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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학기 반장 Apr 04. 2024

취업의 꿈을 이뤘지만, 퇴사를 꿈꾸는 직장인


대한민국은 ‘꿈의 나라, 신비의 세계’다. 롯데월드 이야기가 아니다. 대학생은 취업을 꿈꾸고, 직장인은 퇴사를 꿈꾸는 신기한 나라다. 직장인은 틈나면 모여 ‘꿈 퍼레이드’를 벌인다. 강 대리는 연봉과 복리후생이 좋은 신의 직장으로 이직하겠다고 한다. 박 과장은 대박 아이템 사업으로 건물주가 되겠다고 한다. 이 사원은 로또가 되어 당장 꼰대 상사 면전에 사표를 던지고 세계여행을 떠나겠다고 한다. 


짧은 커피타임이 끝나면 달콤했던 꿈에서 깨어난다. 다시 씁쓸한 현실을 자각한다. 마치 빅터 프랭클의 저서 <죽음의 수용소>에 나오는 한 장면 같다.

“수용소에 갇힌 사람들이 가장 자주 꾸는 꿈이 무엇이었다고 생각하는가? 빵과 케이크와 담배 그리고 따뜻한 물로 하는 목욕이었다 … 하지만 꿈을 꾼 사람들은 꿈에서 깬 다음 수용소 생활이라는 현실로 돌아오고, 꿈속의 환상과 현실이 엄청나게 다르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껴야만 했다.”

- 빅터프랭클, <죽음의 수용소> 중에서 -


취업포털 잡코리아에서 설문조사 결과, 직장인 10명 중 8명은 ‘회사 우울증’에 시달린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회사 우울증이란 회사 밖에서는 활기찬 상태이지만, 출근만 하면 무기력해지고 우울해지는 증상이다. 특히 과장급, 즉 30대에서 회사 우울증을 가장 많이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30대 직장인이 퇴사를 꿈꾸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 정도다.


영화 <잠깐만 회사 좀 관두고 올게> 중에서


2017년 10월, 공감대와 입소문으로 개봉 8일 만에 3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잠깐만 회사 좀 관두고 올게>를 뒤늦게 보았다. 제목부터 미생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이 영화는 일본에서 70만 부 판매 기록을 세운 키타카와 에미의 동명 원작소설을 각색해 만들었다. 처음엔 상황을 너무 과도하게 설정한 게 아닌가 싶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깊이 공감하며 나도 모르게 영화에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매일 13~14시간씩 일했던 나를 떠올리며.


매달 150시간이 넘는 초과근무를 하지만, 야근수당조차 받지 못하는 영업사원 다카시. 실수투성이인 그는 악마 같은 부장에게 매일같이 폭언, 폭행에 시달린다. 그는 번아웃, 무기력, 우울증 3종 세트를 다 겪으며 두 번이나 자살하려 하지만, 그때마다 친구 야마모토가 나타나 구해준다. 초긍정의 아이콘 야마모토의 영향으로 다카시는 점점 미소를 되찾고 인생의 참 의미를 깨닫는다. 마침내 그는 야마모토에게 “잠깐만 회사 좀 관두고 올게”라는 말을 하고 곧장 부장에게 찾아가 멋지게 사표를 던진다.



다카시: “오늘부로 회사 그만두겠습니다.”
부장: “이 자식이. 아침 댓바람부터 헛소리 지껄이고 앉았네. 이래서 요즘 젊은것들은 글러 먹었단 거야! 일은 더럽게 못 하면서 자존심만 높아서 근성이라곤 없지. 안 그래? 사회가 뭔지 알기나 해? 이 정도도 못 버티는 놈은 어디 가서 뭘 하든 사람 구실 못해! 평생 실패만 하다 패배자로 인생 종 치겠지!”

다카시: “제 인생은 저와 절 지켜봐 주는 사람들을 위해 존재합니다.”
부장: “뭐? 결국 다 팽개치고 도망가는 거잖아! 어디서 건방지게! 물러터진 자식이! 너 같은 놈이 다음 직장을 그리 쉽게 찾을 것 같아? 착각도 정도껏 해!”

