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트에 간 아내, “여기가 천국이네!”

마트 체험

독일에서 새나라의 어린이가 된 부부

우리 부부는 독일 시계로 오전 6시, 한국 시계로는 오후 1시에 독일에서 첫 아침을 맞이했다. 하루 만에 시차 적응, 이거 실화냐? 우리 부부의 시차 적응 꿀팁은 ‘안 잘 때도 자고, 잘 때도 자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현지 시간에 맞게 생체 리듬을 맞출 수 있다. 우리 부부가 그냥 잠이 많다는 사실은 안 비밀. 꿀팁 따윈 없다.


독일에서 졸지에 새나라의 어린이가 된 우리 부부는 “역시 우린 유럽 스타일이야!”라고 외치며 퀭한 눈으로 한국에서 안 하던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집 떠나면 철든다더니 평소 잘 보지도 않던 성경을 펼쳤다. 교회에서 만나 결혼한 우리 부부는 매일 성경 말씀을 읽고 느낀 점을 이야기하며 서로를 위해 기도하는 이상적인 결혼 생활을 꿈꿨었다. 저 하늘의 별도 딸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손으로 잡기에 별은 너무 높고 멀리 있었다.


‘제2의 신혼여행’이라는 설렘과 낯선 타지가 주는 두려움이 뒤섞인 떨림으로 우리 부부는 초심으로 돌아갔다. 직장인으로서 한 달이라는 시간을 독일에서 보낼 수 있는 것도 꿈만 같은데 아내와 이렇게 경건한 아침을 보내고 있다니…. 게다가 예상치 못한 아내의 고백에 울림이 있었다.


"악한 일을 저지르는 사람은, 누구나 빛을 미워하며, 빛으로 나아오지 않는다. 그것은 자기 행위가 드러날까 보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요한복음 3장 20절, 새번역)


“이 말씀을 읽으면서 마치 나 자신을 보는 것 같았어요. 나는 결혼하고 그동안 오빠한테 완벽한 아내의 모습만 보여주고 싶었어요. 스스로에게 솔직하지 못했고 잘못된 모습을 감추려고만 했어요. 그런데 이런 모습이 악한 일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완벽하지 않은 나를 인정하고 솔직하게 드러내야 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퀭한 눈으로 멍하니 아내를 바라보았다. 나는 “결혼하고 연애하자”라고 아내를 꼬셔서 정식으로 교제한 지 4개월 만에 결혼했다. 결혼한 지 1년 만에 독일에서 아내의 솔직한 고백을 처음 들었다. ‘독일에서 한 달 살기’는 우리 부부가 결혼 1주년을 돌아보며 더욱 견고 해지는 시간을 갖기 위한 여행이었는데 첫날부터 마음을 활짝 열어준 아내에게 고마웠다.


유럽 스타일의 아침을 즐겨보기로 했다. 호스트가 마련해준 모닝 빵과 시리얼을 먹고 모닝 조깅을 하기 위해 나섰다. 원래는 헤드폰을 끼고 모닝 조깅을 하는 그림을 그렸지만, 생각보다 아침 기온이 많이 쌀쌀했다. 우리 부부는 커플 패딩으로 무장하고 천천히 걷기로 했다. 따뜻했다면 과연 뛰었을까? 운동은 역시 숨쉬기 운동이 최고다.


고요한 전원주택 마을의 정취를 느끼며 한 집 한 집 구경하며 지나갔다. 카페에 앉아 비슷한 듯 다르게 생긴 사람들을 구경하는 재미가 있듯 집들의 모습도 저마다 매력이 있어 산책 길이 즐거웠다. 특히 국기 게양대에 독일 국기가 걸려있던 집이 인상적이었다.

“여보, 우리도 나중에 전원주택 살게 되면 마당에 태극기 게양할까?”
“태극기까지는 오버인 것 같지만, 진짜 전원주택에 살아보고 싶네요.”

마침 드넓은 잔디밭을 배경으로 큰 개 두 마리와 산책하는 독일인과 마주쳤다. 기분 탓이겠지만 같은 개라도 독일 개는 뭔가 품위 있어 보였다. 어린 시절, “나는 나중에 크면 마당 있는 집에서 큰 개 여섯 마리를 키우며 살 거야”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어릴 적 꿈을 회상할 정도로 독일에서 맞이한 첫 아침은 평온했다.



힐링의 공간, REWE

평일 아침의 여유를 만끽하고 숙소로 돌아오자 목사님에게 연락이 왔다. 당장 필요한 물품들이 있을 테니 함께 마트에 가자고 했다. ‘REWE’라 쓰고 ‘레베’라 읽는 독일의 대표 마트를 방문했다. 한국의 대표 마트인 둘마트, 홈더하기의 식품코너 같은 곳이었다. 독일의 물가는 어떨지 몹시 궁금했다. 목사님과 동행한 사모님이 우리 부부를 위해 마트 안내 도우미를 자처했다.


먼저 과일이 눈에 들어왔다. 키위 한 개 가격이 한화로 약 100원, 사과 5kg 약 4,900원, 복숭아 5개 약 1,900원 정도 였다. 이 가격 실화냐? 또 놀란 것은 다양한 사과의 종류였다. 보행자 신호등 같이 사과는 빨간색과 초록색 2종류만 있는 줄 알았는데 적어도 5종류 이상의 사과가 진열되어 있었다. 사모님은 식감과 맛이 다 조금씩 다르다며 우리 입맛에 맞게 사과를 추천해주었다.


다음은 야채 코너. 파프리카 4개 한화로 약 1,900원, 손질된 파 약 800원, 오이와 콜라비가 각 1개에 약 500원 정도 했다. 성인 주먹 반 만한 크기의 감자 20개가 들어있는 한 봉지 가격은 약 3,800원이었다. 언빌리버블!


