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맥주는 아내의 눈물도 그치게 한다

맥주 체험

루터의 시작과 끝이 있는 도시, 아이슬레벤

종교개혁 500주년이 되는 해에 독일에서 1달 살기는 우리 부부에게 어떤 의미일까? 우리 부부는 종교개혁의 핵심 인물인 마르틴 루터와 관련된 유적지를 탐방하고 싶어 졌다. 루터의 시작과 끝, 탄생과 죽음의 향기가 배어있는 아이슬레벤으로 향했다.


‘루터 슈타트(Lutherstadt, 루터의 도시)’라고 불리는 아이슬레벤은 루터가 출생한 생가와 임종을 맞이한 사가를 모두 품고 있는 도시다. 또한 이 곳에선 세계 최초의 루터교가 된 교회, 루터가 세례를 받고 마지막 설교를 한 교회들도 방문할 수 있다. 한 인간으로서 루터의 시종과 종교개혁가로서 루터의 발자취를 모두 느낄 수 있어 매력적이다.


성직자였던 루터는 부패한 로마 가톨릭 교회를 향해 반기를 들었다. 당시 교황의 말은 성경 말씀의 권위보다 높아져 있었고, 사람이 만든 교리가 성경이 증거 하는 진리 위에 군림하고 있었다. 급기야 로마 가톨릭 교회는 돈으로 죄를 없앨 수 있다는 명목으로 면죄부를 판매하기에 이르렀다.


루터는 피가 거꾸로 솟는 분노로 성경 말씀에 기초한 95개 조의 반박문을 작성했다. 이것이 종교개혁의 도화선이 되었다. 루터는 키가 약 3m에 이르는 거인 골리앗을 돌멩이 한 개로 쓰러뜨린 꼬마 다윗이었다. 또한 그는 대륙으로 뻗어 나가려는 일제의 거대한 야욕의 동맥을 겨우 열두 척의 배로 끊어낸 이순신 장군이었다. 우리 부부는 루터를 향한 독일인들의 자부심과 애정이 아이슬레벤 곳곳에 녹아있음을 느꼈다.



남편의 똥 손 때문에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린 아내

우리 부부는 최초의 루터교가 된 ‘성 안나 교회’와 멀지 않은 위치한 곳에 무료 주차를 할 수 있었다. 전편에서 소개했던 주차 앱 덕분이었다. (무료 주차장 주소 : Zeißingstraße 50, 06295 Lutherstadt Eisleben)


루터의 기도문이 새겨진 비석(왼쪽) / 길바닥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 루터교회를 상징하는 장미 문양 (오른쪽)


길을 따라 얼마 가지 않아 큰 비석이 나타났다. 루터의 기도문이었다. "여보, 우리 여기서 사진 찍을까?" 나는 핸드폰의 조그만 화면 속에 나와 아내, 큰 비석이 들어가도록 이리저리 셀카봉을 움직였다. 찰칵!


"푸하하하! 여보, 얼굴이 또 가지처럼 길쭉하게 나왔네. 가지샷이다, 가지샷! 푸하하하!" 나는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머금고 아내를 바라보다 “헉!”하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갑자기 아내의 눈시울이 붉어지는 것이었다. 이내 아내의 뺨을 타고 닭똥 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아내의 눈물이 우박처럼 내 마음을 때렸다. 루터의 고향에 도착해서 이제 막 탐방을 시작하기도 전에 아내를 울려버리다니…. ‘오늘 하루는 망했다!’라는 절망이 엄습하며 눈 앞이 캄캄해졌다. 눈이 닫히면 귀가 열린다고 했던가. 그제야 전날 아내와 사진을 보면서 나눴던 대화가 스쳐 지나갔다.


아내 : “내 얼굴이 이렇게 길었나? 왜 사진마다 얼굴이 다 가지처럼 나왔지?”
나 : “에이! 여보는 실물이 예쁘잖아. 아직 과학 기술이 여보의 미모를 담아내지 못하는 게 아닐까? 하하하!”


이것이 복선임을 왜 그 순간에 알지 못했을까? 아내는 처음 떠나는 유럽 여행인 데다 쉽게 낼 수 없는 한 달이라는 소중한 시간을 잘 간직하고 싶은 마음이 컸던 것 같다. 사진을 예쁘게 찍어 자랑도 하고 싶었는데 셀카 고자인 남편의 똥 손이 자꾸 아내의 얼굴을 가지로 만들어버리니 속상할 수밖에….


처음에 아내가 사진을 보며 불평할 때까지만 해도 나는 아내가 예민하다고 생각했다. 목소리도 녹음해서 들으면 내 목소리만 진짜 이상하게 느껴지듯이 사진도 항상 내 얼굴만 이상하게 보이는 법이지 않은가. 아내의 과민반응(?)을 대수롭지 않게 넘긴 게 화근이었다.



위기 속 나의 결단

패트리어트 미사일 같은 아내의 눈물이 내 마음에 때려 박힌 덕분에 나는 스스로 얼마나 심각한 ‘셀카 고자’인지 인식하게 되었다. 셀카 찍는 법에 대한 벼락공부를 통해 무엇이 문제인지 알 수 있었다. 카메라 렌즈는 둥글기 때문에 화각이 생긴다. 따라서 볼록렌즈의 주변부로 갈수록 얼굴이 가지처럼 길게 나오는 아주 간단한 원리였다.


사람은 참 자기중심적이다. 우리 부부는 키 차이가 20cm 정도 나기 때문에 내가 셀카봉을 들면 무릎을 굽혀 아내의 얼굴과 나란히 카메라 중앙에 들어가도록 사진을 찍어야 했다. 그런데 여태껏 찍은 사진을 보면 대부분 나는 중앙에, 아내는 아래쪽에 위치한 경우가 많았다. 나의 무지함이 아내를 이상한 화각 나라의 가지 공주로 만든 것이었다.


