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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학기 반장 Apr 18. 2024

직장 내 인간 관계, 나만 힘든 걸까?(2)


지금 있는 그대로의 나

어릴 때부터 뉴질랜드, 미국, 콜롬비아, 스페인 등 해외에서 살아온 친구가 있어요. 그에게 어디가 가장 인상 깊었냐고 묻자 이렇게 답하더라고요. "나는 스페인이 제일 좋아. 나를 그냥 나로 인정해 주는 문화가 인상적이었거든. 거기에서는 너 몇 살이야? 직장 어디 다녀? 차는 뭐 타?라고 물어보지 않아. 내가 누구인지에 대해 존재 자체를 알아가길 원하더라고."


인간은 자기 본연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인정받길 원하는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페르소나가 범람하는 시대 속에서 진짜를 갈구하는 인간의 마음을 그 누가 채워줄 수 있을까요? 그래서 저는 ‘지금의 나를 사랑하고 나의 지금을 사랑하는 것’이 인간관계의 핵심이라고 생각해요. ‘지금의 나’는 그냥 있는 그대로의 나를 뜻해요. 부족함이 있더라도, 불만족이 있더라도 지금 있는 그대로의 나의 존재를 일단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지금의 나를 사랑하는 첫걸음이에요. 나 자신부터 나의 진짜 모습을 존중하자는 것이에요.  


사랑은 감정이 아닌 노력이잖아요. 누가 봐도 매력적인 존재를 좋아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에요. 노력이 필요하지 않은 감정일 뿐이기 때문이죠. 사랑하기 힘든 존재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진정한 사랑 아닐까요? 나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남을 사랑할 수 있겠어요. 모든 관계에서 가장 먼저 나 자신과의 관계가 건강해야 하는 것이 첫 번째예요.      


‘지금의 나’를 사랑하기 시작하면 ‘나의 지금’을 사랑하게 돼요. ‘나의 지금’은 내가 지금 만나는 사람, 내가 지금 하는 일, 내게 지금 주어진 시간, 나와 지금 공존하는 것 등을 의미해요. 지금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려고 노력하다 보면 결국 내가 지금 맞닥뜨리는 모든 것을 소중하게 여기고 사랑하게 되는 원리예요.     


오은영 박사는 직원 채용을 할 때 자존감이 높은 사람을 뽑는다고 해요. 예전에는 능력 위주로 직원을 뽑았는데 능력이 높아도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실패했을 때 쉽게 좌절하고 실패가 두려워 도전하지 않으며 문제를 회피하는 경향을 보인대요. 결국 오래 못 가고 모두 떠났다고 해요. 그런데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능력이 부족해도 ‘이번엔 내가 좀 부족했네. 다음에 더 잘해야지!’라고 생각한대요. 그렇게 조금씩 발전해 가면서 스스로 인정하고 칭찬할 줄 아는 사람이 건강하게 사회생활도 잘한다고 해요.     


직장 내 인간관계에서도 이런 기본 원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직장에서 별의별 사람을 다 만날 텐데 그중에 혹시 나를 괴롭히는 사람을 만난다고 해도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위기를 잘 이겨낼 수 있어요. 어느 스님은 상대가 나를 모욕하는 말을 했을 때 그 말을 쓰레기로 여기라고 했어요. 쓰레기는 그저 쓰레기통에 넣으면 그만인데 보통은 그 쓰레기를 끌어안고 스스로 너무 고통스러워한다는 거예요. 하지만 말처럼 쉽게 된다면 인간관계가 어렵진 않겠죠.  



자존심 vs 자존감

저 역시 온갖 쓰레기들을 잔뜩 끌어안고 고통에 몸부림치던 때가 있었어요. 이직하고 만난 첫 리더가 역대급이었거든요. 그는 늘 팀원 중 한 사람을 표적으로 삼아 공개 석상에서 처참히 짓밟아버리는데 능했어요. 공개 처형을 통해 공포 정치를 하는 폭군 같았다고 할까요. 문제는 그의 첫 표적이 저였다는 거예요. ('04화 직장 내 인간관계, 나만 힘든 걸까?'(https://brunch.co.kr/@cpotss2023/259)에 등장했던 직장의 빌런들을 기억하나요? 오늘 다시 깜짝 등장!)


