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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학기 반장 Jun 25. 2024

극과 극을 연결하는 지혜가 혁신을 이룬다

정재승, <열두 박자국>


인생은 질문으로 가득하다. 똑딱! 초침이 움직이는 사이, 현재는 과거로 흘러간다. 그와 동시에 한 번도 살아보지 않은 미래의 시간이 현재로 다가온다. 미지의 시간이 끊임없이 다가오는 현실 속에서 우리는 불안해진다.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나는 지난 14년 간 온/오프라인 커머스 MD로 직장 생활을 했다. 난감한 상황들의 연속, 그것을 돌파해내야만 했다. 예를 들면, 회사 자금 사정이 어려워져서 협력 업체에게 대금 지급이 지연된 적이 있었다. 언제 정확히 얼마를 지급할 수 있을지 확답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오히려 협력 업체로부터 투자 비용을 받아내라는 미션을 받았다.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미지의 상황이 나를 또 불안하게 만든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것은 수많은 사례 중 하나에 불과하다. 나 스스로도 납득이 안 되는 상황을 어떻게 남에게 이해시킬 수 있을까? 가뜩이나 안 좋은 머리를 이리 굴려보고, 저리 굴려봐도 돌 굴러가는 소리만 날 뿐이다. 고뇌와 씨름하다 시름시름 앓는 내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리더는 의외로 간단명료한 솔루션(?)을 제시한다. “지혜롭게 하면 된다.”


겁나게 얄미울 정도로 지혜로운 말이다. 그렇다. 세상에 지혜롭게 하면 안 될 일이 뭐가 있겠는가? 하지만 지혜롭게 하라고 말한 사람 조차도 모르는 답을 찾아 헤매는 현실이 참 야속하다. 솔로몬의 지혜가 내게도 있었으면 좋겠다. 항상 샘솟는 창의적인 생각으로 언제든 난감한 상황들을 돌파해 갈 수 있을 테니까.


뇌 과학자 정재승 교수는 저서 <열두 발자국>에서 ‘혁신을 하려면 지혜로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모순되는 두 상황 속에서 매우 섬세하게 실천에 옮겨야 혁신에 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혁신을 이루기 위해 실행력은 매우 중요하지만, 섣불리 시도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 또한 맞습니다. 퍼스트 펭귄이 되어야 하지만, 쉽게 바닷속으로 뛰어들어서도 안 된다는 주장 또한 사실입니다. 위험을 감수해야 하지만, 위험을 잘 관리하는 태도가 필요한 것도 옳습니다. 일견 상반되는 듯 보이는 두 가지 생각 사이에서 현명하게 의사결정을 하는 놀라운 능력을 가진 자들에게 혁신은 찾아옵니다. 시대에 순응하지 않는 자들은 과감하되 무모하지 않으며,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되 실패하지 않기 위한 준비에 철저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정재승, <열두 발자국>, 어크로스, 349쪽


정재승 교수의 주장을 가만히 살펴보면 혁신을 이루는 지혜는 ‘현실과 이상 사이의 균형 감각’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는 보통 혁신가란 이상을 좇아 현실의 두려움을 극복한 타고난 인물이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혁신가는 뛰어난 두뇌로 언제나 신속 정확한 판단을 내리고 리스크를 기꺼이 감수하는 과감한 행동파라 규정한다. 현실주의자보다는 이상주의자에 가까운 모습이다.


그러나 정재승 교수는 다양한 사례를 통해 혁신가는 한쪽에만 치우친 극단주의자가 아님을 밝힌다. 오히려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균형 감각을 가진 중도주의자에 가깝다.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친 혁신가인 예수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마태복음 10:16)


어떻게 사람이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할 수 있을까? 유명한 솔로몬의 재판이 떠오른다. 두 여인이 서로 한 아기의 소유권을 주장하자 솔로몬은 ‘저 아기를 칼로 반반씩 나누라!’고 명한다. 이에 한 여인은 자기가 포기할 테니 아기를 죽이지 말아 달라고 간청하고 다른 여인은 얼른 아이를 나누자고 한다. 누가 친모인지 명백히 드러나는 순간이다. ‘시기심’에서 비롯된 뱀 같은 간교함 속에서 ‘사랑과 생명’이라는 순결한 가치를 지켜낸 것은 바로 '창의적인 지혜'였다. 


지혜는 두 가지 상반되는 상황 속에서 균형 감각을 유지할 때 생겨난다. 극과 극을 연결하는 지혜는 창의성의 화수분이 된다. 이때 세상을 놀라게 하는 혁신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여러 영역에서 상당한 민주화를 이루었다. (오히려 요즘 후퇴하고 있어 걱정이다.) 그런데 유독 낙후되어 있는 영역이 기업 민주화다. 고객 중심이라는 미명 하에 협력 업체와 직원의 고혈을 착취하여 자신의 배를 불리는 기업 문화가 만연해 있다.


시대착오적인 기업 문화를 혁신하려는 스타트업들이 생겨나고 있어 고무적이다.  우리는 혁신을 간절히 원한다. 세상이 좀 더 평화롭고 사랑이 넘치며 인간적이길 소망한다. 현실에 발을 담근 이상주의자들에 의해 세상은 변할 것이다. 혁신가라 불리는 이들은 양극단의 생각을 조정하고 조율하며 통합할 것이다.


점들이 모여 선이 되고 선들이 모여 면이 되며 면들이 모여 세상을 이룬다. 우리도 지금 내 안에 있는 이중성, 양극단의 생각을 연결해보자. 그렇게 지속적으로 도전하다 보면 내 안의 작은 혁신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하나의 점이 될지 또 누가 알겠는가.



[이학기 반장 연재]

월 : 이학기 스쿨의 월요일 진로반
화 : 이학기 스쿨의 화요일 독서반
수 : 이학기 스쿨의 수요일 작가반(끝)
목 : 이학기 스쿨의 목요일 직장반
금 : 이학기 스쿨의 금요일 고민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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