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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학기 반장 May 28. 2024

광적인 변주로 사람 미치게 만드는 책

조성기, <아버지의 광시곡>


어느 날 문득 할아버지와 아버지, 나까지 3대의 화해와 연결을 위해 자전적 소설을 쓰고 싶다고 생각했다. 거미줄처럼 가느다랗게 이어져 있는 끈을 세 겹줄로 견고하게 다지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나를 위해서, 그리고 다음 세대를 위해서 말이다.    

 

김성신 출판평론가에게 이런 마음을 털어놓았다. 그는 망설임 없이 조성기 작가의 <아버지의 광시곡>을 추천해주었다. 해외로 판권을 수출하면 제목이 <Father’s rhapsody>가 되려나? <아버지의 광시곡>은 실제로 광시곡이 연주되고 점묘화가 그려지듯 아버지를 회상하는 종합 예술 작품이었다.     

 

이 책은 똥꼬에 털 날 각오로 읽기를 권한다. 작가의 광적인 변주를 따라가다 보면 분명 미친 사람처럼 울다가 웃다가 분노하다 기뻐하는 감정 조절 장애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나를 돌아버리게 했던 희로애락의 감정선을 나도 내 멋대로 '감상의 광시곡’으로 연주해보겠다.     


“기저귀 같은 팬티가 흘러내려 고추가 살짝살짝 드러나는 것도 개의치 않았다. 나는 팬티가 흘러내리든 말든 국어책만 소중하게 손에 꼭 쥐고 급사를 따라갔다.”(199쪽, 201쪽)     

크게 웃었던 장면이다. 네 살 무렵의 작가 이야기인데 나도 모르게 기침처럼 터져 나오는 웃음을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당시 고추와 맞바꾼 국어책이 어쩌면 지금의 작가를 만들어낸 복선이 아닐까 싶었다.     


“첫날 목사 설교 듣는 중에 너거 아버지가 그냥 방성대곡한기라. (중략) 그러자 목사가 설교하다 말고 찬송가를 부르자고 해서 온 교인이 찬송을 안 불렀나. 그래도 수백 명 찬송소리보다 너거 아버지 울음소리가 더 크게 들렸제.”(262쪽)     

애통했던 장면이다. 서울대 법대에 간 맏아들은 종교에 빠져버렸고, 자신은 용공분자로 낙인되어 폐물이 되어버렸고, 전 재산은 큰집 때문에 다 날려버린 아버지. 그의 울음소리는 관악기 중에 가장 웅장하고 깊은 소리를 낸다는 튜바의 울림 같지 않았을까.     





“나중에 내 심리를 분석하여 알게 된 사실이지만 지도자에게서 내가 원하는 아버지, 술에 취하지 않는 아버지를 찾고 있었다.”(108쪽)     

나 역시 사회에서 만난 권위자들에게 분노하며 살았다. 심리 상담 결과, 그 원인이 가정에서 처음 만나는 권위인 아버지에게서 충족되지 않은 결핍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늘 롤모델을 찾아 헤맸다. 그러나 사람은 누구나 한계가 있다. 완벽한 롤모델은 예수님뿐이다.     


“저를 살려달라고 기도하지는 않겠습니다. 당신 뜻에 맡기오니 뜻대로 하십시오. 흐으흑.”(251쪽)   

작가가 아버지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함께 기도했던 장면이다. 이런 기도를 들으면 하나님은 어떤 기분일까? 믿음 없이 평생을 방황했던 아버지가 죽음을 앞두고 이런 기도를 하다니. 마치 십자가를 앞둔 예수님의 기도를 떠올리게 한다. 하나님과 작가, 아버지 모두에게 깊은 기쁨이 충만했을 것이다.  


<아버지의 광시곡>을 통해 당신이 느꼈던, 느끼게 될 희로애락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내가 소개한 감상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미친 듯이 변주되는 광시곡의 세계로 한번 빠져보시라.     


영조와 사도세자 같았던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지켜보면서 어쩌면 나는 정조의 마음을 품어왔는지도 모른다. 조성기 작가의 상상력으로 조선 왕실 최대의 비극을 재현해낸 <사도의 8일>도 간절히 읽고 싶어졌다.




[이학기 반장 연재]

월 : 이학기 스쿨의 월요일 진로반
화 : 이학기 스쿨의 화요일 독서반
수 : 이학기 스쿨의 수요일 작가반
목 : 이학기 스쿨의 목요일 직장반
금 : 이학기 스쿨의 금요일 고민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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