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고도 경주 같은 곳이 독일에도 있다고?
해외여행을 할 때 우리는 쇼핑, 관심 분야, 휴양 등 각자 목적에 따라 다양한 여행지를 선정한다. 그런데 관광객이라면 공통적으로 찾는 장소가 있다. 오래된 전통 마을은 단연 인기 여행지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낯선 곳에서 느끼는 다름이 주는 새로움’에 대한 갈망의 표출이랄까? 전통 마을에서는 오래된 가옥, 생활양식 등을 통해 그 나라의 독특한 정취와 갬성을 느낄 수 있다. 우리나라에도 경기도 용인, 제주도 성읍, 전남 순천 등에 전통 마을이 있다.
독일의 전통 마을은 어디에 있을까? 우리 부부는 유럽에서 가장 잘 보존된 르네상스 도시인 ‘크베들린부르크’로 시간 여행을 떠났다. 크베들린부르크는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물이 보존되어 있을 정도로 제2차 세계대전의 포탄도 피해 간 도시이다. 또한, 중세 구시가지와 언덕 위에 우뚝 솟은 성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도시이다.
카셀에서 차로 2시간 정도 달리면 카셀의 북동쪽에 위치한 크베들린부르크에 갈 수 있다. 이날은 아내가 운전대를 잡았다. 평상시 쫄쫄보인 아내는 운전할 때만큼은 캡틴 마블이 된다. 보통 연애할 때 차의 조수석에 탄 여자가 후진하는 남자의 목선을 보며 심쿵한다고 하는데 나는 그 반대였다. 후방카메라를 보지도 않고 백미러만 의지해 과감하게 SUV를 후진시키는 아내의 운전 솜씨를 보며 나는 이 여자와 결혼해야겠다고 느꼈다.
아내의 편안한 주행 덕분에 나는 조수석에서 신나게 관광 계획을 짰다. 마치 처음 민속촌으로 떠나는 소풍에 들뜬 어린아이 같았다. 나는 ‘퀘스트(게임을 원활하게 진행하기 위해 이용자가 수행해야 하는 임무 또는 행동)’를 수행하듯 정복(?) 해야 할 곳들을 면밀히 체크하고 차에서 내렸다.
그날따라 날씨가 제법 쌀쌀했다. 게다가 ‘전설의 고향’ 같은 느낌은 아니었지만, 인적이 드문 오래된 마을이 풍기는 을씨년스러운 분위기 때문에 더 춥게 느껴지는 것 같았다.
다소 이른 시간이라 인적이 드물었고 오래된 건물들 때문에 마을의 분위기가 약간 을씨년스럽기도 했다.
캡틴 마블에서 헐크로 변한 아내
아무리 운전할 때 캡틴 마블이 되는 아내라고 해도 낯선 외국에서 운전하느라 긴장을 안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마을을 걸으며 아내는 슬슬 긴장이 풀렸을 테고, 추운 날씨 속에서 꼬르륵 배고픔을 느꼈을 것이다. 그런데 민속촌 소풍이라도 온 듯 눈치 없이 발걸음을 재촉하는 철없는 남편이 야속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오빠, 우리 뭐라도 좀 먹으면 안 돼요?”
“갈 곳이 많으니까 일단 위치를 확인해놓고 밥 먹자.”
우리 부부는 평상시에 아침을 챙겨 먹는 편이 아니다. 그래서 이른 시각이라(오전 10시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나는 별로 배가 고프지 않았다. 그런데 아내도 마찬가지일 거라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긴 것이 화근이었다. 아내가 여행지에선 호텔식 조식을 챙겨 먹는 것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순간 잊은 것이었다.
허기진 상태로 운전을 한 데다 추운 날씨 속에서 길치인 남편을 따라 이리저리 쫓아다니려고 하니, 아내 안의 헐크가 깨어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것도 모르고 나는 아내에게 멋진 건물을 보여주겠노라고,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마을의 고풍스러운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겠노라고 아무리 찾아도 안 나오는 장소들을 찾아 헤맸다.
