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내가 호텔 조식 요리사 - 첫 번째 뜻밖의 발견
독일에서 맞이하는 첫 주일 아침. 오늘은 내가 짜파게티, 아니 호텔 조식 요리사! 여행을 다니면서 느낀 건데 아내는 호텔 조식을 참 좋아한다. 정확히 말하면 평상시에 잘 먹지 않는 계란, 소시지, 빵, 시리얼 등의 서양식 아침 식사를 즐긴다. 한식 마니아인 우리 부부에겐 여행의 별미가 아닐 수 없다.
아내가 씻고 있는 사이, 나는 분주하게 서프라이즈 호텔 조식을 준비했다. 보통 소시지를 구울 때 사선으로 칼집을 내기 마련인데, 나는 시간 단축을 위해 소시지의 척추(?)를 따라 일자로 쭉 칼집을 내어 구웠다. 오믈렛을 만들고 싶었지만, 아내가 다 씻기 전에 모든 세팅을 마쳐야 했기에 급히 스크램블로 메뉴를 바꿨다.
이제 오늘의 메인 요리(?) 스크램블과 소시지를 예쁘게 접시에 담아내기만 하면 완성이었다. 동그란 접시 가운데 스크램블을 동그랗게 모아서 담고 그 주위를 소시지로 둘러서 플레이팅 하기 위해 소시지를 칼로 잘랐다. 아내의 샤워기 물줄기 소리가 그쳤다. 신속히 세팅 완성!
젖은 머리를 말리며 화장실에서 나온 아내. 어제 장미를 받았을 때 외쳤던 감탄사 “할키!”를 또 외쳤다. 특히 본의 아니게 하트 모양이 된 소시지에 더 큰 감동을 받았나 보다. “오빠, 언제 이렇게 준비했어요? 소시지가 하트네? 완전 감동이에요.” 나는 당황하지 않고 무심한 듯 표정관리를 했지만, 삐죽삐죽 올라가는 입꼬리를 제어할 수 없었다. 소시지로도 하트를 만들 수 있다는 뜻밖의 발견에 우리 부부는 작은 기쁨을 느꼈다.
그럴싸한 호텔식 조식. 소시지 뜻밖의 발견, 하트 소시지!
여기가 교회야, 오페라 극장이야? - 두 번째 뜻밖의 발견
기분 좋은 포만감을 느끼며 우리 부부는 카셀에 있는 한인 교회로 향했다. 20분 정도 차로 이동하자 명동성당보다 조금 작은 규모의 대형교회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런데 목사님이 알려준 샛길을 따라가다 보니 교회 뒤편에 숨어있던 조그마한 건물이 ‘까꿍!’ 고개를 내민다.
‘카셀 아름다운 교회’는 대형교회의 작은 공간을 빌려 예배를 드리는 공동체였다. 한국에서도 자그마한 교회에 다니는 우리 부부는 독일에서도 비슷한 느낌의 한인 교회를 만나 신기하면서도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교인수는 30명 정도 될까? 보통 한국 교회에서는 점심 식사를 한식으로 하는데 카셀의 한인 교회에서는 샌드위치, 컵라면 등 간편식으로 점심 식사를 한다는 것도 새로웠다. 안내해주시는 분과 간단히 인사를 나눈 후 자리를 안내받아 앉아있으니 대여섯 명의 성가대가 들어왔다.
잠시 후 예배가 시작됐다. 독일에서 드리는 첫 예배였다. 익숙한 순서의 의해 예배가 진행되었다. 그리고 성가대 순서가 돌아왔다. 남성 중창단으로 구성된 성가대가 앞으로 나오자 반주가 흘렀다. 그런데 이게 웬일? 우리 부부는 놀란 토끼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뜻밖의 프로페셔널한 찬양이 교회 공간을 빈틈없이 가득 채우고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성가대원 모두 독일에서 유학을 마치고 현재 오페라 극단에 몸담고 있는 진짜 프로들이었다. 우와! 오페라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은 찬양의 시간이 흘러갔고 우리 부부는 뜻밖의 귀 호강에 감사했다. 그날 두 번째 뜻밖의 발견이었다.
