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학기 반장 Jul 02. 2024

아버지, 고생 많으셨어요

필립 로스, <에브리맨>

  

얼마 전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를 보았다. 2023년 칸 영화제 심사위원대상 수상작이다. 이 영화는 ‘유대인 대학살’을 철저히 외부의 관조적인 시점으로 묘사하면서 소리를 통해 상상력을 극대화한다. 그런데 거의 모든 장면과 음향이 소름 끼치도록 불편하다. 인간의 죄악에 단 한 톨의 이해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감독의 의지가 담겨있다. 몰입을 방해하기 위한 의도적 장치인 것이다.      


소설 <에브리맨>은 <존 오브 인터레스트>의 대척점에 서 있다. ‘노년의 대학살’을 내부 깊숙이 침투하여 속속들이 고발한다. 소설에 나오는 스텐트 삽입술, 관상동맥 우회술, 심장 제세동기 삽입술은 모두 아버지가 최근 10년간 경험한 수술이다. 로보트 태권V 머릿속에 탑승하는 훈이처럼 나는 <에브리맨>을 타고 아버지의 머릿속으로 들어가는 느낌을 받았다. 그 안에서 나는 보석을 관찰하는 렌즈인 루페를 눈에 끼고 아버지의 세포 하나하나에 각인된 감정의 파편들을 들여다보았다.      



“이 사악한 새끼들! 삐치기만 잘하는 씨발놈들! 할 줄 아는 게 비난밖에 없는 이 조그만 똥 덩어리들! 내가 달랐고, 일을 다르게 처리했다면 모든 게 달라졌을까? 그는 자문해보았다. 지금보다 덜 쓸쓸할까? 물론 그렇겠지! 하지만 이게 내가 한 짓이야! 나는 일흔하나야. 나는 이런 인간이 된 거야. 이게 내가 여기 오기까지 한 일이고, 더 할 말은 없어!”

- 필립 로스, <에브리맨>, 문학동네, 102쪽



심근 경색, 당뇨, 전립선암 등 48년생인 아버지의 몸은 현재 종합 병동이다. 젊은 시절 럭비 선수로서 적토마 같았던 아버지에겐 무서울 것이 없었다. 그는 어린 시절의 상처를 성인이 되어서도 타인에게 전가하는 삶을 살았다. 무법자인 그가 무서웠다. 그러나 지금은 늙은 노새가 되어 하루하루를 버텨낼 뿐이다. 예전의 그는 이미 죽었다. 그는 날마다 자신을 탓하다 타인을 욕하다 다시 자책에 빠지는 소용돌이 속에 살고 있다.  




    

<에브리맨>의 주인공인 ‘그’는 말년에 부모가 묻혀있는 묘지를 찾는다. 그는 “뼈는 유일한 위로”라며 오직 묘지에서만 만족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장면을 보며 죽음을 앞둔 자에게 가장 큰 위로는 삶이 아닌 죽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노년의 대학살을 겪고 있는 자에겐 어설픈 희망 고문으로 삶을 부추길 것이 아니라 보통의 죽음을 평범하게 직시하도록 하는 것이 진정한 위로가 아닐까 생각했다. 나는 “인생이 서글프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는 아버지에게 <에브리맨>을 선물했다.      


‘에브리맨’이란 보통 사람, 평범한 사람을 뜻한다. <에브리맨>은 평범해서 특별하고 진부해서 소름 돋는다. 죽음 앞에 한없이 작아지고 초라해지는 모든 인간의 운명을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에브리맨>은 신앙 서적도 아니고 주인공도 무신론자이지만,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보통 사람의 삶과 죽음을 통해 죄의 비참함을 선연히 드러낸다. 이는 구원의 필요성을 반증한다. 성경의 에스더서에는 하나님의 이름이 등장하지 않지만, 깊고 풍성한 하나님의 은혜가 담겨있듯이 말이다.      


나는 아버지를 생각할 때면 항상 여러 감정이 뒤섞여 밀려왔다. 랜디와 로니처럼 아버지를 증오했고, <존 오브 인터레스트>처럼 절대로 아버지가 지은 죄에 면죄부를 주지 않겠다고 다짐하기도 했다. 동시에 낸시처럼 아버지를 사랑했고, <에브리맨>처럼 아버지의 인생에 몰입해보려 애쓰기도 했다. 하지만 아버지를 통해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란 별로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지금 살아가는 것일까, 죽어가는 것일까?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싸울 수도 없었다. 그냥 받아들이고 견뎌야 했다. 그 일이 계속되는 동안 그냥 자신을 내주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75~76쪽)      



인간은 본디 모순덩어리다.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인간이 불멸의 다이아몬드 반지를 끼고 웃는다. 인간은 살아갈 때 죽고 싶고 죽어갈  살고 싶은 역설에 갇힌 서글픈 존재일지도 모른다. 이 생에서 다이아몬드를 좇아온 아버지가 이제는 영원한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기를 기도한다. 인간 존재에 대한 처절한 실망과 좌절이 절대자를 향한 충만한 감격과 기쁨으로 승화되리라 믿는다. 아버지, 고생 많으셨어요.




[이학기 반장 연재]

월 : 이학기 스쿨의 월요일 진로반
화 : 이학기 스쿨의 화요일 독서반
수 : 이학기 스쿨의 수요일 작가반(끝)
목 : 이학기 스쿨의 목요일 직장반
금 : 이학기 스쿨의 금요일 고민반
이전 19화 극과 극을 연결하는 지혜가 혁신을 이룬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