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슬레벤에서는 시간 여행이 가능하다
아이슬레벤에서
by 책 쓰는 중고차 딜러 Nov 8. 2019
루터의 시간을 되돌려보다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고, 시간은 미래를 향해 멈추지 않고 흘러간다. 물론 공상 과학 영화에선 물이 역류하기도 하고 과거로 시간 여행도 가능하다. 그러나 현실은 고집불통 슈퍼 갑이다. 인생이란 열차에 몸을 실은 우리는 그저 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대로 끌려갈 수밖에 없다.
태어나고 자라며 늙고 죽는 인생의 순서를 뒤집어볼 순 없을까? 루터의 출발역과 종착역이 공존하는 아이슬레벤에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산 자의 시간에는 재생 버튼밖에 없지만, 죽은 자의 시간은 되감기가 가능하다. 그의 발자취를 역순으로 따라가면서 음미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부부는 루터가 임종을 맞이한 사가, 마지막 설교를 한 성 안드레아스 교회, 생가 순으로 루터의 시간을 되돌려보기로 했다. 먼저 루터의 사가에는 그의 마지막 여정과 죽음에 대한 전시물들이 있었다. 인상 깊었던 것 중 하나가 임종 때의 모습을 생생하게 담아낸 그림이었다.
루터의 죽음
1546년 2월 18일 새벽 3시경, 루터는 심장병으로 임종을 맞이했다. 그의 나이 63세였다. 죽음을 앞둔 루터는 한 성경 구절을 계속 암송하고 있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한복음 3장 16절)
임종을 지켜보던 요나스 박사는 마지막 때가 온 것을 알고 루터에게 물었다. “사랑하는 목사님, 당신은 여전히 하나님의 아들, 우리 구주요 구속자이신 그리스도를 붙들고 계십니까?” 루터는 이 땅에서의 마지막 신앙고백을 큰소리로 외쳤다. “예!”
루터의 임종을 그린 그림이 전시되어 있다 (왼쪽) / 루터가 썼던 침실 (오른쪽)
또 하나 인상 깊었던, 정확히 말하자면 소스라치게 놀랐던 것이 있었는데 바로 루터의 데드 마스크였다. 영원히 눈을 감은 루터의 얼굴과 손 모양을 본뜬 전시물이었는데 이걸 본 아내는 '귀신의 집'에라도 온 듯 소리 지르며 뒷걸음질 쳤다.
겁 많은 쫄보 아내 옆에서 방심하고 있던 한 덩치 큰 쫄쫄보는 아내의 비명에 한 번, 데드 마스크에 또 한 번 놀라며 외마디 괴성을 질렀다. 그게 나다.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데드 마스크를 보면서 역시 하나님은 외모가 아닌, 마음의 중심을 보신다는 것을 확신했다.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면 안 되지만, 루터의 데드 마스크가 다소 충격적이었던 것은 사실이다.)
루터의 데드 마스크 전시물 (왼쪽) / 루터의 사가 내부 (오른쪽)
한바탕 소동이 벌어진 후 우리 쫄쫄쫄보 부부는 손을 꼬옥 잡고 천천히 나머지 전시물들을 구경했다. 사실 루터의 것이 아니었다면 가구, 주거 공간, 유품 등 그리 특별한 건 없었다(데스 마스크 빼고). 하지만 그곳엔 470년이 지난 지금에도 한 사람의 죽음을 통해 그 정신을 기념하고 보존하려는 역사적 감동이 머물고 있었다.
성당과 교회의 차이가 뭐예요?
루터의 사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성 안드레아스 교회가 있었다. 이 곳에서 루터는 성경의 마태복음 11장 28절 말씀으로 마지막 설교를 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우연일까, 필연일까. 마지막 설교를 마치고 사흘 후 루터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벗고 영원한 쉼을 얻었다.
교회 문이 닫혀 있어 내부로 들어갈 순 없었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한 채 우리 부부는 루터가 유아세례를 받았던 성 베드로 바울교회로 발걸음을 옮겼다. 오래된 교회였지만, 사골 국물처럼 뽀얗게 잘 관리된 내부의 모습에 놀랐다. 원형으로 보존되어 있는 세례대가 인상적이었다. 루터는 생후 2일째, 이곳에서 세례를 받았다고 한다.
성 안드레아스 교회 (왼쪽) / 성 베드로 바울 교회 (오른쪽)
아내는 궁금한 건 못 참는 성격이다. 예능 프로그램 <복면가왕>을 볼 때도 바로 검색해서 복면의 실체를 밝혀낸다. 영화를 볼 때도 일단 초록창으로 스토리와 결말을 알아낸 다음 영화를 감상한다. 아내는 스포일러를 좋아한다. 결과를 알고 봐야 더 재밌다는 아내, 나와는 정반대라 신기하기만 하다.
