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6개월의 육아휴직이 끝나고 복직일이 다가왔다. 물리적으로 (사탄의) 인형 같은 그녀(상사)와 떨어져 지낸 것이 약이 되었다. 휴직 전에 받았던 10회의 심리 상담이 도화선이 되어 휴직 중에도 나 자신을 탐구하기 위해 진로와소명연구소 정은진 소장이 진행하는 <아직도 가야 할 길>, <어떻게 진짜 어른이 되는가> 독서모임에 참여했었다.
"어떤 차원으로든 앞으로 나아가거나 성장하면 기쁨과 함께 고통이라는 대가를 치를 것이다. 충만한 삶은 고통으로 충만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삶을 충만하게 살든지 아니면 완전히 포기하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을 뿐이다."
- M. 스캇 펙, <아직도 가야 할 길>, 율리시즈, 190-191쪽
<아직도 가야 할 길>을 통해 나는 피할 수 없다면 가장 의미 있는 고통을 선택하고 돌파해야겠다고 느꼈다. 고통스럽더라도 성장을 통해 삶의 충만함을 확보하고 싶었다. 또한 <어떻게 진짜 어른이 되는가>에서는 '애도'의 효용을 배웠다.
"방치된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는 그렇게 성인기의 짜증 나는 드라마로 다시 태어난다. '완벽한 파트너'에 대한 우리의 환상, 바꾸지도 벗어나지도 못하는 관계에 대한 절망, 혹은 관계에서 계속해서 드러나는 갈등은 우리의 충족되지 못한 근본적인 상처와 욕구를 드러낸다. 우리는 우리가 놓쳐버린 것들을 타인으로부터 얻기 위해 애를 쓰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한번 놓친 것은 결코 만회할 수 없으며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애도하며 놓아 보내는 것뿐이다. 그렇게 해야만 우리는 어른 대 어른으로 관계를 맺을 수 있게 된다."
- 데이비드 리코, <어떻게 진짜 어른이 되는가>, 자음과모음, 37쪽
나는 가정에서 충족되지 않은 '권위 있는 자'의 이상적인 모습을 사회에서 만난 권위 있는 자에게 내 멋대로 기대하고 구걸하고 있었다. 아버지에 대한 결핍이 상사를 향한 분노로 치환된 것이었다. 내가 차선책으로 롤모델을 삼은 대상은 엄마였다. 그러나 완벽해 보였던 엄마 역시 트라우마를 지닌 한 연약한 인간에 지나지 않았다.
교회에서는 장로님과 1:1로 <용기 있는 기독교>, <믿음의 본질> 독서모임을 하며 다시 한번 크리스천으로서의 정체성을 다질 수 있었다. 결론이 났다. 모든 문제의 근원은 바로 나의 '불안'이었다. 내가 독립적으로 건강하게 서 있으면 그 누가 와서 뭐라 하든 내게 깊은 상처를 남길 수 있겠는가?
인생에서 꼭 한 번은 돌파해야 할 문제를 향해 나는 똑바로 나아갔다. 번지점프를 앞둔 것처럼 도망칠까 말까 갈등이 끊이지 않았지만, 결국 나는 복직했고 인형 같은 그녀와 다시 일을 시작했다.
당시 내가 속한 신규 사업팀은 중요한 기로에 놓여있었다. 이미 2번이나 회사에서 말아먹은 경험이 있는 패션 비즈니스였기에 이번에는 실패할 수 없었다. 인형 같은 그녀도 예민해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고 위에서 내려오는 압박이 상당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그 스트레스를 팀원에게 전가하는 것은 리더의 인품에 달린 문제이겠지만, 보통의 인간이라면 너무나 당연한 행동이다. 인간은 불완전하고 이기적이며 본질적으로 아이러니하니까. 회사에서는 보통 아래에서 욕먹는 리더를 위에서는 좋아하는 법이다.
만취 상태로 범죄를 저지른 자에게 그저 심신 미약으로 면죄부를 줄 수 없듯이 인간이 행하는 악을 그저 연약한 인간 본성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인간에게 완벽함을 기대하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는 짓거리다. 우상을 섬기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인간에게 깊이 실망할수록 하나님을 굳게 의지할 수 있다. 인간은 누군가의 완벽한 롤모델이 될 수 없다. 나 자신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인간에게는 절대자가 필요하다.
나는 인형 같은 그녀를 내 기대치에 억지로 구겨 넣으려 했던 짓을 그만두었다. 그녀는 원래 그런 인간이기에 틀림 보다는 다름으로 그 존재를 인정하려고 노력했다. 어차피 나도 그녀도 고칠 수 없고 고쳐지지도 않는 인간이니까.
자기 객관화의 시간을 가지며 그동안 나는 상사를 이겨먹기 위해 일해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 능력을 보여주리라! 코를 납작하게 해 주리라! 이를 갈며 그녀 앞에 나를 증명하기 위해 발버둥 쳤던 것이었다. 그러나 복직 후에는 '공헌'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했다.
예전엔 내가 하는 일에서 그녀가 전부였다면, 이제는 내가 일의 주인공이었고 그녀는 조연이었다. 진정으로 팀의 성공을 바라며 내가 기여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주도적으로 일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전혀 달라지지 않았지만, 각성한 나에게 더 이상 작은 흠조차 남길 수 없었다.
복직 후 3개월쯤 지났을까. 언제나 그녀의 공포 정치가 극대화되는 회의 시간이었다. 한창 회의가 무르익었을 때 뜬금없이 그녀가 나를 지목했다.
여러분, 모두 마틴님(당시 내 닉네임)처럼 일하세요. 자기 목표는 이미 달성했는데도 팀을 위해서 더 초과해서 열심히 하잖아요.
순간 나를 포함한 모든 동료의 눈이 동그레졌다. 회의 시간에 단 한 번도 칭찬이라는 걸 해본 적이 없는 그녀였다. 그런데 가장 많이 혼냈던 나를 처음으로 공개석상에서 추켜세운 것이었다. 하나님은 정말로 '역전의 하나님'이구나!
회식 때 술에 취한 그녀가 나를 조용히 불러 말했다. "마틴님이 처음 합격했을 때도 나한테 감사 메일을 보냈고 스승의 날에도 보냈잖아요. 지금처럼만 열심히 해주면 좋겠어요." 처음 메일을 보냈을 때도, 스승의 날에도 답장이 없던 그녀였다. 그런데 다 읽었고 기억하고 있었구나.
M. 스캇 펙은 "문제란 사라지지 않는다. 문제는 부딪쳐서 해결하지 않으면 그대로 남아 있어서 영혼의 성장과 발전에 영원히 장애가 된다."라고 말했다. 나는 그녀와 상상도 못 했던 화해와 회복을 경험했다. 문제는 눈과 같아서 피하면 눈덩이처럼 불어나지만, 끌어안으면 눈처럼 사르르 녹는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를 죽도록 아프게 했던 그녀 덕분에 나는 다시 살아났다. 나의 근원적인 문제를 인식하자 치유가 일어났고 일의 본질에 집중하자 더 좋은 성과를 내게 되었다. 사람도 삶도 아이러니할 뿐이다.
[이학기 반장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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