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뿔원(2+1)의 재미 설렘 가득한 총총걸음으로 아이젤너 다리를 향해 걷던 우리 부부. 마인강변을 따라 늘어선 ‘플리마켓(안 쓰는 물건을 공원 등에 가지고 나와 매매나 교환 등을 하는 시민운동)’이 눈에 들어왔다. 예상치 못한 진풍경에 또다시 우리 부부의 텐션이 상승했다. 책과 옷을 비롯해 그릇과 조각상 등 온갖 잡동사니들의 대축제가 벌어지고 있었다.
다양한 물건만큼이나 많은 사람이 북적거렸다. 물건과 사람 모두 구경할 수 있는 플리마켓은 ‘원뿔원(1+1)’의 재미를 선사하는 곳이었다. 그런데 관찰력이 뛰어난 아내는 내가 보지 못한 재미를 하나 더 찾아냈다.
그것은 바로 나무들의 생김새였다. 마치 포도송이를 다 먹고 난 포도 가지 같기도 하고, 순록의 멋들어진 뿔 같기도 했다. 아내 덕분에 플리마켓에서 ‘투뿔원(2+1)’의 재미를 찾으며 아이젤너 다리로 즐겁게 이동했다.
아이젤너 다리 앞에 펼쳐진 플리마켓(왼쪽) / 예쁜 그릇을 구경하고 있는 아내(오른쪽)
아이젤너 다리의 웨딩마치
고풍스러운 건물과 현대식 건물의 콜라보, 마인강의 운치까지 더해지는 아이젤너 다리 위의 풍경이 갬성을 자극했다. 게다가 다리 위에는 거리 연주자의 잔잔한 음악이 흐르고 있었다. 이 순간을 놓치지 않겠다는 듯 나는 연신 휴대폰 카메라의 촬영 버튼을 눌러댔다. 내가 찍었다고는 믿을 수 없는 우리 부부의 인생샷이 그렇게 아이젤너 다리 위에서 탄생했다.
칙칙한 철교 양쪽 난간엔 카멜레온 같은 형형색색의 자물쇠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정확히 400일 전, 두 줄 지어 예쁘게 장식된 꽃송이들 사이로 행진했던 결혼식의 기억을 떠올려 우리 부부는 천천히 다리 위를 행진했다. 자물쇠는 이내 아름다운 꽃 장식으로, 칙칙한 철교는 꽃 길로, 거리의 연주는 웨딩 마치로 변했다. 오글거려도 신혼의 특권이 이런 것 아니겠는가.
행진을 끝으로 결혼식을 마친 신랑, 신부가 다음으로 가는 곳은 어디인가? 폐백장이다. 이 공간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고풍스럽게 펼쳐진 병풍이다. 우리 부부에게 ‘뢰머 광장’은 마치 고풍스러운 목조건물들이 병풍처럼 둘러서 있는 거대한 폐백장 같았다.
프랑크푸르트의 랜드마크인 뢰머 광장은 중세의 분위기를 잘 간직하고 있다. 광장의 ‘오스트차일레(목조건물)’와 주변의 시청사, ‘카이저 돔(프랑크푸르트 대성당)’ 등 역사적인 건축물이 함께 어우러져 장관을 연출한다.
뢰머 광장의 고풍스러운 병풍, 오스트차일레! 광장 한가운데에는 정의의 분수와 정의의 여신 유스티아의 동상이 있다.
뢰머 광장에서 폐백까지 마친 기분으로 우리 부부는 오랜 친구가 초대한 집들이를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 길목에서 오랜 친구가 예전엔 빵을 사던 가게 자리에 들어선 ‘바커스 카페(Wackers Kaffee)’를 발견했다. 1914년에 문을 열어 100년도 더 된 유명한 카페다. 북적이는 손님들을 맞이하기엔 가게 내부가 너무 작다. 우리 부부는 어쩔 수 없이 테이크 아웃하여 한 잔에 2.4유로로 즐기는 카푸치노 맛의 향연에 빠졌다. 100년의 역사가 담긴 진한 향기를 마시는 기분이랄까. 아무튼 카푸치노가 유명하니 프랑크푸르트에 가면 꼭 한 잔 마셔보길 권한다.
바커스 카페 내부 모습(왼쪽) / 카푸치노 맛에 감동 또 감동(오른쪽)
오랜 친구가 초대한 집들이 카푸치노의 우유 거품이 입에서 채 마르기도 전에 오랜 친구의 집이 보였다. 중학교 때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라는 작품으로 처음 만났던 괴테의 생가에 입장했다. 집들이 비용으로 낸 1인당 7유로가 전혀 아깝지 않은 시간이었다. 지금도 생생히 그때의 감동이 밀려온다.
‘괴테하우스’는 4층으로 된 건물인데 색깔별로 콘셉트가 뚜렷한 방들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괴테하우스의 ‘노란방’, ‘초록방’ 등을 차례로 구경하면서 혹시 이케아의 콘셉트룸이 이곳에서 모티브를 얻은 게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모델 하우스 구경이라도 온 듯 우리 부부는 방마다 특색 있는 벽지, 가구 배치 등 인테리어에 대해 이야기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도 잘 되어 있어 괴테의 자취를 더욱 풍성하게 엿볼 수 있었다.
