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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학기 반장 Jun 04. 2024

츤데레의 표상인 남자

찰스 디킨스, <두 도시 이야기>


언제부턴가 ‘츤데레’라는 표현은 일상에서는 물론 방송이나 기사 등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츤데레란 ‘쌀쌀맞고 인정이 없어 보이나, 실제로는 따뜻하고 다정한 사람을 이르는 말’을 뜻한다. 찰스 디킨스의 소설 <두 도시 이야기>에서도 강력한 츤데레가 등장한다. 

카턴은 변호사다. 그는 소설에 처음 등장할 때 무례하고 시니컬한 태도를 보인다. 게다가 부주의하고 방탕해 보이는 차림새는 그를 더 괴팍한 인물로 여기게 만든다. 하지만 그는 증인 루시가 쓰러지는 모습을 가장 먼저 포착할 정도로 세심한 면이 있고, 피고인 다네이가 무죄 판결을 받도록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그는 비운의 천재인가? 

 놀라운 건 추남인 줄 알았던 카턴이 가발을 벗으면 미남인 다네이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닮았다는 사실이다. 이야기를 위해 다 필요한 설정이긴 하지만, 어딘가 좀 과한 느낌이다. 승소한 카턴은 다네이를 끌고 술집으로 간다. 그러나 축배는 이내 독배가 되어 버린다. 카턴의 질투심 때문이었다.  

그는 특유의 섬세함으로 다네이를 바라보는 루시의 눈빛에서 심상치 않은 기운을 읽어냈을 것이다. 유리잔을 던져 박살 낸 카턴을 향해 다네이는 “서로 피 보지 않고 이쯤에서 헤어지”며 자리를 파한다. 결국 루시는 다네이와 결혼하고 카턴의 사랑은 추락하는 듯했다. 

루시가 아이도 낳고 다네이와 함께 단란하게 지내던 어느 날이었다. 다네이 가문의 만행이 드러나면서 다네이는 또다시 재판에 넘겨진다. 그리고 사형이 선고된다. 졸도한 루시를 보며 카턴은 한 번 더 천재적인 머리를 굴린다.  

“이 땅 위 모든 사람 중 내가 올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 했겠죠?”라며 다네이는 물론 독자들까지 우롱하는 듯한 말투로 카턴은 감옥에 등장한다. 다네이를 구하기 위해 문지기를 매수한 것이었다. 다네이와 서로 옷을 바꿔입은 카턴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다. 그의 사랑은 한 여인을 넘어 인류를 향한 아가페로 승화된다. 

“최고의 시간이면서 최악의 시간이었다.” <두 도시 이야기>의 첫 문장에서도 알 수 있듯이 찰스 디킨스는 대조법의 대가라는 생각이 들었다.(작위적인 요소가 있긴 하지만) 그는 대조법으로 파리와 런던, 귀족과 민중, 지혜와 어리석음, 빛과 어둠, 희망과 절망, 천국과 지옥을 그려낸다. 대조의 화신 카턴의 죽음으로 완성된 사랑이 이 모든 것을 대변하는 게 아닐까. 

츤데레도 이런 츤데레가 없다. 찰스 디킨스는 <두 도시 이야기>를 통해 18세기 말 프랑스 혁명을 배경으로 인간 내면에 가득한 광기와 잔혹성을 “언제나 증오보다 강할 수밖에 없는 사랑의 강인한 끈기로” 맞서자고 외치는 듯싶다. 동전의 양면처럼 존재하는 증오와 사랑이 어느 쪽으로 기우느냐에 따라 최고의 시간이 최악이 될 수도, 최악의 시간이 최고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학기 반장 연재]

월 : 이학기 스쿨의 월요일 진로반
화 : 이학기 스쿨의 화요일 독서반
수 : 이학기 스쿨의 수요일 작가반
목 : 이학기 스쿨의 목요일 직장반
금 : 이학기 스쿨의 금요일 고민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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