광장에 있는 관광 안내소까지 들렸지만, 별 소득이 없었다. 아내에게 특별함을 선물해주고 싶었는데 내 뜻대로 되지 않아 점점 지쳐갔다. (아내는 진작에 지쳤다.) 이대론 안 되겠다 싶어서 눈에 보이는 샌드위치 가게로 들어갔다. 아내가 “제발 아무 데나 들어가요!”라고 버럭 한 뒤라 나는 아내 눈치만 보고 있었다. 침묵이 흐른 채 우리 부부는 생선가스 같은 패티가 들어간 샌드위치를 영혼 없이 우걱우걱 먹었다.
아내의 기분을 풀어주려고 사진을 찍으며 장난을 쳤다. 당연히 역효과. 남편들은 보통 스스로 매를 버는 경우가 많다. 아내가 화를 내면 남편은 그 이유에 대해 면밀히 분석하면서 아내가 느낀 분노의 감정선에 대해 깊이 공감해야 한다. (그걸 잘 아는 사람이 왜 그랬을까?) 하지만 보통 남자들은 이런 뻘쭘한 상황을 탈피하기 위해 장난을 치거나 농담을 던지며 화제를 전환하려고 한다. 분노에 기름붓기! 불타는 아내의 마음이 더 활활 타오를 뿐이다.
우리 부부는 얼마 전에 당시 샌드위치를 먹는 아내의 표정을 포착한 사진을 함께 보았다. “인간의 깊은 빡침을 이렇게 잘 담아낸 사진이 있었다니! 이건 퓰리처상 수상감이야!”라며 이제는 웃으며 아내를 놀렸지만, 당시엔 어찌나 살벌하든지. 그날 크베들린부르크에서 전통 가옥과 유네스코 문화유산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크베들린부르크의 가장 오래된 목조 주택을 바라보며 그 무엇보다 아내의 배를 채우는 것이 중요함을 가슴 깊이 새길 수 있었다.
할렐루야! 구세주의 등장!
동네 편의점에서도 맛볼 수 있을 것 같은 샌드위치를 먹고 나자 더욱 냉랭해진 분위기 속에서 다시 거리를 걷기 시작했다. 이 상황을 어떻게 돌파해야 하지? 가뜩이나 안 좋은 머리를 이리저리 굴려봤지만, 돌 굴러가는 소리만 날 뿐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았다.
그때 마침, 눈 앞에 구세주가 나타났다. 알록달록한 책가방을 맨 세 명의 귀요미들이 쪼르르 걸어가고 있었다. 초등학생처럼 보이는 아이들의 뒷모습이 귀여워서 나도 모르게 아빠 미소를 지었다. 내가 초등학생이었던 1990년대와는 다르게 요즘 우리나라 초등학생들은 책가방을 캐리어처럼 끌고 다니는 걸 보며 깜짝 놀란 적이 있었다. 독일에서 책가방을 맨 귀요미들을 보며 추억 소환을 하게 될 줄이야. 반갑고 신기했다.
크베들린부르크에서 만난 귀요미들(왼쪽) /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물, ‘슈탠더바우’(오른쪽)
내가 초등학교에 처음 들어갈 때(1991년에는 ‘국민학교’라고 불렀다) 말 캐릭터가 그려진 ‘조다쉬’라는 브랜드가 유행했었다. 초록빛을 띠는 직사각형 조다쉬 가방을 메고 한 손엔 신발주머니를 흔들며 등교하던 기억이 떠올랐다.
귀여운 아이들을 보며 자연스레 아내와 초등학교 시절의 추억을 나눴다. 내가 1학년 땐 반이 15개나 있었고 한 반에 학생이 백 명이나 되어 오전, 오후반을 나눠 수업을 진행했다. (1991년 서울 송파구 소재 한 초등학교의 실상이었다.) 교실이 모자라 가건물까지 지어 운영할 정도로 열약했다.