다카시: “쉽게 찾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전 이 회사 입사를 너무 쉽게 결정했습니다. 취직을 빨리하고 싶어서 안달 난 나머지 제가 진짜 하고 싶은 게 뭔지도 모르는 채 이 회사에 입사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까지 고생하게 만들었습니다. 죄송합니다.”
부장: “죄송합니다 좋아하네. 네가 뭔데 맘대로 지껄여? 회사 규정상 사직서는 한 달 전에 내야 해! 그것도 모르고 까불어? 그래도 관두겠다면 징계해고로 처리할 수밖에.”

다카시: “그래도 상관없습니다. 저는 사흘 전까지 이 회사 옥상에서 뛰어내릴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저조차도 내일부터의 인생을 바꿀 수 있다는 걸 일깨워준 소중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아직 제가 뭘 하고 싶은지 뭘 할 수 있는지 잘 모릅니다. 하지만 이제부턴 언제나 푸른 하늘을 보고 웃으며 저 자신을 속이지 않고 살아가고 싶습니다.”
부장: “이 자식이 누구 놀리나. 치약 광고라도 찍냐? 어디서 쪼개고 있어? 언제나 푸른 하늘을 보고 웃으며 살고 싶어? 그러면 밥이 나오는 줄 알아?”

다카시: “부장님. 마지막으로 부탁이 있습니다. 이 회사에는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사람들을 인정해 주세요. 부탁드립니다. 부탁드립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부장: “까불지 마.”

다카시: “가능하다면 부장님도 잠시 쉬세요.”
부장: “닥쳐!”

- 나루시마 이즈루 감독, 영화 <잠깐만 회사 좀 관두고 올게> 중에서 -



얼마나 아름다운 퇴사인가. 그는 많은 상처를 받았지만, 얼굴 붉히고 이를 갈며 회사를 떠나지 않았다. 나는 큰 울림이 있었던 이 장면을 잊고 싶지 않아 대사를 따로 적어놓았다. 퇴사를 원한다면 허황된 로또 당첨을 꿈꾸기보다 다카시처럼 떠나는 자의 아름다운 뒷모습을 꿈꾸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친구 한 명은 오늘도 카톡으로 “경제 민주화, 정치 민주화에 앞서 직장 민주화부터 이루어져야 한다”라며 “당장 퇴사하고 싶은데 현실이 막막하다”라고 직장 생활의 고충을 토해냈다. 사실 흙수저에게 퇴사는 배부른 소리일 수도 있다. 많은 직장인은 대출과 카드빚을 비롯한 저마다 처한 환경 때문에 ‘존버 정신’으로 직장을 다니기도 한다. 나 역시 월급의 노예로 살아왔음을 부정할 수 없다.


버티는 것만으로도 벅찬 회사 생활 속에서 이직, 사업 등을 준비한다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겨우 ‘취준생(취업 준비생)’에서 벗어났는데 다시 ‘퇴준생(퇴사를 준비하는 직장인)’이 되려면 그만큼 절박한 선택과 위험한 용기가 필요하다. 절망의 끝에서 다시 일어선 다카시처럼 말이다.





만나면 이직, 사업 등 퇴사 이야기를 나누는 직장인들. 특히 회사 우울증을 가장 많이 겪고 있는 30대 직장인은 존버의 길과 퇴사의 길 사이에서 계속 흔들린다. 퇴준생이 ‘존버생(오래 참고 끝까지 버티는 직장인)’보다 당당하거나 용기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퇴준생이 존버생보다 무모하고 철없다고 말할 수도 없다. 퇴준생에겐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는 법이고 존버생에겐 버티는 게 곧 이기는 법이니까.


중요한 것은 어떤 길을 가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길을 가느냐다. ‘직장 안은 전쟁터, 직장 밖은 지옥’이라는 말이 있지만, 늘 남과 비교하며 불평 가득한 이에겐 직장 안팎이 모두 지옥이 될 것이다. 반면에 나 자신의 성장에 초점 맞추며 어제보다 나은 오늘을 걷고자 하는 이에겐 직장 안팎이 모두 무대가 될 것이다. 퇴준생이든 존버생이든 모든 직장인의 어제보다 나은 오늘을 위하여! 아자!




※ 이학기 반장의 저서 <서른 넘어 찾아온 다섯 가지 기회> 중에서 일부 내용을 재구성한 글입니다.


[이학기 반장 연재]

월 : 이학기 스쿨의 월요일 진로반
화 : 이학기 스쿨의 화요일 독서반
수 : 이학기 스쿨의 수요일 작가반
목 : 이학기 스쿨의 목요일 직장반
금 : 이학기 스쿨의 금요일 고민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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