예배를 마치고 성가대원 중 한 분이 우리 부부에게 다가와 독일 생활의 깨알 꿀팁을 알려주었다. 유명한 ‘학센(우리나라 족발 느낌의 독일 대표 요리)’ 가게, 가성비 좋은 초밥 가게 등 맛집 정보를 비롯해 관광지 추천과 주변국 여행 시 유의점 등 여행정보까지 여행책에서는 알 수 없었던 뜻밖의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카셀 아름다운 교회 주소 : Erlöserkirche Grillparzerstraße 13, 34125 Kassel / Tel : +49 (0)561 937 1633
주일은 쉽니다 - 세 번째 뜻밖의 발견
교회에서도 뜻밖의 즐거운 발견을 한 우리 부부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저녁 장을 보기 위해 마트로 향했다. 식수도, 먹을 것도 별로 없었는데 이게 또 웬일? 주일에는 마트를 비롯한 상점들이 문을 닫는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이다. (주유소와 편의점만 주일에 문을 연다고 한다.)
그날은 물 대신 맥주로 갈증을 채우고, 잠자고 있던 비상식량을 꺼내야 했다. ‘치맥(치킨+맥주)’과 ‘피맥(피자+맥주)’ 조합에 밀리지 않는 ‘라맥(컵라면+맥주)’ 조합으로 뜻밖의 저녁 식사를 맛있게 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에는 연중무휴 마트를 비롯해 동네마다 있는 편의점, 24시간 배달음식 등 소비자를 위한 인프라가 잘 구축되어 있다. (독일에서는) 주일에 상점 문을 닫는 것은 상상도 못 할 뜻밖의 발견이었다. 그 후로 우리 부부는 토요일이 되면 무조건 장을 좀 더 넉넉하게 봐 두었다.
뜻밖의 발견이 기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계획한 대로 모든 것이 흘러간다면 과연 기쁘기만 할까? 이 질문을 주제로 다루며 교훈을 주는 영화가 한편 생각난다. 2003년 짐 캐리가 주연했던 영화 <부르스 올마이티>다.
짐 캐리는 하는 일마다 자기 뜻대로 풀리지 않자 신을 원망하고 저주한다. 짐 캐리에게 나타난 신은 그럼 네가 한번 신이 되어보라며 휴가를 떠난다. 신이 된 짐 캐리는 풀어놓은 망아지 마냥 자기 뜻대로 세상을 주무른다. 한껏 들뜬 그는 모든 사람들의 기도를 들어주며 스스로 착한(?) 신이라는 착각에 빠진다.
그 결과, 세상은 각종 범죄와 재앙 속에서 카오스 상태가 되어버린다. 짐 캐리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자기 뜻대로 할 수만 있다면 행복해지리라 생각했지만, 오히려 모두가 불행해지는 결과를 초래했다. 평범한 자신의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달은 짐 캐리는 결국 신에게 항복한다.
인생은 내가 뜻한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그래서 오히려 더 기대가 되고 설레며 흥미롭다. 여행도 마찬가지다. 분명 다양한 정보를 수집해서 철저히 계획을 세우지만, 계획대로 되지 않는 뜻밖의 순간들이 기다리고 있다.
김영하 작가는 뜻밖의 발견을 이렇게 예찬했다.
우리의 내면에는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하는 강력한 바람이 있다. 여행을 통해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되고, 자신과 세계에 대한 놀라운 깨달음을 얻게 되는 것, 그런 마법적 순간을 경험하는 것,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이런 바람은 그야말로 ‘뜻밖’이어야 가능한 것이기 때문에 애초에 그걸 원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 같은 각성은 대체로 예상치 못한 순간에 찾아온다.
