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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콜린 May 24. 2021

상처와 트라우마에 관해서

넷플릭스 오리지널 그랜드 아미와 이웃집 테러리스트

나는 오른쪽 다리에 상처가 있다. 어릴 때 전기장판에 데여서 생긴 3도 화상인데 제때 치료하지 못해서 아직까지 다리에 큰 상처로 남아있다. 몇 번이고 흉터를 지우려고 노력했으나 켈로이드 피부 타입이어서 그런지 역부족이었다. 


나는 몸도 마음도 상처를 쉽게 받는 편이다. 그냥 문에 한 번 부딪혔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 피멍이 있던 적도 있고, 발톱이 빠져있었는 적도 있었다. 무던한 것 같지만 뚝배기를 까 보면 나도 모르게 몸과 마음에 스크래치가 자주 나는 타입에 가깝다. 


정신적 상처를 우린 트라우마라고 한다. 트라우마는 의학 용어로 외상을 뜻하나 주로 정신적인 외상, 정신적 상처에 가깝다. 그러니 트라우마는 과거에 겪은 고통이나 불안으로 인해 생기는 상처의 집합체라고 할 수 있다. 상처와 트라우마의 공통점이 있다면, 잘 지내고 있다가도 불시에 우리를 찾아와서 괴롭히는 존재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소개할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그랜드 아미와 스페인 영화 이웃집 테러리스트트라우마와 상처에 대해 다루고 있다. 


전쟁과 폭력이 남긴 상처와 트라우마 

출처: 넷플릭스 

이웃집 테러리스트는 코미디 영화로 알려져 있다. 스페인에 조금이라도 관심 있는 사람들은 알 만한 바스크 분리주의자들의 테러 및 독립운동에 관한 이야기를 익살스럽게 풀어낸다. 2010년 스페인 정부와 바스크 분리주의자(ETA)의 휴전 협정이 한창이던 때, 협정에 반대하던 이들이 조심스레 모여 도심 한복판에 폭탄 테러를 계획하는 내용이다. 자칭 특수 부대와 고급 스파이 출신이라고 말하지만, 그들은 이웃집 인테리어 공사를 하며, 생계를 이어간다. 그리고 폭탄과 폭죽 제조도 헷갈려하는 소위 프로답지 않은 모습을 보이며, 치밀하게 계획한 테러조차 실패한다. 


하지만 이들이 계획한 테러를 자꾸만 미루고, ETA의 다른 조직원들과 연락을 기피하는데 이유가 있다. 바로 폭력과 전쟁의 트라우마의 잔재로 휩싸인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평범하게 일상을 살아가고, 대의를 위해 테러든 폭력이든 기꺼이 하려고 하지만 불시에 찾아오는 트라우마의 순간은 이들을 알게 모르게 괴롭힌다. 코디미 장르로 보이는 영화지만 마지막 결말에서 폭력, 전쟁에 간접적으로 노출된 사람들이 겪는 트라우마에 대해 해 시사하고 있다. 


10대들의 트라우마

그랜드 아미는 미국 브루클린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10대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드라마는 브루클린에서 일어난 테러로 이야기를 시작하며, 5명의 주인공들이 각각 겪는 트라우마와 극복 내용을 담고 있다. 인종 차별, 성 정체성, 10대들의 불완전함, 페미니즘, 성폭행, 계층 문제 등의 이야기를 가감 없이 다루고 있다. 소위 인기 있는 하이틴 물이 로맨스와 애정선에 초점을 두는 것과 달리 그랜드 아미는 최근 이슈가 되는 문제들을 잘 풀어내고 있다. 

출처 넷플릭스 

중국인이지만 유대인 부모에게 입양되어 끊임없이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하는 레일라. 페미니즘 운동에 누구보다 앞장서고 주체적인 여성상을 보이지만 한 순간에 성폭행 피해자가 되고, 피해자의 순결함, 무결함을 강요받으며 2차 피해자가 된 조이. 흑인이라는 이유로 다른 학생들에 비해 더 가중한 처벌을 받고 몸담고 있던 오케스트라에서도 쫓겨나게 된 제이슨과 오웬, 무슬림이라는 이유로 테러리스트로 의심받는 시드, 생계유지와 진로 사이에서 여러 고민에 빠진 도미니크까지. 크고 작은 문제들은 한 뭉치의 실타래가 되어 이들을 계속 옥죄이고, 괴롭힌다. 다양한 인물의 스토리를 보여주며 매 회차마다 그들이 겪는 트라우마와 극복해 나가는 모습들이 인상 깊은 드라마다. 