모든 직장에서 통용되는 ‘또라이 질량 보존의 법칙’을 아시나요? 어디를 가나 또라이는 한 명 이상 존재하기 마련인데 또라이가 없을 때는 내가 바로 또라이라는 것인데요. 이직한 곳에는 폭군 리더뿐만 아니라 동료들 사이에서도 공공의 적인 또라이가 하나 있었는데 기가 차게도 또라이와 폭군 둘이서 짝짜꿍이 잘 맞는 거예요. 끼리끼리 연합해서 팀원들을 괴롭히는데 당해낼 재간이 없어 미치겠더라고요. 이직하기 전에는 직장 내 인간관계에서 큰 어려움이 없었어요. 나의 능력이 탁월해서라 아니라 좋은 상사들과 동료들을 운 좋게 만난 덕분에 인정받으며 직장생활을 잘할 수 있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은 거죠.      


폭군과 또라이 연합군이 던지는 쓰레기들을 한참 동안 끌어안고 지내다 견디지 못한 저는 직장 내 고충 상담실의 문을 두드렸어요. 10회에 걸쳐 나의 감정과 그 근원을 찾아가는 질문들을 통해 결국 문제는 그들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사람이 싫어서 도망치려고 했던 제 모습을 돌아보면 당시의 저는 자존심만 높고 자존감은 낮은 최악의 상태였던 것 같아요. 자존심은 나의 가치를 타인에게 인정받으려고 하는 마음이고, 자존감은 나의 가치를 자기 스스로 인정하는 마음이잖아요. 저는 연합군을 어떻게든 실력으로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 나의 가치를 증명하려는 복수심으로 직장을 다니고 있었더라고요.      


연합군의 공격 때문에 제가 자존감을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애초에 제 안에 나의 존재와 내가 하는 일의 가치를 스스로 높이며 부족해도 당당하게 맞서려는 마음이 견고히 다져지지 않았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문제의 근본 원인이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나서 피나는 노력으로 관점을 바꾸기 시작했어요. 앞서 ‘07화 직장과 나의 관계 설정'(https://brunch.co.kr/@cpotss2023/276)에서도 언급했던 ‘능동적 공헌자’가 되기로 결단한 것이죠.


연합군을 개인적인 감정으로 물리쳐야 할 대상이 아니라 조직을 함께 성장시켜야 할 동지로서 바라보고 내가 조직에 공헌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에 초점을 맞췄어요. 물론 쉽지 않았죠. 하지만 회피한다고 끝날 문제가 아니었어요. 또라이 질량 보존의 법칙이 존재하는 한, 언젠가 한 번은 정면돌파해야 할 인생의 해결 과제라고 인식했거든요. 그러자 개인의 감정도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해소되었고 거짓말같이 연합군과의 관계도 점차 회복할 수 있었어요. 공개 석상에서 사람을 짓밟기만 했던 리더가 처음으로 공개 석상에서 저를 칭찬하는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나기도 했어요. 잘 나가는 직장 선배들은 하나같이 직장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태도라고 강조하는데, 태도는 바로 자존감에 기인한다는 것을 이때 절감했어요.      


누군가가 나를 괴롭힐 때 나의 가치를 결정하는 권한을 누구에게 주고 있나요? 상대가 어떻게 나오든 나는 나의 가치에 집중하며 상대가 던지는 쓰레기를 그저 쓰레기통에 넣기만 하면 돼요. 그런데 그게 굉장히 어렵죠. 세상에 공짜는 없기에 그만큼의 노력이 필요해요. 직장인에게 프로페셔널한 멘탈 관리는 업무 능력 이상으로 중요하니까요.     



인간관계의 선순환 원리

그다음 직장 내 인간관계의 선순환 원리로 남 중심적으로 생각하는 습관에 대해 나누고 싶은데요.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성경의 황금률이 인간관계의 근본 해법이 아닐까 생각해요. 직장에서는 남에게 부탁받은 일을 내 일보다 먼저 처리하는 것, 메일을 쓸 때 상대의 관점에서 이해하기 쉽도록 핵심 내용을 직관적이고 심플하게 정리하는 것 등 기본적인 일부터 시작할 수 있어요.


