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학기 반장 Mar 08. 2024

남들과 다른 속도로 살아도 괜찮은 걸까?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 남들보다 느린 속도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이솝우화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는 속도보다 태도가 더 중요하다는 교훈을 준다. 과연 현실에서는 어떨까? SBS 예능 프로그램 <호기심 천국>에서 토끼와 거북이 경주 실험을 했는데 놀라운 결과가 나왔다. 실제로도 거북이가 이긴 것이다. 토끼는 당근의 유혹에도 움직이지 않았고 거북이는 묵묵히 결승선을 통과했다.     


태국에서도 같은 실험을 한 적이 있다. 또다시 거북이의 승리였다. 느리지만 똑바로 나아가 결승선을 통과한 거북이. 반면에 토끼는 빠른 속도로 달렸지만, 방향을 잃고 경주 코스를 벗어나 실격됐다. “인생은 속도가 아닌 방향”이라는 괴테의 명언이 떠오른다. 아무리 속도가 빨라도 의욕이 없어 움직이지 않거나 산만해서 엉뚱한 방향으로 달린다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잠자는 토끼도 잘못이지만 발소리 죽이고 몰래 지나가는 거북이도 떳떳하지 못합니다. 토끼를 깨워 함께 가야 합니다.’ 어느 대학교 광고 문구다. 경쟁보다 협력이 중요하다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지만, 한 가지 의문이 든다. 토끼와 거북이의 잘잘못을 따지기에 앞서 경주 장소의 적합성을 먼저 논의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만일 둘 다 바다에서 경주했다면? 아니면 토끼는 육지에서, 거북이는 바다에서 같은 거리를 경주했다면? 이때 속도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상황과 조건에 따라 변하는 상대적인 것이 된다. ‘제2의 스티븐 호킹’이라 평가받는 세계적인 물리학자 카를로 로벨리는 저서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에서 속도의 개념을 이렇게 설명한다.   

  

“물체의 속도는 물체 자체의 성질이 아니다. 다른 물체와의 관계 속에서 맺어진 물체의 성질이다. 달리는 기차 위에서 뛰어다니는 어린아이의 속도는 기차에 대해서는 작은 값(초당 몇 걸음)을 갖고 지상에 대해서는 또 다른 값(시간당 100킬로미터)을 갖는다. 엄마가 아이에게 “가만히 있어!”라고 한다고 해서, 아이가 기차 창문으로 뛰어내려 ‘지상과의 관계 속에서 그곳에’ 멈추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기차와의 관계 속에서’ 아이가 멈추어야 한다는 뜻이다. 속도는 다른 물체와의 관련 속에서 한 물체가 갖는 특성이다. 상대적인 양인 것이다.”     



카를로 로벨리는 또 다른 예를 들어 시간이 흐르는 속도의 상대성을 설명한다. 산에 사는 사람과 평지에 사는 사람 중 누가 빨리 늙을까? 정답은 산에 사는 사람이다. 시간이 산에서는 더 빠르게, 평지에서는 더 느리게 흐르기 때문이다. 이 사실은 누구나 인터넷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정밀 시계로 측정 가능하다고 한다. 시계는 책상 위에 있을 때보다 바닥에 있을 때 솜털만큼 더 느리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책상과 바닥, 산과 평지 중 어디에서 측정한 시간이 더 정확할까? 카를로 로벨리는 정확한 시간, 즉 절대적인 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서로에 대해 상대적으로 변화하는 시간들일뿐이다. 둘 중 다른 시간에 비해 더 진짜에 가까운 시간은 없다. 두 개의 시간만 있는 것이 아니라, 거의 군단을 이룰 정도로 많은 시간이 존재한다. 공간 속의 모든 지점마다 다른 시간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심지어 시간은 물체가 빠르게 움직일수록 더 천천히 흐르는 특징도 있다. 이동하는 제트기에서 초정밀 시계로 측정하여 입증된 바 있다. 이처럼 관찰자의 운동에 따라, 중력에 따라 시간이 흐르는 속도가 달라지는 현상을 ‘시간 지연’이라 부른다.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지구에 있던 딸이 우주여행에서 돌아온 아버지보다 늙어있는 장면을 기억하는가? 이것이 그 유명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다.      



카를로 로벨리는 또한 시간 지연으로 인한 ‘고유 시간’의 개념을 소개하며 시간이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다는 통념을 부숴버린다. “특별한 시계가 특별한 현상 속에서 측정한 시간을 물리학에서는 ‘고유 시간’이라고 부른다. 모든 시계에는 각자의 고유 시간이 있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에도 고유 시간, 고유의 리듬이 있다.”      


지금까지 나는 공대 출신임에도 상대성 이론이 외계인이 사는 행성에나 적용되는 법칙처럼 여겼다. 시간의 본질을 다루는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를 통해 나만의 고유한 시간이 나의 삶을 이끌어 간다는 충격적인 확신에 흥분했다. 


나는 금수저든 흙수저든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주어지는 것이 ‘시간’이라고 믿었다. 시간 관리를 얼마나 잘하느냐에 따라 인생이 바뀐다는 자기 계발서의 주장을 별 의심 없이 수용했다. 그러나 고유 시간을 알게 되자 현타가 왔다. 저마다 다른 시간 속에서 살아가는데 이때는 이것을 해야 하고 저 때는 저것을 해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을까?      


인생을 바라보는 중요한 관점을 배웠다. 외국인은 김치를 보고 왜 채소를 썩혀서 먹는지 의아해한다. 늙는다는 것은 관점에 따라 부패하는 과정이 될 수도 숙성되는 과정이 될 수도 있다. 김치는 온도와 장소에 따라 익어가는 속도가 달라진다. 온 우주에서 나는 단 하나뿐인 유일한 존재이듯 우리는 저마다 고유 시간 속에서 살아간다.    

  

누구에게나 보편적으로 흐르는 동일한 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고유 시간 속에서 나는 현재를 사는 동시에 과거와 미래를 산다. 언젠가 도로에서 ‘어디를 가려고 그리 빨리 가십니까’라고 적힌 현수막을 본 적이 있다. 빨리 가려다가 저승에 먼저 도착할 수도 있다는 경고 문구다.


미친 듯이 달리는 남의 속도를 부러워해야 할까, 걱정해야 할까? 뒤에서 상향등 켜고 경적 울리면서 나의 속도에 간섭하는 자가 나타나면 잠시 비켜주면 된다. 어디 똥이 무서워서 피하나. 삶에 정해져 있는 속도라는 것은 없다. 나의 속도에 맞는 차선에서 불안해하지 않고 안전하게 목적지까지 완주하면 되는 것이다.                               



※ 이학기 반장의 저서 <서른, 진짜 나를 알아가기 시작했다> 중에서 일부 내용을 재구성한 글입니다.




[이학기 반장 연재]

월 : 이학기 스쿨의 월요일 진로반
화 : 이학기 스쿨의 화요일 독서반
수 : 이학기 스쿨의 수요일 작가반
목 : 이학기 스쿨의 목요일 직장반
금 : 이학기 스쿨의 금요일 고민반
이전 03화 아, 내 청춘은 끝난 것인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