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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학기 반장 Apr 05. 2024

아홉수의 저주를 믿나요?


지난해 6월 전대미문의 사건이 대한민국에서 일어났다. 전 세계의 관심이 우리의 '이중 나이'에 쏠렸다. "한국인은 왜 나이가 2개인가요?" 우리도 '한국 나이'와 '윤석열 나이'가 헷갈리는데 외국인에게 설명해 준들 그들이 쉽사리 이해할 수 있겠는가.


마흔이었던 나는 대통령 덕분에(?) 지난해 6월, 졸지에 달달구리한 서른여덟이 되었다. 그리고 네 달 뒤 생일을 맞이해 달큰한 서른아홉이 되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지만, 어쩌다 사십 대에서 아무튼 삼십대로 회귀하니 덤으로 사는 인생 같아 나쁘지 않다. 스물아홉에서 서른이 될 때의 그 헛헛함과는 또 다른 서른아홉의 야릇함이 느껴진다. 아무튼 나는 지금 삼십 대다. 음하하!


전혀 과학적이지 않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아홉수의 저주'라는 것이 통용된다. 나무위키에 의하면 아홉수의 기원은 조선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 당시엔 나이에 9가 들어가면 결혼이나 이사도 피했다고 한다. 아무래도 9와 10은 1밖에 차이가 안 나지만, 10은 뭔가 꽉 차 보이고 딱 떨어지는 숫자 같은 반면 9는 뭔가 부족하고 미완성된 느낌을 주기 때문이라나 뭐라나. 이렇게 아홉수의 저주는 "인생의 완성 직전에 불행이 찾아오는 나이"라는 의미에서 탄생하게 되었다.





얼마 전의 만남과 대화를 곱씹어 보았다. 15년 인생 선배가 내 고민을 쭉 들으며 진맥 하더니 한 마디로 병명을 판정했다. "넌 지금 서른아홉의 저주에 걸려있어." 그는 마흔이 되면 더 이상 기회가 없을 것만 같고 더 늦기 전에 뭔가 중대한 결정을 해야 할 것만 같아 쫓기는 마음, 그것이 바로 서른아홉의 저주라고 정의했다.


선배는 어떻게 그렇게 확신할 수 있었을까? 바로 자신이 15년 전 서른아홉의 저주에 걸려 인생의 최악수를 두었기 때문이란다. 서른아홉의 나이는 많다고 하기에는 아직 젊고, 싱싱하다고 하기에는 이미 중년이다. 선배는 커리어적으로도 뭔가 알 것 같고 뭔가 될 것 같지만, 사실 그 '뭔가'가 확실하지 않아 애매한 나이가 바로 서른아홉이라고 설명했다. 이때는 여러 기회도 찾아오는데 큰 기회는 오히려 큰 위기가 될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며 경험담을 들려주었다.


선배는 서른아홉에 찾아온 큰 기회를 덥석 잡았고 본업에서 벗어나 기업의 CEO로 신분 상승을 했다. 하지만 사내 정치와 편 가르기, 카르텔 등으로 밤낮없이 시달리며 결국 과로사의 문턱에서 겨우 살아남았단다. 그는 화려한 독버섯에 매료되어 목숨을 잃듯 쓰디쓴 위기는 달콤한 기회를 가장해서 찾아올 수 있다는 사실을 배웠다고 했다. 조급한 선택으로 선배는 큰 성취를 단박에 이루려다 밑바닥까지 떨어졌다며 내게 길게 보고 냉정하게 기회비용을 잘 따져서 선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동안 나름 책도 열심히 읽고 다각도로 살펴보며 여러 지인에게 조언도 구했다. 충분히 숙고한 줄 알았는데 선배의 내공 앞에 나는 그저 철부지일 뿐이었다. 마지막으로 선배는 새로운 길은 차곡차곡 준비하며 더 무르익은 후에 가도 늦지 않다며 '나이'보다 중요한 것은 '시기'라고 말했다. 즉 새로운 길에는 얼마나 내공을 쌓아 적절하게 등장하느냐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신선함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부디 조급해지지 말자. 아홉수는 1이 모자란 저주가 아니라 1로 충만해지는 축복이니까.





[이학기 반장 연재]

월 : 이학기 스쿨의 월요일 진로반
화 : 이학기 스쿨의 화요일 독서반
수 : 이학기 스쿨의 수요일 작가반
목 : 이학기 스쿨의 목요일 직장반
금 : 이학기 스쿨의 금요일 고민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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