 버리고 & 꿈은 잊지 말자
글을 써야 할 이유가 점점 희미해지고, 이미 써 둔 글마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냥 그만둘까? 힘들다고 집에 와서 누워버릴까? 아니다. 나는 그렇게 할 수는 없다.
비록 지금은 혼자 걸어가는 외로운 길처럼 되어버렸지만, 어쨌든 내 글쓰기 여정은 이미 75%나 진행됐다. 사람들에게 쓸모없어 보일 수는 있어도, 이 글들이 전혀 가치 없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 브런치에는 이미 100편에 가까운 글이 쌓여 있다. 가치나 쓸모를 떠나, 차곡차곡 기록된 것 자체가 나의 시간과 노력을 증명한다. 글을 쓰면서 역사와 과학을 공부하여 새롭게 알게 된 것도 많다. 불필요하게 많이 알게 된 건 문제일지 몰라도, 말만 줄이면 알고 있는 것 정도는 괜찮을 것 같다.
내 브런치를 찾아와 글을 읽어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 같다.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그들이지만, 내 미국 생활과 생각, 행동이 그들에게는 이해받고 있다고 믿는다. 댓글이 달릴 때마다 설레고 기쁜 이유다.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분들이지만 정말 고마운 일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한국에 돌아온 지 2년이 된 여태껏 한 달에 한두 번씩은 연락을 주고받는 Owen과 Mark이 있다. 그들은 비록 브런치에 접속할 수 없지만 내 글의 완결을 기다리고 있다. 이것은 나에 대한 그들의 신뢰라고 생각한다.
미국에 사는 그들이 설령 끝내 내 글을 직접 볼 수 없다고 해도 나는 그 신뢰를 저버릴 수는 없다. 언젠가 다시 만났을 때 “글쓰기는 잘 되고 있어?”라고 물으면 나는 대답할 수 있어야 하니까.
글을 쓴다는 건 결국 ‘누군가의 인정’을 바라는 것일 테지만, 나는 직업 작가가 아니라 그저 취미로 쓰는 사람일 뿐임을 잊지는 말아야겠다.
브런치 작가가 된 후 '브런치 작가 소통방'이라는 오픈채팅방에 가입해서 글쓰기 하는 사람들의 여러 이야기를 듣고 있긴 하는데, 그 둘 중 직업 작가들이 나누는 대화 속의 절박함과 치열함을 볼 때마다 나는 그 정도의 태도와 마음가짐에는 미치지 못함을 깨닫게 된다. 너무다 당연히도.
나는 내가 가진 것에 비해서, 내가 해 놓은 것에 비해서 너무 큰 바람을 갖고 있던 건 아닐까? 그렇지 그게 맞지. 취미로 써 놓은 글을 누군가 좋아해 준다면 감사한 일이고, 그렇지 않다면 어쩔 수 없다.
내가 쓴 글이, 가족이나 주변 이들에게 ‘관심 없는 것’으로 남는다 해도 아쉬워하지 말자. 그것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다만 각자의 삶이 서로 다른 방향(내적이 zero, Orthonormal)으로 뻗어가고 있을 뿐이다. 전혀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는 그들을 내 글로 하여금 공감과 이해로 이끌어 가기엔 내가 부족한 탓이다. 그리고 그 부족함은 내가 단기간에 해결할 수 없는 것이고.
이제 글쓰기 여정의 25%만 남았다. 끝까지 포기하지 말자.
2년 전 글을 쓰겠다고 다짐했던 것은 지금 돌아봐도 잘못된 선택은 아니다. 다만 그 길을 완주하려면 기대를 조금 낮추고 힘을 빼야 한다. 힘을 주면 곧 스트레스와 부담으로 되돌아온다.
같은 이민자 처지라 내가 관심 갖고 구독하고 교류했던 다른 작가님들 중에는, 완성하지 못하고 멈춰선 분들도 많다. 물론 그분들만의 사정이 있음을 충분히 이해한다. 그러나 그분들이 남겨놓은 글을 다시 읽으면 마치 주인을 기다리는 강아지처럼 아쉽고 애처로움이 느껴진다.
나는 끝까지 가고 싶다. 잠시 쉬더라도 끝까지는 하자. 그러려면 글을 억지로 밀어내지 말고, 좋은 마음로 글을 쓸 수 있도록 나의 지금을 돌봐야겠다.
- 잘 쓰지 못해도 자책하지 말아야지.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그렇게 많지 않다. 할 수 있는 만큼만 하자.
- 연재는 소중하지만 집착하지 말아야지. 집착은 부담이 되고 부담은 짐이 되어 멀리 가지 못하게 한다.
- 내가 사용한 시간에 대해 후회하지 말아야지. 쉬면서 느끼는 초조함과 죄책감에서 벗어나야 한다.
- 더 멀리 가려면 지금은 조금 천천히. 나중에 언젠가 빨리 뛰어 쫓아가면 된다는 생각도 하지 말자.
2년의 이야기를 쓰는 데는 2년이 모자랐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시간이 더 필요할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끝까지 하고는 싶다.
당장은 쓸모가 없더라도, 아무도 인정하지 않더라도 나만의 기록만으로 완성된 하나의 작품이 되면 그것 만으로도 좋겠다.
Fondly,
C. Park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