집 안에 세계 최고가의 천문시계를 비롯해 음악 감상실과 파티룸까지 갖춘 걸 보니 괴테는 틀림없이 금수저였다. 부유한 환경 속에서 타고난 천재적인 두뇌, 젊은 나이에 얻은 인기와 명예까지 괴테는 모든 것을 원 없이 다 누린 듯 보였다.
그러나 아무런 인생의 풍파 없이 어찌 위대한 작품을 만들 수 있겠는가? 괴테는 이뤄질 수 없는 짝사랑과 친구의 자살로 고통의 시간을 보냈다. 이렇게 자신의 아픔을 승화한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탄생했다. ‘베르테르 효과’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소설을 읽고 유럽의 많은 청년들이 베르테르의 모든 것을 모방했다. 심지어 자살까지….
희대의 명작이 탄생한 곳은 바로 괴테하우스 4층의 괴테 방이다. 벽에 걸려있는 여인의 실루엣이 바로 괴테가 사랑했던 샤를로테라고 한다. 모든 걸 다 가진 금수저 괴테도 사랑만큼은 마음대로 가지지 못했다.
괴테의 여동생 코르넬리의 방(왼쪽) / 괴테의 방에 걸려있는 샤를로테 실루엣(오른쪽)
백화점도 식후경 오랜 친구 집들이를 마친 우리 부부. 허기진 배를 채우러 갤러리아 백화점으로 향했다. 갤러리아 백화점 꼭대기에는 테라스에서 식사를 할 수 있는 푸드코트가 있다. 과거와 현대의 건축물이 만들어내는 독특한 스카이라인을 감상할 수 있는 테라스 이용료가 무료다.
갤러리아 백화점도 식후경이라고 우리 부부는 곧장 꼭대기로 향하였다. 우리 부부는 ‘슈니첼(독일식 돈가스)’과 스파게티, 샐러드와 맥주를 먹었다. 갤러리아 푸드코트는 이케아처럼 먹고 싶은 음식을 쟁반에 담아 한번에 계산하는 방식이었다. 가격은 슈니첼이 한화로 1만 원 정도로 가성비가 좋았던 기억이 난다. 특히, 두툼한 돈가스 위에 머시룸 수프를 들이부은 듯한 맛의 신세계를 잊을 수 없어 한국에서도 여러 번 만들어 먹었을 정도였다.
소화도 시킬 겸 꼭대기부터 한 층씩 내려가면서 천천히 아이쇼핑을 하였다. 우리나라 백화점의 화려함이 과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독일은 백화점에서도 검소함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패션 MD라는 직업병이 도져 디스플레이되어 있는 옷들을 유심히 보았는데 독일인은 화려함을 거부하는 성향을 지닌 것 같았다. (독일 현지인의 정보에 의하면 독일 북부로 갈수록 도시가 화려해진다고 한다. 특히 함부르크에 가면 우리나라 청담동은 명함도 못 내밀 정도라고 하는데 함부르크는 안 가봐서 확인할 길이 없었다.)
무엇보다 이질적이었던 것은 역시나 유료 화장실. 백화점 화장실도 50센트를 내야 사용할 수 있다. 화장실 인심뿐 아니라 물과 반찬 인심은 한국이 정말 최고라는 생각이 들었다. 50유로 같이 느껴지는 50센트를 내고 화장실을 이용한 후 거리로 나왔다. 다양한 버스킹이 벌어지고 있었다. 말 가면을 쓰고 신나게 드럼을 연주하는 사람, 다양한 악기를 온몸에 장착하고 미니 오케스트라를 보여주는 사람 등 다양한 예술가들이 거리를 장악하고 있었다.
감사한 시간 거리의 연주가 점점 희미하게 들릴 때까지 걷자 예쁜 꽃 가게가 보였다. 아내가 예쁘다며 사진을 찍었다. 나는 가게로 들어가 장미꽃 한 송이를 샀다. 사람들이 북적이는 거리에서 나는 아내에게 장미꽃을 내밀며 말했다.
저와 결혼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랑해요.
오글거리는 걸 못 참는 아내는 "할키!"라는 외마디와 함께 장미처럼 발그레 예쁜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장미꽃 한 송이는 프랑크푸르트에서 보낸 결혼 400일 기념의 화룡점정이 되었다.
#덧.
프랑크푸르트는 어린 시절 최고의 선물, ‘종합과자선물세트’ 같은 느낌이다. 유럽중앙은행이 있는 유로 타워, 프랑크푸르트 시내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마인 타워, 독일 민주주의가 시작된 상징적인 장소 파울 교회, 로마제국 황제의 대관식이 거행된 ‘카이저 돔(황제의 성당)’등 프랑크푸르트에선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시간 여행을 할 수 있다. 게다가 마인 강 남쪽에는 10여 개의 박물관이 모여 있는 ‘박물관 지구’도 있다. 정말 종합과자선물세트 같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