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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학기 반장 Mar 29. 2024

친구가 정말 친구 맞나?


야! 이게 무슨 책이냐? 하나도 재미없네!


내가 첫 책을 썼을 때 친구 중 한 놈의 한 줄 서평(?)이었다. 한 페이지도 다 못 볼 정도로 별로라며 면전에서 악평을 서슴지 않았던 그 멧돼지 같은 쉐키. 하지만 나는 미소로 화답했다.


내 인품이 훌륭해서? 절대 아니다. 물론 문과 출신도 아닌 평범한 직장인이 아무리 영혼을 갈아 넣어 책을 쓴다 한들, 어설픔과 부족함을 한 톨이라도 숨길 수 있겠는가. 그걸 정확히 볼 줄 아는 지식이 있는 친구가 팩폭을 했다면 내상을 입고 싸웠을 것이다.


그런데 그 멧돼지 같은 놈은 전문대학 입시 면접에서 '유럽에 있는 나라 이름 5개를 말해보라'는 질문에도 답변을 못 했을 정도로 기본 상식은 물론 인문학적 소양이 제로에 가까웠다. 심지어 우리가 고3일 때 2002 한일월드컵이 개최되어 각종 매체에 유럽 축구팀들이 수도 없이 언급됐었다는 사실은 안 비밀. 그러니 내가 멧돼지의 악평에 그저 웃을 수밖에 없지 않았겠는가.



사진=영화 <범죄도시>



친구의 본질이 혹시 공산주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전 지인과 이야기하다 문득 든 생각이다. 친구라는 준거 집단은 누구 하나 튀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잘 생각해 보라. 내가 큰 결심을 했을 때 친구 대다수는 마치 짠 듯이 "니가 무슨"으로 시작하는 화법을 구사한다.


"나 다이어트해."
"니가 무슨 다이어트야!"

"나 공부할 거야."
"니가 무슨 공부야!"

"나 책 쓰려고."
"니가 무슨 책을 써!"


코흘리개 어린 시절에는 친구들끼리 고만고만해서 열등감을 느끼기 어렵다.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자신이 아무것도 이뤄놓은 것이 없다는 현실을 자각할 때 저만치 앞서 가는 친구를 뭐라도 꼬투리 잡아 기어이 끌어내려야 속이 풀리는 놈들이 있다.


본인의 낮은 자존감과 조금이라도 갭을 줄여놔야 덜 불안하기 때문이다. 친구 집단에서는 전체 평균 수준에 머물러야 안전하다. 배고픔은 참아도 배아픔은 못 참는 게 우리나라 풍토병이니까.


'친구는 옛 친구가 좋고 옷은 새 옷이 좋다'는 말이 있지만, 오래 사귄 친구일수록 오히려 더 깊은 상처를 줄 수 있다. 이쯤 되면 친구가 정말 친구 맞나라는 생각이 든다.





몇 년 전 주식으로 대박 난 절친을 무참하게 살해한 사건을 기억하는가? 인간의 토악질 나는 죄성 앞에서는 의리도 우정도 아무 소용없다. 예수는 마음속으로 저지르는 살인도 실제로 행하는 살인과 동일한 죄라고 했는데 나는 그동안 얼마나 많은 살인을 저질러온 것일까?


때 나는 친구들에게 각인된 소싯적 흑역사 이미지를 바꿔보려고 발악해보기도 했지만, 부질없는 짓이었다. 내가 어려울 때는 모든 친구가 위로해 주지만, 내가 잘 나갈 때는 모든 친구가 축하해주지는 않는 법이다.


내가 기쁠 때 함께 기뻐하는 친구가 진짜다. 그런 친구가 그나마 한 둘은 있어 천만다행이지만, 찐친에게서조차 나의 과거 이미지를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다.


얼마전 만난 지인은 그 누구보다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했고 친구들과 매일같이 어울렸다고 다. 그러나 그가 독립을 하고 자리를 잡자 친구들 사이에 호환마마보다 무서운 배아픔의 전염병이 순식간에 확산되었다. 그는 점점 친구들과 뜸해졌고 지금은 외톨이가 되었다고 고백했다.


나는 친구들에게 찐친일까, 공산주의자일까?


자신이 보고 싶은 대로 나를 보는 친구는 흔해도 나를 있는 그대로 보는 친구는 드물다. 나부터 먼저 친구의 존재 자체를 있는 그대로 보지 않는다면, 나 또한 친구들 사이에 멧돼지 같은 쉐키일 뿐이다. 사실 찐친이 되는 것은 친구가 기뻐할 때 진심으로 함께 기뻐하기만 해도 되는 참 쉬운 일이다.


(나 자신에게 하는 말) 그게 그렇게 어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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