아내는 화가 나고 속상하면 영화 <타짜>에 나오는 너구리 형사처럼 일단 입에 지퍼를 채운다. 내가 아무리 옆에서 말을 붙여보려 노력해도 최소 하루짜리 묵언수행을 말릴 수 없었다. 아내에겐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했다. 나는 그 시간을 조급해하지 않고 눈치를 살피며 잘 기다리는 것이 중요했다.


루터의 고향까지 왔는데 그날 하루를 망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결단을 내렸다. 아내의 기분에 집착하는 순간 나도 예민해지기 때문에 아내의 시간을 존중하기로 했다.


성 안나 교회 외부(왼쪽)와 내부(오른쪽)


대어를 낚는 낚시꾼의 심정으로

나는 아내에게 여러 차례 진심으로 사과한 후, 평정심을 찾았다. 그땐 어떻게 그게 가능했는지 참 신기했다. 사람이 궁지에 몰리면 초능력이 발휘되나 보다. 성 안나 교회에 도착하여 나는 전날 미리 공부해둔 얕은 지식으로 아내에게 설명했다.


“여보, 이곳은 성 안나 교회인데 최초로 루터교회가 된 곳이래. 루터가 이 교회를 지나가다가 천둥소리에 놀라 성직자가 되기로 결심했대. 천둥소리가 하나님의 음성처럼 들렸나 봐.”


아내의 표정은 여전히 좋지 않았지만, 나는 좌절하지 않고 시간 간격을 두며 천천히 말을 건넸다. 나는 낚시를 할 줄 모르지만, 대어를 잡을 때 낚싯줄이 끊어지지 않도록 힘 조절이 중요하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광장의 구 시청사 앞에는 마르틴 루터 동상이 있다.


곶감 같은 맥주와의 만남

다행히도 나는 며칠 전에 깨달은 '아내를 배고프게 하지 말라'진리를 잊지 않고 있었다. 성 안나 교회에서 멀지 않은 구 시청사 광장으로 이동했다. 미리 검색해 두었던 수제 버거를 먹기 위해서였다. 광장에 서 있는 루터의 시선으로 바라봤을 때 가게는 11시 방향, 20m 정도 떨어진 곳에 있었다.


가게에 들어서자 다소 쌀쌀한 날씨와는 대조적으로 따뜻한 느낌의 목재 인테리어가 인상적이었다. 메뉴판을 받자마자 맥주 애호가인 아내에게 맥주를 권했다. 아내는 여전히 포커페이스였지만, 내심 흥분됐을 것이다. 유심히 살펴보다 결국 1번과 2번 맥주를 시켰다. 잘 모를 땐 가장 처음, 상단에 소개되는 메뉴를 고르면 실패할 확률이 낮다. 수제 버거도 마찬가지 방법으로 주문했다.


한국엔 우는 아이도 그치게 만드는 곶감이 있다면, 독일엔 우는 아내도 그치게 만드는 맥주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렇게 우리 부부는 ‘쉐퍼 호퍼’와의 감격적인 첫 만남을 가졌다. 원래 울고 나면 더 배고프고, 배고프면 더 맛있는 법이다. 당시엔 쉐퍼 호퍼라고 읽을 줄도 모르고 맛보았던 맥주였는데 남편의 백 마디 사과보다 맥주 한 모금의 위로가 아내에겐 즉효약이었나 보다.


쉐퍼 호퍼의 풀네임은 ‘쉐퍼 호퍼 헤페바이젠(Schofferhofer Hefeweizen)’이다. 탁한 오렌지 색깔을 띠며 바나나와 정향, 몰트 향을 느낄 수 있다. 입안에서는 효모의 풍미와 새콤한 감귤류, 바나나와 같은 과일의 풍미를 느낄 수 있다. 가볍게 마실 수 있는 밀맥주이다. (출처 : 와인21닷컴)


오묘한 빛깔과 향긋한 맛의 쉐퍼호퍼 맥주 (왼쪽) / 다소 비쌌지만 수제 버거 맛집 인정 (오른쪽)


쉐퍼 호퍼와 수제 버거의 환상적인 맛

한국에 온 뒤에도 한 동안 쉐퍼 호퍼를 그리워했었는데 1년 뒤 우연히 홈플러스에서 쉐퍼 호퍼와 재회하고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물론 독일 현지에서 생맥주로 맛보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지만, 사연 있는 맥주에 대한 애정이랄까. 난 쉐퍼 호퍼를 마실 때마다 독일에서의 추억이 새록새록 떠올라 좋다.


이 가게의 수제 버거 또한 일품이었다. 나는 수제 패티를 비롯해 야채와 버섯, 베이컨까지 들어간 콤비네이션 피자 같은 버거였고, 아내는 느끼함으로 무장한 치즈 피자 같은 버거였다. 내가 시킨 버거가 압도적으로 맛있었다.


나중에 아내가 “그때 오빠가 시킨 버거가 너무 맛있어서 한 입만 더 달라고 하고 싶었는데 울고 난 뒤라 민망했어요. 진짜 맛있었는데 아쉽다.”라며 고백할 정도로 맛있었다. 배가 차고, 술이 차니 아내의 표정도 어느새 다시 좋아졌다. 손님이라곤 우리 둘 뿐인 식당에서 우리 부부는 여유로운 낮술과 낮수다를 즐겼다.


몸과 마음까지 따뜻해진 우리 부부. 자리에서 일어나 루터의 흔적을 찾아 한껏 가벼워진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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