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학기 반장 Apr 01. 2024

오잉? 나의 소명이 OO라고?


날씨가 쌀쌀해지자 아버지의 심근 경색 증세가 재발했다. 아버지는 1년 전에 스탠스 시술을 했는데 이번에는 혈관 이식 수술을 해야 할 정도로 상태가 안 좋았다. 띠동갑 이복동생이 아버지와 같이 지내고 있었지만, 당시 동생은 방황의 절정을 달리던 때였다. 아버지 병간호를 해줄 사람이 없었다. 고민하던 중 아내와 상의하여 3개월 가족 돌봄 휴직을 신청했다.


인생의 첫 휴식이었다. 물론 온전한 휴식은 아니지만, 3개월 동안 가족에게만 집중할 수 있는 덩어리 시간이 주어진 것이다. 1달은 아버지 병간호를 위해, 1달은 처가 식구와 나를 위해, 1달은 아내를 위해 귀한 시간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또 파워 J 아니겠는가. 3개월 가족 돌봄 휴직 계획을 세웠다. 이때 강점 찾기를 통해 소명 가설로 세웠던 내용들도 검증해 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당시 작성했던 3개월 가족 돌봄 휴직 계획


만사에 부정적인 아버지는 이렇게 고통스러운 수술은 난생처음이었다며 의식이 돌아오자마자 의사를 욕했다. 얼마나 고통스러웠으면 저럴까 싶으면서도 생명을 구해준 은인을 원수처럼 여기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공교롭게도 불과 1년 전에 엄마의 장례를 치렀던 병원에 아버지가 입원을 하니 만감이 교차했다. 암투병 6개월 만에 엄마를 떠나보낸 후회가 다시 밀려왔다. 그때 휴직하고 엄마 곁을 지켰어야 했는데...


중3 때 부모님이 이혼한 이후로 나는 엄마와, 이복동생은 아버지와 살았다. 그때 이후로 이렇게 오랫동안 아버지와 함께 지낸 적이 있었던가. 아버지는 상처가 많아 사람을 믿지 않고 매사에 의심이 많았다. 병원에서 불필요한 분쟁이 생기지 않도록 나는 늘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아버지 곁을 지켰다. 그래도 엄마에 대한 미안함과 아쉬움이 동력이 되었기에 나는 버텨낼 수 있었다. 


머리털 나고 처음으로 아버지 대변을 직접 받아보기도 했다. 치부까지 공유하는 시간을 통해 아버지와 그동안 하지 못했던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간병인 침대에서 새우잠을 자면서 몸은 뻐근해졌지만, 마음의 겨울은 차츰 녹아 봄이 되어갔다. 아버지도 같은 마음이었을까. 감사하게도 아버지는 회복을 잘해 예상보다 빨리 퇴원할 수 있었다. 


당시 작성했던 소명 가설 TNTQ


때마침 입사 동기 형이 '소명교육개발원'에서 '소명 지도사 2급 과정'의 참가자를 모집한다는 소식을 알려줬다. 나의 소명 가설을 전문적으로 검증해 볼 좋은 기회였다. 4일간 매일 7시간 동안 교육을 받아야 하는 만만치 않은 과정이었지만, 내 눈은 어느 때보다 반짝였다. (학창 시절에 이렇게 공부를 좀 했다면...) 


크게 다섯 파트 내면 이야기, 자기 탐색, 진로 탐색, 진로 방향성, 실전 적용으로 이어지는 커리큘럼을 통해 추상적이었던 소명 가설이 점점 선명해졌다. 특히, TNTQ로 나의 직업적 소명을 정리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TNTQ란 Target(대상, 나의 고객), Needs(필요, 고객 니즈), Tool(은사, 나의 강점), Quality(문화, 고객 경험)의 줄임말이다. 즉 나는 어떤 대상의 필요를 어떻게 채워서 좋은 문화를 만들 것인가, 이것을 정리하면 나의 직업적 소명이 무엇인지 결정적인 힌트를 얻을 수 있다. 


나는 TNTQ를 통해 직업적 소명 가설로 크게 두 가지 '가정 사역자', '문화 사역자'를 발견할 수 있었다. 좀 더 구체화하기 위해 몰입 경험과 관심 직업의 터치워드를 찾는 작업도 했는데 모두 말과 글로 소통한다는 본질이 담겨 있어 새뜻했다. 그것을 통해 소명 선언문도 작성했는데 처음으로 '작가'라는 단어를 내 손으로 쓰고 두 눈으로 확인하는 신비로운 경험을 했다. 

당시 작성했던 소명선언문과 터치워드



내 소명이 작가라고? 글 쓰기를 배웠던 건 고등학교 때 논술 준비했던 게 다였고 책은 수면제라 여겼던 나였다. 이과, 공대, 군대, 유통으로 이어지는 커리어를 쌓아온 내가 작가가 되기 위해 태어났다고??? 예쁜 외계 생명체를 만난 것처럼 내 가슴은 호기심 반, 두려움 반으로 채워졌다.



[이학기 반장 연재]

월 : 이학기 스쿨의 월요일 진로반
화 : 이학기 스쿨의 화요일 독서반
수 : 이학기 스쿨의 수요일 작가반
목 : 이학기 스쿨의 목요일 직장반
금 : 이학기 스쿨의 금요일 고민반
이전 07화 나를 잘 아는 지인 30명에게 묻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