그중 성폭행 피해자지만 평소의 행실, 모함 등으로 가해자로 몰리며 학교까지 옮기는 조이의 모습은 하이퍼 리얼리즘 수준이다. 극의 초반에는 조이의 자유분방하고 당당한 패션 스타일이 점점 한여름에도 긴소매, 자신을 가릴 수 있는 모자 등으로 연출한 부분까지 주인공의 트라우마와 상처를 간접적으로 노출한다. 이웃집 테러리스트가 '일상 속에 트라우마는 불시에 나타난다.'라는 주제의식과 함께 트라우마의 위험성에 대해 말하고 있는 반면, 그랜드 아미는 트라우마에 빠지는 과정과 극복기까지 함께 다루고 있다. 


트라우마에 갇혀 외출도 하지 못하고, 인간관계를 기피하며 자신이 좋아하던 춤까지 포기한 조이는 극 중 마지막 씬에서 5분만이라도 버텨 보겠다며 혼자 자신이 즐겨가던 댄스 스쿨에 간다. 처음엔 구석에서 자리를 박차고 나갈까 고민하던 그녀였지만 극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당당히 센터 자리로 파고들면서 트라우마를 극복해내겠다는 의지를 보여준다. 이들 외에도 나머지 주인공들 모두 각자의 트라우마를 자신만의 방법으로 극복해나가는 모습을 보여주며 드라마는 막을 내린다. 흑인이라는 이유로,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이유로 차별받은 오웬을 대신해 무대에 서게 된 제이슨은 연주를 하지 않고 침묵을 선언하며, 인종 차별의 부당함을 알린다.

출처: 넷플릭스

극의 초반을 이끌었던 테러 사건을 시작으로 개인의 트라우마까지 연결한 이 드라마는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테러와 트라우마의 성격이 비슷하다는 점을 시사한다. 완전한 도피처를 찾을 수 없기에 더욱 극복하기 어려운 트라우마지만 주인공들이 이겨내려는 모습을 마지막 화에 보여줌으로써 개개인의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개인들과 연대하는 모습을 보인다. 


어쩌면 우리의 친구 트라우마 

트라우마와 상처는 깊이와 무게가 개개인에게 다르게 찾아온다. 누군가에게는 대수롭지 않은 일이지만 나에게는 큰 상처일 수도 있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었을지도 모르는 만큼 우리에게 쉽게 찾아오는 귀찮은 친구 겸 불청객이다. 


나 역시 최근 학생의 신분을 벗어나 사회인의 신분으로 잠시 살게 되면서 갑작스럽게 변해버린 환경과 상황에서 생긴 여러 문제들을 겪었다. 이로 인해 한동안 특정 상황에서 말을 하는 것을 거부하기도 하고, 외향적인 성격이 갑작스레 내향적으로 변하면서 대인과의 관계 자체를 끊어버리기도 했다. 


나의 개인적인 문제를 주변 사람들에게 알릴 수 없었기에 더더욱 감정과 상처의 골은 깊어졌고, 누군가에게는 나의 일이 대수롭지 않은, 내가 지나치게 예민하게 반응해서 생긴 일이었기 때문에 트라우마에서 벗어나는 건 너무 힘든 일이었다. 밤마다 고통받고 문득 생활 중에 그 기억들이 조각처럼 떠오르기도 했다. 

나는 그랜드 아미 속 주인공들보단 이웃집 테러리스트의 주인공들에 조금 더 가깝다. 무난하게 일상생활을 하다가도 불쑥 나에게 다가오는 트라우마들을 완전히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트라우마와 상처는 내가 평생 안고 갈 조금 귀찮은 친구들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모든 일을 완벽하게 해결할 수는 없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랜드 아미 속 조이의 마지막 장면처럼 5분, 10분, 20분, 조금씩 내가 견딜 수 있는 시간을 늘리기로 했다. 그러다 보면 트라우마도 나의 진짜 친구로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Freedom (I will not give you up)
Freedom (Gotta have some faith in the sound)
You got to give what you take
(It's the one good thing that I've got)
- 그랜드 아미 마지막 장면의 ost : Freedom 90´s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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