성 베드로 바울교회에서도 아내의 호기심이 발동했다. "오빠, 이 건물도 옛날엔 성당이었을 텐데 성당이랑 교회랑 뭐가 다른 거예요?" 다행이다. 내가 그래도 아는 걸 물어봐줘서. 나는 독특한 종교 이력을 갖고 있다. 초등학교 때 어머니를 따라 성당에서 유아세례를 받았다. 가끔 친구 따라 교회에 몇 번 가기도 했지만, 고등학교 때까지 쭉 성당에 다녔다. 그러다 대학교에 가서는 숭산 스님의 <선의 나침반>에 푹 빠져 지냈다. 불교에 잠시 심취했다가 군 입대를 앞두고, 친구 따라 다시 교회에 갔다. 군 생활의 고난과 역경을 통해 본격적으로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다.
내가 경험하고 느낀 성당과 교회
나름 성당 오빠와 교회 오빠를 모두 경험한 나는 생각과 느낌을 아내에게 차분히 설명했다. 우선 헷갈리는 '기독교, 개신교, 가톨릭'에 대한 용어 정리가 필요했다. 쉽게 말해서 개신교는 교회, 가톨릭은 성당, 기독교는 교회와 성당을 포괄한다고 할 수 있다.(이하 '교회'는 개신교, '성당'은 가톨릭을 의미)
1. 기독교
기독교는 크리스트(그리스도)교다. '그리스도'를 한자로 음독한 것이 '기독(基督)'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종교를 기독교라고 부른다.
2. 개신교
개신교는 종교 개혁의 결과로 가톨릭에서 갈라져 나온 기독교를 말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보통 개신교는 기독교로, 로마 가톨릭 교회는 천주교로 불리는데 엄밀히 따지면 교회는 개신교, 성당은 가톨릭이다.
3. 가톨릭
가톨릭은 '모든 곳에 있는, 보편적'이라는 의미를 지닌 희랍어 카톨리코스(katholikos)에서 유래된 명칭이다. 로마 교황을 정점으로 하며, 로마 가톨릭 교회라고도 한다. 한국ㆍ중국ㆍ일본 등지에서는 구교(舊敎)나 천주교라고 불린다.
(참고 자료 : 시사상식사전, pmg 지식엔진연구소)
성당은 전반적으로 분위기가 엄숙하다. 구약에 무게를 두기에 '율법의 두려운 하느님' 이미지가 강하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내 경험과 느낌에 의한 설명이다.) 기분 탓인지는 몰라도 성당에서 하느님께 드리는 제사인 '미사'에도 형식과 절차가 많다.
'신부'라 부르는 사제는 결혼을 하지 않고 하느님께 헌신하는 성직자의 삶을 산다. 신부는 미사를 주관한다. 신부는 미사 때마다 예수의 몸, 즉 '성체'라고 부르는 납작하고 둥그런 밀떡을 세례 받은 교인들에게 나눠준다. 이 예식을 '영성체'라고 한다.
성당에서 신부는 하느님의 대리자인 사제로서 교인의 고해성사도 주관한다. 영화에 자주 나오는 장면처럼 교인은 좁고 어두운 방 안에 무릎을 꿇고 신부에게 자신이 지은 죄를 고백한다. 신부는 죄에 따라 어떤 기도를 몇 번하고 어떤 행동을 하라고 처방을 내린다.
여자 천주교인은 '미사보'라 부르는 천을 머리에 쓴다. 성모 마리아가 머리에 쓰고 있는 것과 비슷하다. 성당에선 예수 못지않게 성모 마리아를 엄숙히 경배한다. 마리아는 하느님의 영인 성령에 의해 처녀의 몸으로 '그리스도(메시아, 구원자)'를 잉태한 예수의 어머니이기 때문이다.
정통과 정의의 다툼
이것을 놓고 개신교는 가톨릭을 '마리아교'라고 비난한다. 인간인 마리아를 신격화하며 우상 숭배를 한다고 주장한다. 가톨릭은 개신교를 후레자식이라고 비난한다. 가톨릭이라는 부모에게 반기를 들고 집 밖으로 뛰쳐나간 뿌리도 모르는 자식이 개신교라는 것이다. (물론 이것이 개신교와 가톨릭의 공식적인 입장은 아니다. 다만 내가 교회와 성당을 다니며 수많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눴을 때 적지 않은 이들이 이런 생각을 갖고 있었다.)
영화 <분노의 질주 : 홉스&쇼>에서 홉스(드웨인 존슨 분)는 정의감에 불타는 경찰이다. 어린 시절 그는 불법을 자행하며 형제들을 조직원으로 이용하는 아버지를 경찰에 신고하고 고향을 떠난다. 가족과 단절된 채 수십 년이 흘러 홉스가 다시 고향으로 돌아갔을 때 그를 맞이한 건 형 조나(클리프 커티스 분)의 주먹이었다.
가톨릭은 정통을, 개신교는 정의를 강조하며 서로가 타락했다고 비난한다. 조나는 홉스가 가족을 버린 매정한 놈이라며 분노하고, 홉스는 아버지의 범죄에 가담한 조나가 공범이라며 분노한다. 가톨릭과 개신교의 갈등을 보는 것 같다.
