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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학기 반장 May 22. 2024

책 쓰기 13. 글은 인간의 영역, 편집은 신의 영역

지난주 미션은 없었다. 어차피 이렇게 알려줘도 안 할 거라는 거 알지만, 혹시나 했다.


'책 쓰기 7. 대면 면접 전에 서류 면접 통과가 우선'(https://brunch.co.kr/@cpotss2023/286)에서 "'에세이 <서른의 삶이 서른의 나에게 묻다, 2019> 자가출판(POD)'과 관련된 이야기는 13단계에서 자세히 다루겠다."라고 했던 말 기억하는가? (여러분은 잊을지라도 나는 잊지 않았다.)


2018년 나는 호기롭게 처음으로 쓰기에 도전했고 수백 군데 출판사에 투고했지만, 결국 정식 출간에 실패한 상태였다. 그리고 이직 후 출퇴근에 4시간을 쏟고 있었다. 그 시간을 어떻게 잘 활용할까 고민하다가 문득 노트북 안에 잠들어 있는 원고가 생각났다.


평범한 30대 직장인이 평범한 30대 직장인들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를 담은 원고였기에 어떤 형태로든 그 내용을 나누는 데 의미가 있었다. 물론 정식 출간으로 이어졌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았겠지만, 그건 자기만족에 그칠 수도 있었다. 나는 브런치스토리에 원고를 올리기 시작했다.


책 출간을 염두에 두고 쓴 원고라 한 번에 브런치스토리 작가가 될 수 있었다. (당시에는 '브런치'라고 불렀고 지금처럼 경쟁률이 높지는 않았던 것 같다.) 출퇴근 지하철에서 원고를 목차별로 하나씩 편집해서 올리고 해당 내용에 어울리는 무료 이미지를 찾다 보면 왕복 4시간이 짧게 느껴졌다.


30번째 글을 올리고 나니 브런치에서 알람이 왔다. POD 출간을 제안한다는 내용이었다.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몰라 브런치에서 내 책을 내주는 건가 싶어 아드레날린이 분비되었다. 자세히 알아보니 '부크크'라는 플랫폼과 연계하여 주문 후 제작하는 방식인 POD(Publish On Demand)로 책을 출간하는 것이었다.


주문이 들어오면 책을 제작하기 때문에 재고 부담도 없고 비용이 일체 들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공짜는 없는 법! 미리 제작해 놓는 방식이 아니므로 온라인 서점에서만 구매할 수 있고 제작부터 배송까지 7~10일 이상 걸린다는 단점이 있다. 무엇보다 표지 디자인, 교정교열, 편집, 마케팅 등 모든 과정을 저자가 직접해야 하므로 확실히 모든 면에 퀄리티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2019년 3월, 나는 곧 다가올 아내의 생일에 깜짝 선물을 준비하기로 했다. <서른의 삶이 서른의 나에게 묻다>라는 제목으로 아내 몰래 POD 출판을 감행했다. 그리고 아내의 생일날, 생애 최초 내 이름으로 된 책을 아내에게 선물할 수 있었다. 정식 출간이 아니더라도, 판매보다는 기념을 목적으로 책을 만들고 싶다면 POD 출판도 나쁘진 않다. 다만 약은 약사에게, 출판은 출판사에게 맡기는 게 가장 좋다는 건 안 비밀.


공포 소설의 거장 스티븐 킹은 "글쓰기는 인간의 일이고 편집은 신의 일"이라고 말했다. 출판사를 잘 만나는 것도 중요하지만, 편집자를 잘 만나는 것은 훨씬 더 중요하다. 앞서 알려준 절차대로 출판사에 원고를 투고하고 계약을 거치면 본격적인 편집 작업에 들어간다. 이때 책 전체의 콘셉트나 목차가 달라질 수도 있다. 아무래도 출판사에는 다년간 누적된 판매 데이터와 시장분석 데이터가 있으므로 책을 처음 써보는 저자라면 아무래도 출판사의 의견을 따르는 것이 좋다.


나의 경우도 <서른의 삶이 서른의 나에게 묻다>였던 원고의 제목이 투고할 때는 <서른의 고민>으로 바뀌었고 최종 출간 때는 <서른 넘어 찾아온 다섯 가지 기회>라는 제목이 되었다. 장르도 처음엔 에세이였던 것이 편집을 거쳐 자기 계발서가 되었다. 처음이다 보니 나는 출판사에 담백한 제목을 원한다고 어필했으나 출판사는 그래야 책이 팔린다고 답변했다. 내가 괜한 고집을 부렸다가 책이 안 팔리기라도 하면 어떻게 하겠는가? 출판사의 말대로 따르는 게 여러모로 속 편하다.


편집에 들어가면 교정이 진행되는데 처음 한 번 교정한 원고를 1교, 두 번째 교정한 원고를 2교라고 한다. 이렇게 1~3교를 거치면 실제 인쇄를 염두에 두고 디자인본에 원고를 편집하는데 이를 PC교라고 한다. 교정이 몇 회라고 딱히 정해진 것은 없는데 처음에 나는 이런 용어와 절차, 마감기한 등에 대한 안내를 전혀 받지 못해 헤맸었다.


혹시 계약을 하게 된다면 반드시 편집자에게 향후 프로세스와 각 타임라인 등에 사전 확인을 해놓으면 좋다. 그래야 편집자와 소통할 때 불협화음이 나지 않을 수 있다. 한 번은 내가 교정 마감이 된 줄도 모르고 추가 교정 요청을 했다가 편집자가 난감해하는 바람에(시종 친절하던 그녀에게서 처음 까칠함을 느낌) 나까지 난감했던 기억이 난다.


교정 과정에서 나는 최소 10번 이상 전체 원고를 읽은 것 같다. 이쯤 되면 책 내용 전체를 외울 것 같지만, 내 머리가 안 좋은 탓인지 생각보다 빨리 까먹는다. 교정 시 나는 원고를 처음부터 읽기도 하고 뒤에서부터 역순으로 읽기도 했다. 또 PC로도 읽고 출력하여 종이로도 읽으며 최대한 다양한 자극을 통해 더 좋은 원고가 될 수 있도록 고치고 또 고쳤다.


본문과 제목이 정해지면 표지 디자인 작업에 들어간다. 보통 5개 정도 디자인 시안을 받아봤던 것 같다. SNS를 보면 출간을 앞둔 저자가 지인들에게 표지 디자인 투표를 부탁하는 글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것도 하나의 사전 마케팅이라는 사실. 하지만 워낙 책이 안 팔리는 시대라 효과는 미미하다고 한다. 가장 좋은 것은 저자 스스로 인플루언서가 되는 것이다. 출판 마케팅 관련해서는 다음 화에 좀 더 자세히 다루겠다.


이제부턴 미션이 없다. 오직 책 쓰기에 성공하길 바랄 뿐이다. 다음 주 수요일에는 열네 번째 단계, '책은 출판사가 파는 거 아닌가? NO!'로 만나요 :)



ⓒ 이학기 반장 / 참고 도서 <작가는 처음이라>, 김태윤, 다산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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