저는 남이 정말 필요로 하는 것을 내가 가진 능력으로 채워주는 기쁨이 진정한 인생의 동력이라고 믿거든요. 그래서 자기소개를 할 때 ‘나의 기쁨과 세상의 필요가 만나는 곳의 행복을 찾는 사람’이라고 말하곤 해요. 거듭 강조하지만, 인간관계에서 '진심'을 이길 수 있는 것은 없다고 생각해요. MD로서 수많은 사람을 만나며 느낀 것은 상대가 진심으로 잘되길 바라며 솔직하게 다가갈 때 좋은 사람이 내 곁에 남는다는 진실을 알게 되었거든요.         


인간관계에서 자기 계발을 꾸준히 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고 느꼈는데요. 업무 스킬 향상을 위한 노력은 기본이고 여기에 더해서 사람을 이해하기 위한 인문학적 성찰이 요하다고 생각해요.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커머스에서 일하는 MD에게는 결국 인간관계가 성과로 연결되기 때문이에요. AI로 인해 일자리를 위협받고 있는 가운데 우리의 생존 무기는 무엇일까요? 바로 사람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인문학적 역량을 갖추는 것이 아닐까 싶어요. 그래서 저는 틈틈이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고 글도 쓰려고 노력해요.


그 외에도 직장 생활을 하며 선배들에게 인상 깊게 배운 두 가지를 공유하면 하나는 '일단 아낌없이 나누면 언젠가 돌아온다'이고, 또 하나는 '내게 싫은 소리 하는 사람이 나의 스승이다'라는 것이에요. 제가 신입사원 때 만난 어떤 선배가 있는데 그는 개인적으로 특허를 여러 개 갖고 있는 아이디어 뱅크였어요. 별로 친하지도 않은 사이였는데 본인이 특허를 낸 과정과 아이디어가 담긴 자료를 제게 아낌없이 공유해 주는 거예요. 그러면서 선배가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계산하지 말고 아낌없이 나눠라. 그러면 언젠가 반드시 너한테 돌아온다." 신선한 충격을 받은 저는 이 말을 그대로 선배의 명함에 적어서 간직했고 직장 생활을 하면서 제가 갖고 있는 정보와 지식을 아낌없이 동료들과 나누었어요. 그 덕분에 최연소 영업 팀장도 될 수 있었고, 최연소 상품매입본부 MD도 될 수 있지 않았나 싶어요.


싫은 소리의 가치를 알려준 사람은 신입사원 때 처음 모셨던 지점장이었어요. 그의 얼음장 같은 카리스마에 선배들은 벌벌 떨었지만, 당시 신입사원이었던 제게 그는 따듯한 분이었어요. 사랑의 반대말이 무관심이듯, 나를 혼내는 사람은 내게 애정이 있다는 뜻이기에 싫은 소리를 잘 새겨듣고 그 사람을 스승으로 삼으라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어요. 세월이 지나고 이제는 후배들도 많아지다 보니 그의 말이 더 깊이 가슴에  와닿아요. 


내 귀에 달콤한 말만 하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사기꾼 아니면 나를 이용해먹으려 들거나 내게 별 관심이 없는 사람뿐일 거예요. 그런 의미에서 제게 쓰레기를 한가득 안겨줬던 그 폭군 리더조차도 사실은 저의 좋은 스승이었어요. 제 안의 근본적인 문제를 직면하여 그것을 극복하도록 도와줬잖아요. 인간은 오직 고통을 통해서만 성숙할 수 있기에 직장에서 내게 싫은 소리를 하는 사람을 무조건 꼰대로만 치부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오히려 좋은 스승으로 삼을 수 있는 요소가 무엇인지 냉철하게 판단하고 스스로 쇄신의 기회로 삼는 것이 결국 내게 도움 되는 길이 아닐까요.




[이학기 반장 연재]

월 : 이학기 스쿨의 월요일 진로반
화 : 이학기 스쿨의 화요일 독서반
수 : 이학기 스쿨의 수요일 작가반
목 : 이학기 스쿨의 목요일 직장반
금 : 이학기 스쿨의 금요일 고민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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