인생과 여행은 그래서 신비롭다. 설령 우리가 원하던 것을 얻지 못하고, 예상치 못한 실패와 시련, 좌절을 겪는다 해도, 우리가 그 안에서 얼마든지 기쁨을 찾아내고 행복을 누리며 깊은 깨달음을 얻기 때문이다.
<여행의 이유>, 김영하
뜻밖의 발견은 인생과 여행을 더욱 맛깔나게 해주는 비법 소스라고 해야 할까? 그날 하루에 세 가지 뜻밖의 발견을 한 우리 부부는 그동안 신혼부부로서 지내며 발견한 뜻밖의 기쁨은 무엇일지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우리 부부는 정식으로 교제한 지 정확히 4개월 만에 결혼했다. 주변에선 사계절은 겪어봐야 하지 않냐, 속도위반 아니냐며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당황스러운 건 우리 부부도 마찬가지였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타이밍에 결혼을 결정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 부부는 서로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 결혼관이 일치했고 삶의 가치관이 서로 잘 통했다. 그래서 ‘연애 후 결혼’보다는 ‘결혼 후 연애’를 선택했다. 뜻밖의 초고속 결혼식을 올렸지만, 지난 시간을 돌아볼 때 우리 부부는 ‘결혼 후 연애’를 후회하지 않았다.
아내도 주변에 결혼을 생각하는 이들에게 ‘결혼 후 연애’를 추천할 정도로 우리 부부의 신혼 생활 만족도가 높았다. 예상치 않은 결혼 뒤에 숨겨진 예상치 못한 커다란 기쁨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연애를 아무리 오래 해도 결혼하면 전혀 다른 사람이라고 말하는 부부가 많다. 연애가 길수록 상대에 대한 기대와 예상하는 바가 확고하게 굳어지기 마련이다. 결혼 후 상대의 진면모를 봤을 때 본인의 예상과 괴리가 클수록 당황하고 실망하게 된다. (물론 모두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주변에도 오랜 연애 끝에 행복하게 잘 사는 부부도 많다.)
우리 부부는 연애 기간이 짧았기 때문에 서로를 알아가는 설렘으로 결혼 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다. 물론 초반엔 많이 다투기도 했지만, 예상치 못한 모습에서 오는 새로운 매력을 발견해가는 기쁨이 더 컸던 시간이었다. 우리 부부는 지난 결혼 생활을 돌아보면서 뜻밖의 발견이 주는 기쁨에 감사했다. 또 한국에서는 볼 수 없었던, 독일에서 발견한 서로의 새로운 매력에 대해 나누면서 밤늦도록 이야기 꽃을 피웠다.
#덧.
그 날 또 재미있었던 뜻밖의 발견이 하나 더 있었다. 독일은 무단횡단의 왕국이라는 사실이었다. 나만의 고정관념일 수도 있겠지만, 철두철미한 모범적인 시민의식으로 무장했을 것 같은 독일인의 이미지가 여지없이 와르르 무너졌다. 보행자 신호가 분명 빨간 불인데 아무렇지 않게 무단횡단하는 장면을 목격했다. 한 둘이 아니었다. 혹시 몰래카메라는 아닌지 의심이 될 정도였다. 우리나라 보행자의 무단횡단은 아주 양호한 편에 속한다.
너무 충격적이어서 지인에게 물어보니 독일은 딱딱해 보이는 이미지와는 다르게 효율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융통성이 있다고 했다. 또한 독일 시내는 도로 폭이 넓지 않고 ‘트람(노면전차)’이 다니는 전용도로도 함께 있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트람이 오지 않을 땐 무단횡단을 쉽게 할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다.
무엇보다 놀라운 건 독일에선 무단횡단에 대한 보행자의 법적인 책임이 없다고 한다. 횡단보도와 신호는 보행자를 조금 더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한 장치일 뿐, 항상 도로에서는 보행자가 무조건 최우선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정서로는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사람 중심적인 법 체제에 다시 한번 감탄했다. 뜻밖의 발견이 주는 기쁨이 넘치는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