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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농암 Nov 22. 2022

수능시험 본 첫 아이에게

 시험을 치르고 온 다음 날 인아는 이렇게 말했지. “제가 평소 원하던 대학 갈 수 있을지 잘 모르겠어요. 어쩌면 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그런데 아빠 제가 아빠를 실망시킨 건 아니죠?” 그때 나는 순간의 망설임 없이 대답했지. “아니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니. 네가 누구보다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아왔고, 그 정도면 아빠는 충분히 자랑스럽단다.” 


    

 어제저녁 몇몇 학원에서 예상치로 제시한 등급 커트라인 점수를 보면서 불안해하고 아쉬워하는 너를 보면서 이 편지를 써보기로 했다. 인아에게 조금은 위안이 되었으면 하고, 더 나아가 진학의 방향을 선택하는데 참고가 되면 싶기도 하고. 아빠의 생각을 조금은 더 정돈해서 전달해보고 싶기도 해서 말이야.    


 

 가장 먼저 우선해서 전해주어야 할 말은 이것이야. 집에서 가까운 국립대학을 가주면 참 고맙겠다고 한 말. 이러한 말에 대해 엄마나 너는 순전히 아빠가 금전적인 비용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해석했었지. 맞아. 그 이유도 분명히 있었고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한 것도 사실이야. 그런데 말이야 무엇보다도 중요한 이유는 다른데 있었지. 지금도 그런 생각은 변함이 없고. 친척 집 더부살이, 하숙집 전전하기, 고시원 생활, 원룸 자취 등 서울에서 대학 생활을 경험해본 나로서는 서울 생활의 어려움과 외로움과 서글픔 등이 막연히 동경해오던 넓고 새로운 세상에 대한 기대와 실제 경험보다는 훨씬 더 가혹하고 고통스러웠거든. 당시는 지금처럼 교통수단이나 통신기술이 발달하기 전이라 보고 싶은 엄마, 아빠를 자주 볼 수도 없었고, 음성을 자주 들을 수도 없었고, 따뜻한 집밥을 구경할 수도 없었지. 


<오늘 출근길에 담아본 우리 사는 동네 모습>


 너의 고등학교 3년이라는 세월 동안 우리가 함께한 시간이 별로 없었지. 주말여행을 가거나 맛있는 음식을 함께 하지도 못했고. 가족 여행은 엄두도 못 낼 정도로 한 공간에 있으면서도 함께하는 추억은 아침 식탁에서의 시간이 전부였을 정도였지. B 대학이면 집에서 좌석버스 한 번 타는 것으로 통학이 가능할 테고, 집에서 캠퍼스까지 걸리는 모든 시간을 감안해도 한 시간이면 족하지 않을까. 엄마 아빠가 해주는 따뜻한 밥 먹으면서 대학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건, 아무나 누릴 수 없는 큰 축복이라 생각해. 통금 시간 그런 건 생각지도 않으며, 길거리에서 자지 않는다면 외박의 자유도 필요하다고 생각해. 그런 시간 동안 대한민국 고등학생이라는 이유로 우리가 포기해야만 했던, K-장녀라는 이유로 네가 포기해야만 했던 그런 일들을 함께 해보자꾸나. 그런 다음에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고민해보고 선택해도 늦지 않다고 생각해. 이러한 말을 꼭 전해주고 싶었어.^^     



 그다음으로 전해주고 싶은 말들도 많이 있지만, 네 선택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기 위해 입 꾹 닫고 있으려 한다. 어떤 선택을 하든 믿고 응원하고 필요한 만큼의 지원은 아끼지 않을 테니 너는 네 갈 길을 굳건히 당당하게 가기를 바랄게.     



 수능시험 치른다고 정말 정말 고생 많았어요.


 그만하면 더할 나위 없이 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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