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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학기 반장 Jul 27. 2022

아빠가 되니까 좋아요?

냉탕과 열탕 사이에서


결혼 7년 차. 나는 토끼 같은 아내와 곰돌이 같은 아들, 병아리 같은 딸 네 식구를 책임지는 가장이다. "아빠가 되니까 좋아요?"라는 질문을 받을 때면 뇌에서 자동 응답 기능이 켜진다.


"육아는 냉탕과 열탕만 있는 목욕탕 같다고 해야 할까요? 온탕은 없어요. 행복 50.1%와 고통 49.9%가 공존하는데 그 둘이 서로 상쇄되진 않아요. 행복하거나 고통스럽거나 둘 중 하나인 순간들의 합이 육아의 일상인 것 같아요."


가장으로 산다는 게 이렇게까지 어렵고 힘든 일인가 싶어 기가 찼다.(아내는 기가 막히고 코도 막혔을 것이다.) 아이들은 끊임없이 부모의 희생을 요구한다. 지금도 이렇게 힘든데 앞으로는 어떤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지 막막하게 느껴졌다. 이제 정녕 나를 위한 삶은 없는 건가.


연인의 사랑이 냉정과 열정 사이라면 육아는 냉탕과 열탕 사이라고나 할까?


재택근무라서 편할 것 같았지만, 방문 열고 들어가면 회사 출근, 방문 열고 나오면 퇴근과 동시에 육아 출근이다. 육아는 퇴근이 없다. 어린이집에 다녀온 아이들이 "아빠! 일하지 마!"라며 생떼를 쓴다. 10분 동안 노트북으로 아무 작업도 하지 않으면 초록불이 꺼져버리는 사내 메신저는 빅 브라더, 10분만 놀아달라고 삐약삐약 거리는 아이들은 스몰 브라더가 되어 하루 종일 나를 감시한다.


코로나로 아이들이 어린이집에 가지 못하는 날들이 반복될 때면 뉴스에 나오는 무책임한 부모들과 내가 크게 다르지 않음을 느낀다.(예수님은 생각으로 짓는 죄도 행동으로 짓는 죄와 같다고 하셨다.) 아이를 학대하고 가정을 파괴하며 심지어 삶을 포기하는 부모들의 심정을 헤아려보려는 나 자신이 몸서리치게 싫고 무서웠다. 결혼 전에는 좋은 남편, 멋진 아빠가 될 자신감이 충만했는데 지금의 나는 이것밖에 안 되는 인간이었나 싶어 자괴감에 빠지기도 했다.


https://m.blog.naver.com/anshq/220856981569


"야, 배부른 소리 하지 마라. 지금이 가장 황금기야. 품 안의 자식이라고 조금만 지나 봐라. 아빠 엄마랑은 놀지도 않으려고 할 거다. 어휴, 사춘기 와봐라! 물고 빨고 할 수 있는 지금이 가장 예쁘고 좋을 때야!"


인생의 선배들에게 죽는소리하자 공통적으로 돌아온 답변이었다. 옛날 개그 중에 일본에서 가장 잔인한 사람 이름이 '도끼로 이마까'인데(더 잔인한 사람은 '깐데 또까') 정말 도끼로 이마를 까이고 망치로 뒷동수를 후려 맞은 느낌이었다. 가장 고통스럽다고 생각한 이때가 가장 행복한 때라니!

흐릿하던 내게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이 선명하게 엄습했다. 아이들과 어떻게 시간을 때울까 고민했던 내가 부끄러웠다. 사실은 아이들이 나와 놀아주는 것이었는데, 내가 사랑하는 것보다 아이들이 나를 더 많이 사랑해주는 것이었는데. '아이들이 품 안의 자식이라는 한정된 시간을 기회로 줄 때 고마운 마음으로 이 순간을 저장해야겠구나!'


매일 아이와 함께 가는 유치원 등원 길은 뭐 하나 특별할 것 없지만, 이제는 알 것 같다. 아이와의 별 것 아닌 일상이 인생을 돌아볼 때 가장 특별한 순간이었음을. 그래서 나는 요즘 아이의 등원 길을 사진처럼 눈에 담으려고 한다. 아이가 씽씽이를 타고 달려갈 때 흩날리는 머릿결, 차도를 건널 때 두리번거리며 바빠지는 동공, 유치원에 쭈뼛쭈뼛 들어가서 90도로 인사하고 멍텅구리처럼 사라지는 장면 등등. 그렇게 아이는 매일 눈물 나게 아름다운 추억의 편린들을 내게 선물해준다.


사랑스러운 삐약삐약 1호기와 2호기


결혼의 목표는 행복이 아닌 성숙이다. 100세 철학자 김형석 교수는 '고생 있는 사랑이 행복'이라고 정의했다. 고생은 성숙의 촉매제요, 성숙은 더 큰 세계의 기쁨을 맛보는 통로이다. 결국 행복에 쫓기면 불행해지지만, 성숙을 좇으면 행복해진다.


"내가 제일 부자다!" 요즘 내가 가장 많이 하는 말이다. 좌 아들 우 딸내미를 끼고 번갈아가며 뽀뽀할 때 세상을 다 얻은 기분이 든다.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존재가 된다는 것은 무거운 고통인 동시에 무한한 기쁨이다. 내가 아닌 존재를 위해 희생할 수 있음이 큰 은혜요 복인 것이다. 지금까지 나는 나 자신만을 사랑하며 살아오지 않았는가. 나 같이 이기적인 인간이 누군가를 위해 나를 내어줄 수 있다니! 날마다 조금이라도 나은 인간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아이들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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