교회와 성당은 같은 듯 다르다. 성당에 비해 교회는 상대적으로 밝고 가벼운 느낌이다. 신약에 무게를 두기에 '사랑의 자애로운 하나님' 이미지가 강하다. 교회에서도 성당의 '영성체'와 비슷한 '성찬식'이라는 예식이 있다. 형식상의 차이가 있다면 매주마다 성찬식을 하지 않으며 성체는 밀떡이 아닌 빵이라는 점이다.
루터는 '오직 믿음'을 외치며 하나님과 교인 사이의 깊고 친밀한 1:1 관계를 강조했다. 교회에는 목사가 있지만, 고해성사를 목사에게 하진 않는다. 개신교인은 죄를 직접 하나님께 고백하면 된다고 믿는다. 목사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메신저다. 신부와 다르게 목사는 결혼을 해야만 자격을 얻을 수 있다.
성 베드로 바울교회를 구경하는 동안 나는 성당과 교회의 차이점에 대해 열심히 아내에게 설명했다. 신학적으로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평범한 교인의 관점에서 나의 경험과 느낌을 아내에게 전했다. 궁금증이 어느 정도 해소되었는지 아내는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 지었다.
루터의 생가 외부 (왼쪽) / 루터의 생가 내부 (오른쪽)
루터의 비하인드 스토리
우리 부부는 마지막으로 루터의 생애 처음이 담긴 생가를 방문했다. 루터의 부모는 광산 개발 사업을 하러 왔다가 이곳에서 루터를 출산했다. 사업이 잘 안 되었는지 1년 만에 이사를 가는 바람에 루터는 생가에서 짧은 시간을 보냈다. 사실 어린 시절 루터의 생생한 흔적이 남아있진 않지만, 종교개혁의 아버지, 루터가 태어난 곳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고 종교개혁자들을 기리기 위한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루터 생가와 관련된 정보를 찾아보다가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루터 비하인드 스토리라고 해야 할까. 루터의 아버지는 신실한 신자였지만, 아들이 성직자가 되는 것을 탐탁지 않게 여겼다. 아들을 법률가로 만들려고 부단히 애썼다고 한다. 루터의 아버지도 우리나라 부모 세대처럼 판검사의 '사자 직업'을 선호했다고 하니 동서고금을 떠나 부모의 마음은 매한가지인가 보다.
루터의 어머니는 매우 엄격하여 한 번 매질을 하면 피를 볼 정도였다고 한다. 루터는 어릴 때부터 혹독하게 단련되며 종교개혁가로서 고난의 길을 갈 준비를 하고 있었지도 모른다. 숨 막히는 루터의 삶에 숨구멍이 되어준 존재가 있었으니 바로 루터의 아내 카타리나였다. 수녀였던 그녀와 신부였던 루터가 결혼하면서 많은 이들의 반대에 부딪쳤지만, 루터는 이렇게 말했다. "하나님이 주신 신앙 다음으로 가장 소중한 선물은 아내다." 사랑꾼 루터는 카타리나의 도움으로 성경의 원리를 가정에 적용하여 얻은 교훈이 많았다고 한다. 루터의 결혼을 시작으로 개신교 목회자들은 믿음의 가정을 세우게 되었다.
시간 여행을 마치며
한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가 그렇게 울었듯 한 명의 위대한 종교개혁가의 삶을 꽃피우기 위해 아이슬레벤은 루터를 품고 울었다. 우리 부부는 루터의 시간을 거꾸로 여행하면서 루터는 종교개혁의 아버지가 되기 위해 태어났고, 그를 위해 모든 필연의 과정이 이미 준비되어 있었다는 것을 느꼈다. 어쩌면 지금 나도 그동안 이런저런 경험을 했기 때문에 이 글을 쓰는 게 아니라, 이 글을 쓰기 위에 이렇게 살아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루터도 알고 보면 나약한 인간이었다. 사실 종교개혁은 루터가 의도한 것이 아닌 우연히 일어난 일이었다.(물론 우연을 가장한 필연이겠지만.) 반박문을 작성했을 뿐인데 갑자기 일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루터는 당황하며 두려워했다고 한다. 그는 또한 반유대주의를 펼치기도 했다. 믿음 구원을 외치는 루터에 맞서 행위 구원을 외치는 유대인이 안타까웠던 걸까, 미웠던 걸까?
루터를 통해 인간이란 존재가 얼마나 나약한지 곱씹어 볼 수 있었다. 역사적 인물의 업적보다 인간적인 면이 더 와 닿는 이유는 누구에게나 '인간의 나약함'이라는 공감대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종교개혁가로서 루터의 삶보다 "하나님이 주신 신앙 다음으로 가장 소중한 선물은 아내다."라고 고백한 사랑꾼으로서 루터의 삶이 어쩌면 더 큰 울림을 주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