3살 차이가 나는 아내는 나보고 ‘국민학교’에 다녔다며 늙었다고 놀려댔다. 내가 4학년 때 국민학교가 ‘초등학교’로 개명되었으니, 아내는 ‘초등학교’만 다닌 것이 맞다. 그러나 우리 부부가 같은 세대라는 사실을 밝혀준 추억의 아이템이 있었으니, 바로 그 이름하여 ‘네스퀵’. 하얀 우유를 초코 우유로 바꿔버리는 마법의 가루, 네스퀵은 우유 급식에 빼놓을 수 없는 필수 아이템이었다. 아내도 격하게 공감하며 네스퀵의 추억에 젖어들었다. (나보고 늙었다더니 딱 걸렸네! 허나 아내는 네스퀵과 쌍벽을 이뤘던 ‘마일로’라는 제품은 알지 못했다. 다시 나는 또 의문의 1패를 당했다.)
아내와 한창 수다를 떨면서 걷다 보니 어느새 기분이 전환되었다. 허기졌을 땐 을씨년스러웠던 거리가 이제는 동화책 속의 한 장면처럼 느껴졌다. 고풍스러운 목조 건물들 사이로 난 길엔 맨질맨질한 돌들이 깔려있었고, 우리 부부는 동화 속 세상을 천천히 음미하며 걸었다. 이래서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거구나! 정말 옛말 틀린 거 하나도 없다.
‘슐로스베르크’라고 부르는 언덕 위에 자리 잡은 크베들린부르크 성과 협동교회
크베들린부르크 성에서 도시 개발을 상상하다
드디어 언덕 위에 있는 크베들린부르크 성과 성 제르파티우스 협동교회의 모습이 보였다. 독일 최초의 국가 연합인 독일 왕국을 건립한 하인리히 1세가 크베들린부르크 성과 수녀원을 지었는데 수녀원이 훗날 성 제르파티우스 협동교회가 되었다.
계속 언덕길을 오르자 도시 전체를 한 번에 내려다볼 수 있는 탁 트인 공간이 나왔다. 같은 톤의 지붕들이 오밀조밀 모여있는 마을 전체의 모습이 그림 같았다. 심플하면서도 통일감 있는 지붕들의 조화로 도시 전체가 잘 정돈된 느낌을 주었다.
크베들린부르크 성의 전망대에서 바라본 구 시가지 모습. 지붕의 통일감으로 인해 도시 전체가 하나의 예술 작품 같았다.
나는 서울에 살면서 안타깝게 느꼈던 것이 바로 ‘지붕’이었다. 네모 반듯한 아파트들이 아무 개성도 없이 오밀조밀 들어선 모습을 보며 ‘외국인 관광객이 우리나라 건물을 봤을 때 어떤 감흥이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었다.
도시 전체를 전주 한옥마을 같이 만들 순 없겠지만, 아쉬운 대로 건물마다 우리나라 고유의 특색을 살린 포인트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지붕만이라도 한옥의 기와지붕을 현대식으로 재해석하여 적용해보는 것은 어떨까? 도시 전체가 하나의 예술 작품처럼 느껴지는 크베들린부르크에서 의도치 않게 도시 개발을 구상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서울 시장님! 괜찮은 아이디어 아닌가요?)
따로 또 같이 이뤄가는 환상의 하모니
독일 여행 전문가 유상현 작가는 크베들린부르크에서 ‘도시의 나이테’를 볼 수 있다고 표현했다. “10세기의 슐로스베르크를 시작으로 점차 도시가 커지고 커질수록 다음 세기의 건축에 충실한 시가지가 펼쳐진다. 급기야 20세기의 건축까지 가장 외곽에 자리 잡으면서, 이 나이테는 무려 10세기에 걸친 방대한 세월을 오롯이 담아낸다.” (<유피디의 독일의 발견>, 90~91쪽)
나는 ‘건알못(건축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지만, 이날 다양한 건물들이 따로 또 같이 환상의 하모니를 이루는 크베들린부르크의 매력에 흠뻑 빠지고 말았다. 비록 아내를 열 받게 했었지만, 30년 넘게 따로 살다 어느새 같이 살게 된 우리 부부도 한 걸음 한 걸음 발맞춰 나아간다면 따로 또 같이, 환상의 하모니를 이룰 수 있지 않을까?
천년고도 크베들린부르크의 연륜에서 묻어나는 가르침이 가슴에 진하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