놀라긴 일렀다. 대망의 맥주 코너에 도착하니 마치 “이곳이 독일이다. 드루와 드루와!”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일단 종류에 한 번, 가격에 또 한 번 놀랐다. 맥주 한 병에 한화로 약 700원짜리도 있었다. 석회질 함량이 높은 물 대신에 맥주를 만들어 마신 독일인에게 맥주는 물이었다. 우리나라 물 값이 독일 맥주 값이고, 독일 물 값이 우리나라 맥주 값 같았다.


아내의 취미는 맥주 마시기다. 중독자가 아니라 애주가다. 장인어른이 “김 서방, 우리 딸 취미는 항상 존중해주게.”라고 부탁할 정도로 아내는 맥주를 좋아한다. 이런 아내에게 독일 마트는 어떤 느낌일까? 아내는 이 한 마디로 감동을 토해냈다. “우와! 여기가 천국이네!” 아내의 눈은 하트가 되어 있었다.

“우와! 여기가 천국이네!”라고 외치며 맥주 코너를 활보하는 아내의 뒷모습 포착


교회와 술의 불편한(?) 관계

흔히 교회에 다니면 술과 담배를 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성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봤을 때, ‘술과 담배를 하지 말라’고 명시된 구절은 없었다. 심지어 예수님도 포도주를 마셨다. 대신 ‘술에 취하면 범죄 하기 쉬우니 취하지 말라’는 내용이 있었다. 술은 적당히 마시면 약이 되지만, 절제하지 못하면 독이 된다. 그런데 술을 입에 대지 않는 것보다 적당히 마시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금주를 권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한국교회에 금주, 금연이 강조된 것은 우리나라에 처음 교회가 세워질 때 청교도 정신을 가진 선교사들의 영향이 컸다. 금욕과 절제를 통해 거룩한 몸과 정신을 중시했기 때문이다. 나 역시 술과 담배는 일단 몸에 해롭고, 신앙생활에도 도움이 안 되기에 멀리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주(主)님 대신 주(酒)님을 의지하는 중독이 무섭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내와 함께 적당히 즐겁게 마시는 술은 금지할 이유가 없다. 결혼 후 늘어난 것은 체중과 간수치지만, 퇴근 후 아내와 맥주 한잔하며 나누는 대화의 맛은 맥주 거품처럼 부드럽고 맥주 탄산처럼 짜릿하다.



REWE에서 느낀 희열과 씁쓸함

정신을 차리고 보니 한국에서 볼 수 없었던 신기한 기계가 눈에 들어왔다. 빈 병을 넣으면 환불해 주는 기계였다. 어릴 때 용돈 벌이로 분리 수거장을 뒤져 빈 병을 모아 마트에서 돈으로 바꿨던 기억이 났다. ‘가만, 그렇다면 병 값이 반환되니까 독일 맥주의 실제 가격은 더 싸다는 말이 되는 거네?’ 이 또한 대박 사건이었다. 플라스틱 병 값도 반환이 된다고 하니 적극적인 재활용 활성화를 위해 우리나라에도 도입하면 좋을 것 같았다.


REWE 안에 있는 빈 병 환불 기계(왼쪽) / REWE에서 구입한 재료들로 차린 멋진 저녁(술)상(오른쪽)


수세미 같이 까칠한 독일 입국 심사관에게 받았던 상처가 독일 마트에서 완전히 치유되었다. 하루 만에 ‘독일은 역시 합리적이고 깔끔한 선진국이야.’라는 생각이 들었다. 경제분석기관인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이 발표한 ‘2018년 전 세계 생활비 보고서’에 따르면 서울 물가는 전 세계 주요 도시 중 7위를 기록했다. 서울은 모든 면에서 뉴욕보다 비싸다는 평가를 받았으며, 그중 식품 물가는 뉴욕보다 150% 더 높다고 한다. 특히 서울의 빵 값은 상위 10위권 내 도시 중 가장 비쌌다. 한국의 1인당 GDP는 3만 달러로 전 세계 26위인데 반해 독일의 1인당 GDP는 4.4만 달러로 전 세계 16위다. 그런데 독일 물가가 한국보다 저렴하게 느껴진다는 건 뭔가 이상하다. 서울 물가가 비정상적으로 높다는 말이다. 서울에서 장을 보면 몇 개 안 담아도 10만 원은 우습게 넘는다. 집 값은 어떤가?


독일 마트 체험을 마치자 득템 했다는 희열과 서울 물가에 대한 씁쓸함이 교차했다. 서울의 출퇴근 지하철 풍경이 떠올랐다. 열차는 꾹꾹 밥을 눌러 담아 곧 옆구리가 터질 것만 같은 엄마표 김밥 같다. 나는 그 안에 찌그러져 눌어붙은 밥알이다. ‘굳이 서울에 살 필요가 있을까?’ 그날 밤 아내와 독일 맥주를 마시며 서울의 삶에 대해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덧1.

독일 REWE에서 '득템 Best 3'를 소개한다. 젤리계의 베스트셀러인 귀여운 곰돌이 젤리 ‘하리보(Haribo)’, 악마의 잼이라 불리며 한번 먹으면 헤어 나올 수 없는 초콜릿 잼 ‘누텔라(Nutella)’, 100년 넘게 사랑받고 있는 독일의 대표 목캔디 ‘엠오이칼(Emeukal)’을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다. 선물용으로 가성비가 아주 좋다.


#덧2.

물을 살 때 유의사항이 있는데 탄산수와 일반물을 구분하는 법이 있다.

- Mineralwasser still 또는 Ohne Kohlensäure : 탄산이 들어 있지 않은 물
- Mit Kohlensäure : 탄산이 들어 있는 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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