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출판계에는 이런 말이 국룰처럼 여겨진다. "책은 저자가 파는 것이다." 무슨 소린가 싶을 거다. 책을 출간해 보면 이 말이 피부에 스밀 것이다.
처음에 나도 저자에게 인세 10%를 지급하고 나면 나머지 90%를 출판사가 다 가져가는데 책은 출판사에서 책임지고 팔아야 하는 거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이 그렇지 않다.
위에서 말한 90%는 매출이지 순이익이 아니다. 출판사에서 유통 플랫폼에 지급하는 수수료가 약 40%에 달한다. 또 인건비, 마케팅비, 물류비, 반품 및 재고 관리비 등 판관비가 쭉쭉 빠지고 나면 사실상 남는 게 없다는 말이 나올 만하다. 그러니 내 책을 출간하면 최소 초판 2~3천 부는 소진할 수 있어야 출판사도 연명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 기성 작가의 책도 초판을 다 소진하지 못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책을 읽지 않는, 정확히 말하면 책을 사지 않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시간의 효율을 따지는 '시성비'를 중시하는 사회가 되다 보니 책은 하나의 사치품처럼 여겨지게 되었다.
유튜버가 짧게 요약해 주고, 릴스나 숏츠 등 영상조차도 점점 짧아지고, AI한테 물어보면 다 알려주는 세상에서 책을 사서 읽는다는 행위 자체가 어쩌면 시대를 역행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책의 내용만으로 승부하던 시대는 이미 저물어 버린 것이다.
얼마 전 김성신 출판평론가와 정지우 작가가 '제조업을 벗어나 쇼비즈니스가 되는 출판 산업'이라는 대담을 진행했다. 결론을 짧게 요약하면(나도 요약하고 앉아있네), '책을 기반으로 한 작가의 매력 자산과 직업/사업에 연계한 신뢰 자산'이 앞으로 작가로서의 경쟁력이다. 음반사가 엔터테인먼트 회사로 몸집을 키워 살아남은 것처럼 '출판사도 작가 매니지먼트 회사로 거듭나 1차 저작권을 2차로 확대하는 one source, multi use 비즈니스'를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출판계의 두 거물이 내놓은 혜안과 통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책은 저자가 파는 것이라는 말이 조금은 실감 나는가? 작가의 정체성이 '글을 쓰는 인플루언서'로 변하면서 작가의 브랜딩이 날로 더 중요해지고 있다. 출판사에서 여러 신간을 출간했을 때 사전 마케팅을 하기 때문에 보통 2주 안에 승부가 갈린다고 한다. 즉 2주 안에 초판을 다 소진하느냐 못하느냐로 책의 수명이 결정된다는 뜻이다.
어떻게든 책 한 권만 써내면 작가의 임무를 다 했던 시절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제는 작가가 책을 직접 팔아야만 책이 팔리는 시대가 되었다. 현재 유튜브의 영향력이 가장 크다 보니 출판사 마케터도 유튜버들을 좇아 다니기 바쁘다. 몇몇 출판사는 자체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며 다양한 콘텐츠로 마케팅을 하기도 하지만, 유명 유튜버, 연예인, 인플루언서 등 뮤즈의 영향력을 따라올 수 있는 마케팅은 아마 없지 않을까?
내가 첫 책을 출간했을 때 출판사가 진행하는 마케팅에 적극 협조하고자 먼저 제안을 한 적이 있다. 나의 영향력은 미미했지만, 최대한 인맥과 내가 가진 자원을 끌어모아 다양한 마케팅을 시도하고자 했다. 출판사에 광고비 협찬까지(물론 얼마 안 되는 돈이었겠지만) 할 각오로 출판사 마케팅팀과 대면 미팅을 했다. 당시 내가 미팅 자료로 준비했던 내용을 공개한다. (일부 개인적인 정보가 담긴 부분은 블러 처리했다.)
출판사에서는 감탄하면서 이렇게까지 저자가 열심히 마케팅에 참여하려는 경우는 처음 봤다고 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출판사도 그동안 쌓아온 노하우로 판매 흐름을 보면서 비용과 에너지를 어느 신간에 쏟을 것인지 선택과 집중을 할 것이다. 당시 나는(지금도 크게 다르진 않지만) 별 영향력이 없었기 때문에 내 의지만으로 출판사를 움직일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그럼에도 무명 저자가 첫 책으로 4쇄까지 찍은 건 놀라운 성과라 할 만하다. 운이 좋았다. 두 번째, 세 번째 책은 초판도 다 소진하지 못했다. 출판사에 빚진 마음이 크다. <서른, 진짜 나를 알아가기 시작했다>, <매출 1등 MD는 이렇게 팝니다>도 많은 관심과 사랑을 부탁드리고 싶다.
출간 전후로 다양한 마케팅 전략이 있겠지만, 꾸준히 구축해 온 저자의 매력과 신뢰가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이를 위해 나는 매일 글을 한 편 이상 성실히 쓰려고 한다. 그리고 다양한 매체를 통해 소통하려고 한다. 또 쓰는 데에만 매몰되지 않고 좋은 작가의 좋은 글을 읽고 내 채널에 소개하며 추천하려 한다. 충실히 보낸 하루하루를 쌓아갈수록 나의 매력과 신뢰 자산도 점점 늘어나지 않을까.
[이학기 반장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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